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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치매 신약’ 등장예고…국내 기업 ‘치매약 개발’은 어디까지 왔나

[‘치매 정복’ 길이 보인다]②
일라이 릴리, 도나네맙 3상 추가 데이터 공개…내년 미국 출시할 듯
아리바이오·차바이오텍 등 개발 박차…“정부 지원 필요”

새 연구에 따르면 불규칙한 심장박동이 치매의 전조가 될 수 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이코노미스트 선모은 기자] 알츠하이머병 치료제인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가 최근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정식으로 허가받은 가운데 또 다른 알츠하이머병 신약이 허가 문턱을 넘을 것으로 기대된다. 레켐비와 ‘치매 정복의 길’을 열 것으로 보이는 약물은 일라이 릴리의 ‘도나네맙’이다. 국내 기업도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아리바이오가 먹을 수 있는(경구용) 알츠하이머병 치료제의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으며, 초기 단계 임상을 진행하는 기업도 여럿이다.

지난 7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알츠하이머협회 국제콘퍼런스(AAIC)에서는 일라이 릴리가 큰 주목을 받았다. 이 회사가 개발 중인 알츠하이머병 치료제인 도나네맙의 새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병은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이 뭉친 형태(플라크)로 뇌에 쌓이면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도나네맙은 이런 플라크를 제거해 알츠하이머병으로 인한 인지기능이 나빠지는 정도를 늦춘다.

지난 7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알츠하이머협회 국제콘퍼런스(AAIC) 현장. [사진 알츠하이머협회]
일라이 릴리가 공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초기 단계의 알츠하이머병 환자 1736명 중 도나네맙을 투여한 사람들은 약물을 쓴 18개월 동안 플라크가 84% 줄어들었다. 가짜약(위약)을 투여한 환자들은 같은 기간 플라크가 1%만 감소하는 데 그쳤다. 임상 참여자들의 절반가량은 연구진이 정해둔 목표 수준을 달성해 약물 복용을 12개월 때 중단하기도 했다. 알츠하이머병 평가 척도(iADRS)를 비롯한 다른 지표에서도 도나네맙을 투여한 환자들의 인지기능이 가짜약을 쓴 환자들보다 천천히 악화했다.

특히 이번 연구에서는 타우 단백질이 적게 쌓일수록 도나네맙의 치료 효과가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타우는 아밀로이드-베타 단백질과 함께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으로 꼽히는 단백질이다. 평소에는 문제가 없지만 한데 뭉쳐 덩어리(탱글)가 되면 뇌에 쌓여 사람의 인지기능을 낮춘다. 일라이 릴리가 공개한 이번 임상에서 타우 단백질이 적게 쌓인 환자는 도나네맙을 투여한 뒤 인지기능의 저하 속도가 35%가량 느려졌다. 하지만 타우 단백질이 많이 쌓인 환자를 연구에 추가했더니 개선 효과는 점점 낮아졌다. 쉽게 말해 타우 단백질이 덜 쌓인 초기 단계의 알츠하이머병 환자에게 도나네맙을 투여해야 치료 효과가 크다는 뜻이다.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이제 나와…국내 기업도 기회”

일라이 릴리는 이번 임상 결과를 들고 FDA에 도나네맙의 허가 신청을 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국가에 이 약물을 출시한다는 구상이다. 세계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시장에서도 레카네맙과 도나네맙 두 개 약물이 활약할 것으로 보인다. 두 약물 모두 치료 비용이 많이 드는 만큼 보험이 적용될지에 따라 경쟁 구도도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레켐비의 경우 미국의 보험 업체들이 이 약물의 보험 적용 범위를 확대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의 한 치매지원센터에서 진행하는 치매 예방·치료 교실에 참여한 시민. [사진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국내 기업이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알츠하이머병은 발병 원인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이제야 관련한 치료제가 나오기 시작한 질환이다. 레카네맙과 도나네맙은 부작용을 동반하는 데다 초기 단계의 알츠하이머병 환자만 사용할 수 있다는 한계도 있다. 정맥주사(IV) 형태로 개발돼 환자가 병원에 방문해야 하는 불편도 있다.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는 개선할 수 있는 영역이 넓은 약물이라는 뜻이다.

아리바이오·잼백스앤카엘 등 K-바이오 개발 속도

국내 기업들도 기존 약물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세계 첫 경구용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후보물질을 개발 중인 아리바이오가 대표적이다. 아리바이오는 임상 3상 단계의 알츠하이머병 치료제 후보물질인 AR1001을 개발하고 있다. AR1001은 알츠하이머병이 진행되는 것을 억제하고, 환자의 인지기능을 높이는 등 기전이 여럿인 물질이다. 아리바이오는 이 약물을 IV 제형이 아닌 먹는 형태의 치료제로 개발해 복용 편의성을 높일 계획이다. 현재 FDA로부터 임상 3상 단계를 승인받았고, 올해 초 미국 내 임상기관에서 환자 투약도 시작했다.

잼백스앤카엘은 췌장암 치료제로 개발한 물질 GV1001을 약물 재창출을 통해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 개발하고 있다. GV1001은 국산 신약으로 조건부 승인됐으나 2020년 허가가 취소된 약물이다. 잼백스앤카엘은 GV1001를 피하주사(SC) 형태의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 개발할 계획이다. 현재 북미와 유럽 등에 있는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있다. 중등도와 중증의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국내 임상시험은 마쳤으며 지난 5월 삼성제약에 GV1001의 국내 권리를 이전했다.

차바이오텍은 줄기세포 기반의 물질인 CB-AC-02를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로 개발 중이다. 현재 국내에서 임상 1·2a상을 진행하고 있다. 차바이오텍은 태반 조직에서 추출한 기능성 세포를 이용해 CB-AC-02를 만들었다. 대량배양 기술과 세포동결 기술을 통해 세포치료제를 기성품 형태로 제공할 것이란 구상이다. 세포치료제는 통상 주문 생산 방식으로 만들어져 치료 비용이 많이 들지만, 차바이오텍은 앞선 기술을 통해 치료 비용이 적고 효능은 높은 세포치료제를 생산하겠다는 목표다. 

업계 관계자는 “알츠하이머병은 아밀로이드-베타와 타우 등 특정 단백질이 원인으로 알려지긴 했으나 사실상 발병 원인이 밝혀진 것은 아니”라며 “신경 보호나 재생, 혈관 인자 등 다양한 요인을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으로 보는 치료제들이 개발 중인 점을 보면 알츠하이머병의 ‘근본 치료’에 대한 노력은 지속해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의 개념도 ‘완화’에서 ‘치료’로 변화하고 있다”며 “신약 개발에 성공할 가능성이 낮은 만큼 정부의 지원과 민간 기업의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장기적인 전략과 투자가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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