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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거 없는데 농사나 지을까”도 옛말…귀농·귀촌의 조건[김현아의 시티라이브]

[농지의 변신은 유죄]④ 젊은 층 귀농·귀촌 증가, 삶과 일 공존하는 농촌
자연재해 등 리스크 여전…농촌 경쟁력 회복 위한 농지 기능 다양화 필요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귀농 관련 행사에서 참관객들이 귀농·귀촌 상담을 받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김현아 여의도연구원 경제정책센터장] 한때 한 초등학교 시험문제에 대한 학생들 오답을 두고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다음 중 가구가 아닌 것을 고르라는 질문에, 적지 않은 학생들이 ‘침대’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당시 선풍을 일으킨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침대는 과학입니다”라는 침대회사 광고카피가 학생들에게 각인됐다는 사실을 알린 유명한 사건이다. 이처럼 “에이 할 거 없으면 시골 가서 농사나 지을래요”라는 말은 대중이 일상생활은 물론, 드라마 대사로도 자주 접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실제 농업을 하시는 분들은 이 말이 틀린 소리라고 지적한다. 필자는 “농사가 힘들어서 그런가요? 그래서 아무나 못한다는 말씀인가요?”라며 반문했지만 답변은 의외였다. “요즘 농업은 과학입니다.” 

주목해야 할 귀농인구 구성, 그리고 귀농의 이유

일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요즘은 농사를 지으려면 작물에 따라 어떤 농약을 써야 할 지 세심하게 계획해야 한다. 제조회사가 달라서가 아니라 작물에 따라 쓰는 농약이 매우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첫 번째 뿌리는 농약인지 두 번째 뿌리는 농약인지에 따라서도 종류가 다르다. 작물에 ‘농약 내성’이 생기므로 지난번 썼던 농약을 다시 쓰기 보다는 다른 종류를 살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농사는 과학의 영역으로 전환되고 있다. 과거처럼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으면서 하늘이 내리는 비만 기다리던 시대는 지났다. 침대도 과학이고, 질병관리도 과학이고, 농업도 과학인 시대가 됐다. 농사가 과거보다 쉬워진 면도 있지만 단순히 도시에 일자리가 없어 고향에 내려가 농사나 짓겠다는 말은 못할 것 같다. 어찌 보면 도시 속 직장생활을 할 때보다 더 많은 공부와 기술을 터득해야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지 않을까.

2021년 전국 귀농·귀촌 인구는 51만5434명(37만7744가구)으로 전년 대비 4.2%(가구는 5.6%) 늘며 2년 연속 증가했다. 이는 해당 통계조사 이래 최대치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은퇴가 본격화된 영향으로 60대 이상 귀농·귀촌 인구가 주류를 이루지만 동시에 30대 이하 세대의 귀농·귀촌 역시 빠르게 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 2021년 귀농·귀촌 인구 중 48.5%(23만5904명)가 30대 이하였다는 점도 매우 놀라운 사실이다. 

50~60대 이상의 귀농·귀촌은 주로 연고지로 이동하는 형태다. 반면 30대 이하의 귀농·귀촌이 지금처럼 늘어난다면 이 같은 연고지 중심의 이동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일반적으로 귀농·귀촌의 이유는 개인적인 건강, 가족 등의 이유다. 30대 이하 귀농·귀촌이 증가하면서 직업과 교육 등의 이유로 귀촌 이주를 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농촌이 일과 삶을 위한 새로운 공간으로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 귀농·귀촌한 30대 이하의 인구들이 지역에 어떻게 정착하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는 없다. 청년들의 귀농·귀촌 증가가 정부의 다양한 지원책 덕분이라는 평가도 많다. 따라서 정책효과가 일시적일지 지속될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지난 5년 동안 도시의 집값이 급등하고 고용 없는 성장이 늘면서 좀 더 저렴한 주거를 찾아, 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일자리를 찾아 귀농·귀촌을 고민하는 인구가 늘어난 것만은 분명하다. 다만 이들이 지역에서 얼마나 지속가능한, 그리고 그들이 목표로 하는 소득 창출을 위한 경제활동이 가능할 지가 정책 지속성의 변수다. 

자연재해·지방소멸 현재 진행형, 공회전하는 농지정책 
김현아 여의도연구원 경제정책센터장이 지난 7월 방문한 전북 익산 소재 수해 농가의 수박 재배 하우스 모습. [사진 김현아 여의도연구원 경제정책센터장]

자연재해는 이렇게 도시를 벗어난 이들의 삶에 적신호가 되고 있다. 올 7월 한반도를 강타한 폭우는 주로 남부지방에 막대한 피해를 가져왔다. 과거 시계열 자료를 보면, 폭우 또는 가뭄으로 인한 피해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동부와 서부 지역별로 돌아가며 반복되고 있다. 

필자는 지난 7월 말 전북 익산의 수박농가 피해복구 현장을 방문했다. 수마가 휩쓸고 간 과수 하우스는 음식 썩는 냄새가 가득한 가스실이었다. 도시지역의 수해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농가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현장방문 당일 들렀던 식당 사장님은 이번 피해로 상추 값이 폭등했다고 속상해 했다. 상추 1박스에 15만원이나 주고 샀는데 속을 열어보니 다 문드러져서 식탁에 내어 놓을 수 있는 양이 많지 않다고 했다. 어느 해는 농산품 가격이 폭락해서 농사를 망치고 어떤 해는 자연재해 때문에 농사를 망친다. 과학이 됐다는 농업이 아직도 이렇게 불확실하다면 귀농·귀촌 인구가 제대로 농사를 이어갈 수 있을 지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다. 

귀농·귀촌 인구 증가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인구집중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한때 사람들은 “도시는 복잡하고 공기가 오염돼 돈 벌기는 좋지만 살기에는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반면, 농촌은 도시가 주지 못하는 안식과 평온, 자연환경을 누릴 수 있는 곳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도시는 끊임없는 변신을 통해 낡은 주택을 새 주택으로 바꾸고 도심 속 숲과 하천을 회복시켰다. 도시는 편리함을 안전과 쾌적함으로 승화시켰고 다양한 인프라를 통해 인간의 삶을 지원하는 공간으로 완성돼가고 있다. 반면 농촌은 개발에 잠식당하거나 지방소멸에 휩쓸리고 있다. 매년 동일하게 자연재해를 맞닥뜨리지만 도시는 이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농촌보다는 예측이 가능하다. 

이렇게 다른 농촌과 도시를 구별하는 특징 중에 농지가 있다. 지금까지 농지에 관한 내용을 다루며 하고자하는 이야기는 농지를 없애자는 것도, 농사를 짓지 말자는 것도 아니다. 기껏 지켜왔던 농지를 하루아침에 ‘아파트 숲’으로 변신하게 하지 말고 대안을 찾자는 것이다. 그동안 경자유전 원칙에만 매몰돼 농지의 변신을 유죄로 여겨왔다면, 그래서 택지개발만이 유일한 수익창출 수단이자 탈출구라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면 이제 변화가 필요하다.

복지와 치유의 공간, 과학화된 농업의 생산기반, 의료나 관광산업과 연계 되는 새로운 일자리의 공간 등등 농지의 변신이 가능하다면 그 기능은 무궁무진할지도 모른다. 

김현아 여의도연구원 경제정책센터장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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