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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반값 아파트’가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 [김현아의 시티라이브]

저예산 도심 공공주택, 나라마다 한계점 유사
칠레 공공주택 ‘킨타 몬로이’, 입주민 스스로 ‘반쪽’을 채우다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Alejandro Aravena)에게 프리츠커상을 안긴 칠레 도심 공공주택 ‘킨타 몬로이’ 전경. 오른쪽은 각 가구 주민이 입주 후 기존 40㎡만 완공된 주택(사진 왼쪽)을 80㎡로 확장한 모습이다. [사진 신세계건설]

[김현아 여의도연구원 경제정책센터장] ‘반값 아파트’는 주택가격 부담에 내 집 마련이 좌절된 사람들에게 대안으로 제시된 한국형 저렴(적정, Affordable Housing) 주택이다. ‘반값 아파트’라는 명칭만 보면 기존 아파트 반값 구매가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반값 아파트의 핵심은 할인이 아니라 임대다. 토지를 구입하지 않고 임대하기 때문에 가격이 낮아진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정확한 표현은 ‘토지 임대부 주택’이다. 

반값 아파트, ‘반값’인가 ‘반쪽짜리’인가

집값 상승국면에는 토지 임대부 주택의 인기가 높지만, 집값 하락기에는 수요가 감소하고 공급 역시 슬그머니 축소되는 경우가 많았다. 싼값으로 공급하는 대신 전매제한기간이 길었던 데다, 처음에만 반값이지 종국에는 토지의 풀 소유권이 확보되지 않는 ‘반쪽짜리’라는 비판도 나왔다.

또 입지가 도심이나 역세권일수록 시세차익이나 토지임대료 수준의 적정성 논란이 일었고, 소위 ‘먹튀’ 행위 또는 투기수요 차단을 위한 다양한 규제가 뒤따랐다. 요즘처럼 건설 자잿값이 급등하게 되면 토지가격을 낮춰도 건설원가가 높아져 반값이라는 이름이 무색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필자는 전매제한 같은 규제가 굳이 필요치 않고 건설경기에도 영향을 덜 받는 반쪽주택을 발견했다. 심지어 시작은 반쪽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머지 반이 채워진다. 그래서 나중에는 온전한 한 채가 되는 주택이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칠레 역시 도시의 비싼 집값을 감당할 여력이 없는 사람들의 주거 안정이 큰 숙제였다. 어느 나라나 공공주택에 지원되는 정부 보조금은 넉넉지 않다. 특히나 수요가 많은 도심에 건물을 지으려면 택지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도시 속 공공주택은 좁게 고밀로 건설해야 한다. 이에 따라 도심형 공공주택은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는 한편, 입지가 좋은 경우가 드물고 최소 건설비로 짓다 보니 그저 모든 것이 최소한의 생존형 주택으로 조성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서울 강북구 미아역 인근 도심 공공주택 복합개발 후보지. [사진 연합뉴스]

‘킨타 몬로이’, 공공주택의 통념을 깨다

그런데 한 건축가가 고질적인 공공주택 건설 문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알레한드로 아라베나(Alejandro Aravena)는 도시 빈민층을 위한 공공주택 프로젝트 ‘킨타 몬로이’로 2016년 칠레 출신으로는 처음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받았다.

킨타 몬로이는 2003년 칠레 정부가 아라베나가 이끄는 건축 사무소 엘리멘탈(Elemental)에 요청한 저소득층 100가구를 위한 공공주택 프로젝트였다. 당시 할당된 예산 규모가 작았음에도 ‘중산층형 주택’을 지어달라는 조건까지 있었다. 

설계자는 정부가 제시한 ‘중산층 수준’을 충족하는데 ‘입지’를 희생하지 않았다. 전체 공사비의 70%를 토지매입과 인프라 건설에 투입해 양질의 주거환경을 조성했다. 그리고 택지를 구입, 조성하고 남은 30%의 비용으로 40㎡의 작은 집 대신 80㎡ 절반에 해당하는 집을 지었다.

여기서 작은 집이 아닌 ‘큰집의 반’을 짓는 게 핵심 아이디어다. 이 반쪽의 집(Half of a Good House)은 기본 설비만을 갖춰 모듈식 공간까지만 완성되면 거주자들이 입주를 했고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비용과 속도, 그리고 원하는 스타일에 맞게 스스로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을 해나가도록 했다.

각 세대는 수도와 배수 시설은 있지만, 따로 문을 달지 않아 방의 개념 없이 탁 트인 공간으로 시작한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구조도 고스란히 노출돼 있었다. 집집마다 살아가면서 마감재, 페인트 색깔은 물론 저마다의 특색과 스토리로 집을 채우는 것이다. 

완공 후 1년이 지나고 주택 시장에서 킨타 몬로이의 평가 가치는 유사한 입지에 위치한 연립 주택의 2.6배에 달했다. 또 킨타 몬로이에 전매제한 조건이 있다는 소리는 아직 듣지 못했다. 아무리 집값이 상승해도 거주자가 그 집을 팔기보다 지속해서 머물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증축 여부는 주민의 선택이었는데 대부분 가정이 나머지 반쪽을 채워 집을 완성해 갔다. 자신에게 꼭 맞는 맞춤옷처럼 집주인 각자의 스타일과 노력, 시간이 담긴 그 주택은 자산 그 이상의 가치가 있었던 것이다. 

내일이 기다려지는 집, 투기 걱정 없어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을 위해 알맞은 집을 지어야 해요. 만약 지금 돈이 없어서 살 수 없다면 각 가정이 스스로 집을 완성할 수 있게 시간을 주는 거죠.” 아라베나가 2018년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쯤이면 아라베나가 왜 프리츠커상을 받았는지 이해가 갈 것이다. 아라베나는 집을 천천히 완성해가는 방식을 ‘미완성의 상태’라기보다 잠재력과 가능성을 남겨둔 ‘기회와 기대의 상태’로 해석했다.

기본적으로 좋은 입지와 넓은 면적의 주택을 입주민들이 공들여 채우고 가꾸면 그 집의 부동산 가치는 상승할 수밖에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번 공급된 공공주택을 질적으로 향상시키거나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기 위해선 또 다른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킨타 몬로이는 집을 완성해 가는 과정 자체가 공동체에 대한 거주자들의 자부심과 소속감을 고취시킨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이런 이유로 킨타 몬로이는 전 세계 저예산 하우징 솔루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킨타 몬로이 사례는 집을 ‘자산’으로 우선 인식하는 한국의 현실에 경종을 울리는 것과 같다. 그리고 늘 공공주택은 비용과 입지의 한계 탓에 최소한으로밖에 건설할 수 없다는 인식 또한 핑계처럼 느껴진다. 집은 가구와 인테리어까지 모두 갖춘 상태로 공급돼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킨타 몬로이 사례를 보면 우리의 방식이 다소 촌스럽고 뻔해 보인다. 반값이지만 반쪽짜리인 한국의 반값 아파트와, 반쪽이지만 반쪽이 아닌 킨타 몬로이는 우리에게 각기 다른 내용과 방식으로 반전을 주며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킨다. 


김현아 여의도연구원 경제정책센터장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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