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로 급전 빌리는 10대들...‘금융 문맹’ 심각
[청소년 금융 문맹 위기]①
“예금이 뭐예요?”…청소년 금융이해력 ‘낙제점’
현직 교사들 “금융교육 필요성 느끼지만 인프라 부재” 토로
美 22개 주는 금융교육 의무화…韓, 2025년 과목 도입되나 ‘선택’ 한정
[이코노미스트 윤형준 기자] “문맹은 생활을 불편하게 하지만, ‘금융 문맹’은 생존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최장 기간 역임하며 세계 경제를 움켜쥐었던 앨런 그린스펀의 말이다. 그린스펀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한 원인으로 ‘금융 문맹’을 꼽았다. 유년기 때부터 다져진 금융교육은 우리의 삶을 바꿔놓을 수도 있을 만큼 매우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국내 금융교육 실정은 암울하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금융이해력은 ‘낙제점’ 기준보다도 한참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10년 전보다도 수준이 떨어진 상황이라 정부 차원에서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금융 공교육 부재, 불법 금융 피해로 이어져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가 발표한 ‘2023년 청소년 금융이해력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등학생(고등학교 2학년 717명 대상)들의 금융이해력 평균 점수는 46.8점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 금융교육기관 ‘점프스타트’(Jump$tart)가 설정한 낙제 점수(60점)를 크게 밑도는 점수다. 2013년 조사 때 48.5점보다도 1.7점 하락했다.
청소년들의 금융이해도 저하는 학교 정규 교육과정에서 금융교육을 중시하지 않는 데서 비롯됐다. 국내 교육은 대학 입시가 가장 우선시되고 있어 금융 관련 교육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청소년들의 관심사도 당장 입시 관련 성적이지 금융교육이 아닌 셈이다.
국내 청소년 금융교육은 사실상 가정에서 부모가 선생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도 청소년들의 주요 금융 교육 경로는 가족-학교-대중매체 순으로 많았다.
하지만 지금의 부모들도 청소년기 제대로 된 금융교육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가정에서의 금융교육도 부모가 용돈을 관리하고 저축을 독려하는 수준이다. 부모를 통한 교육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셈이다.
최근 몇 년간 청소년들 사이에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댈입’(대리입금)이 유행했던 것도 금융교육 부재와 무관하지 않다. 댈입은 10만원 이하의 소액을 초고금리로 단기 대출하는 불법사금융의 일종이지만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피해를 당하는 청소년들이 부지기수다.
교육계에서는 결국 학교에서 금융을 가르치는 금융 공교육 강화가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경제금융교육연구회 소속 전국 초등학교 교사 100명을 대상으로 지난 7월 설문조사를 한 결과, 97%는 정규수업을 통한 금융 공교육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인천 모 중학교의 사회교사 강수민(가명)씨는 “금융 공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수업 때가 되면 저 역시 간단하게 개념만 가르치고 넘어간다”며 “또 교과서마다 내용과 범위가 다 상이해서 어떤 기준으로 가르쳐야할지도 난감하다”고 말했다.
2025년부터 고교 ‘선택’ 과목 되지만…
이처럼 금융교육 필요성이 대두되지만, 국내에서는 금융교육을 진행할 인프라가 부족한 실정이다. 표준화된 금융 교재도 없을뿐더러 금융을 전문적으로 가르칠 교사 수도 적다.
현재 국내 초등교육 과정에는 금융 관련 내용이 없다. 중학교에서는 사회과목 12개 대단원 중에서 1개의 중단원에 그치는 수준이다.
그나마 오는 2025년부터 고등학교 선택 과목으로 ‘금융과 경제생활’이라는 금융 과목을 들을 수 있게 됐다. 이 과목은 ▲행복하고 안전한 금융 생활 ▲수입과 지출 ▲저축과 투자 ▲신용과 위험 관리 등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금융과 경제생활’은 선택과목이다. 고교 선택 과목은 15명 이상이 선택해야 과목이 개설된다. 학생들이 선택하지 않으면 폐강될 가능성이 높다. 입시 위주의 교육을 받는 청소년들이 이 과목을 선택할지는 미지수다.
해외 선진국들은 발빠르게 금융 공교육을 의무화해왔다. 미국은 현재 43개 주 고등 교육과정에 금융교육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 중 22개 주는 의무로 들어야만 졸업할 수 있다. 영국에서도 2014년부터 중등 교육기관 정규과정에 금융교육을 포함했다. 캐나다도 정규 교육과정에 금융과 소비생활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해 운영 중이다.
국회에선 금융교육이 학교에서부터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 3월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교육부를 금융교육 컨트롤타워로 지정하고 국가·지자체가 금융교육 지원정책을 시행하도록 하는 ‘금융교육진흥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관심 부족으로 현재 위원회 심사 단계에서 계류 중이다.
홍 의원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에서는 이미 자녀들에게 학교 밖 금융교육을 진행하고 있다”며 “금융교육 격차가 양극화를 더 심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교과과정에 금융교육을 신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국·영·수 등 기초영역에 자연스럽게 금융과 관련된 내용이 녹아들게 해 아이에게 돈과 경제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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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최장 기간 역임하며 세계 경제를 움켜쥐었던 앨런 그린스펀의 말이다. 그린스펀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한 원인으로 ‘금융 문맹’을 꼽았다. 유년기 때부터 다져진 금융교육은 우리의 삶을 바꿔놓을 수도 있을 만큼 매우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국내 금융교육 실정은 암울하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금융이해력은 ‘낙제점’ 기준보다도 한참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10년 전보다도 수준이 떨어진 상황이라 정부 차원에서 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금융 공교육 부재, 불법 금융 피해로 이어져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가 발표한 ‘2023년 청소년 금융이해력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고등학생(고등학교 2학년 717명 대상)들의 금융이해력 평균 점수는 46.8점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 금융교육기관 ‘점프스타트’(Jump$tart)가 설정한 낙제 점수(60점)를 크게 밑도는 점수다. 2013년 조사 때 48.5점보다도 1.7점 하락했다.
청소년들의 금융이해도 저하는 학교 정규 교육과정에서 금융교육을 중시하지 않는 데서 비롯됐다. 국내 교육은 대학 입시가 가장 우선시되고 있어 금융 관련 교육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청소년들의 관심사도 당장 입시 관련 성적이지 금융교육이 아닌 셈이다.
국내 청소년 금융교육은 사실상 가정에서 부모가 선생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도 청소년들의 주요 금융 교육 경로는 가족-학교-대중매체 순으로 많았다.
하지만 지금의 부모들도 청소년기 제대로 된 금융교육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가정에서의 금융교육도 부모가 용돈을 관리하고 저축을 독려하는 수준이다. 부모를 통한 교육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셈이다.
최근 몇 년간 청소년들 사이에서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댈입’(대리입금)이 유행했던 것도 금융교육 부재와 무관하지 않다. 댈입은 10만원 이하의 소액을 초고금리로 단기 대출하는 불법사금융의 일종이지만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피해를 당하는 청소년들이 부지기수다.
교육계에서는 결국 학교에서 금융을 가르치는 금융 공교육 강화가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경제금융교육연구회 소속 전국 초등학교 교사 100명을 대상으로 지난 7월 설문조사를 한 결과, 97%는 정규수업을 통한 금융 공교육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인천 모 중학교의 사회교사 강수민(가명)씨는 “금융 공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만, 수업 때가 되면 저 역시 간단하게 개념만 가르치고 넘어간다”며 “또 교과서마다 내용과 범위가 다 상이해서 어떤 기준으로 가르쳐야할지도 난감하다”고 말했다.
2025년부터 고교 ‘선택’ 과목 되지만…
이처럼 금융교육 필요성이 대두되지만, 국내에서는 금융교육을 진행할 인프라가 부족한 실정이다. 표준화된 금융 교재도 없을뿐더러 금융을 전문적으로 가르칠 교사 수도 적다.
현재 국내 초등교육 과정에는 금융 관련 내용이 없다. 중학교에서는 사회과목 12개 대단원 중에서 1개의 중단원에 그치는 수준이다.
그나마 오는 2025년부터 고등학교 선택 과목으로 ‘금융과 경제생활’이라는 금융 과목을 들을 수 있게 됐다. 이 과목은 ▲행복하고 안전한 금융 생활 ▲수입과 지출 ▲저축과 투자 ▲신용과 위험 관리 등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금융과 경제생활’은 선택과목이다. 고교 선택 과목은 15명 이상이 선택해야 과목이 개설된다. 학생들이 선택하지 않으면 폐강될 가능성이 높다. 입시 위주의 교육을 받는 청소년들이 이 과목을 선택할지는 미지수다.
해외 선진국들은 발빠르게 금융 공교육을 의무화해왔다. 미국은 현재 43개 주 고등 교육과정에 금융교육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 중 22개 주는 의무로 들어야만 졸업할 수 있다. 영국에서도 2014년부터 중등 교육기관 정규과정에 금융교육을 포함했다. 캐나다도 정규 교육과정에 금융과 소비생활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해 운영 중이다.
국회에선 금융교육이 학교에서부터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 3월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교육부를 금융교육 컨트롤타워로 지정하고 국가·지자체가 금융교육 지원정책을 시행하도록 하는 ‘금융교육진흥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관심 부족으로 현재 위원회 심사 단계에서 계류 중이다.
홍 의원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에서는 이미 자녀들에게 학교 밖 금융교육을 진행하고 있다”며 “금융교육 격차가 양극화를 더 심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교과과정에 금융교육을 신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국·영·수 등 기초영역에 자연스럽게 금융과 관련된 내용이 녹아들게 해 아이에게 돈과 경제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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