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없는 날’ 끝나자 하루 택배물량 900건 폭증...택배기사 “야근 불가피한 업무강도”
하루 택배물량 ‘900건’...“택배차 한번에 못 실어”
현장 곳곳 밀린 물량 처리, 기사들 밤샘 작업까지
매년 ‘택배 없는 날’ 논란...소비자 불만도 거세
[이코노미스트 송현주 기자] “평소 배송을 저녁 7시 30분에 마치는데 오늘은 예정 시간이 10시 30분이에요. 택배차에 실었다 내렸다 5~6번은 해야 할 것 같네요. 지금 물량도 배송 완료에 2~3일 소요될 것 같아요.”
지난 16일 오전 10시, 서울 송파구 장지동에 대형 택배사들이 모여있는 장지동 물류센터. 물류센터 곳곳엔 수천개가 넘는 택배 박스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택배기사들은 저마다 트럭 화물칸 천장까지 택배 박스 수백여개를 빽빽하게 적재하고 있었다.
마치 작은 블록을 촘촘하게 쌓는 ‘테트리스’ 게임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택배 물량이 트럭에 가득 차면서 소분이 안 된 택배 물량들이 물류센터 도크 등에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대형 택배사 택배기사 김모씨는 “평소 배송 물량은 하루 400건이지만, 택배 없는 날이 끝나면서 배송 물량이 800~900건으로 폭증했다”며 “택배 없는 날 때문에 평소 대비 물량이 폭발해 업무가 과중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3일치 택배물량 한꺼번에...새벽 6시부터 ‘택배 대란’
택배기사들의 과중한 업무를 막기 위해 시행된 ‘택배 없는 날’ 연휴 직후 택배기사들은 “물량이 폭증하면서 업무 강도가 폭발하고 있다”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지난 16일 오전 전국 CJ대한통운·롯데·로젠택배 등 주요 택배사의 물류센터와 영업소에선 택배기사들은 폭증한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당초 출근 시간보다 이른 새벽 6시부터 출근하는 경우도 나왔다. 오전부터 밀린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뛰어든 상태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택배기사들이 쉬기 위해 만들어진 ‘택배 없는 날’의 역설’을 보여주고 있다”며 “기사마다 편차가 있지만 물량이 소폭 늘어난 기사가 있지만 평소 대비 물량이 2~3배 늘어난 기사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한 대형 택배사 기사는 “14일 택배 없는 날에도 근무하며 집하 업무를 했다”며 “앞으로 며칠간 물량이 많이 몰려 과부하가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토로했다.
반면 쿠팡·마켓컬리·쓱(SSG) 등 온라인 유통사들은 13~15일간 정상 영업하고 있다. 이날 택배사들이 모여있는 주요 물류단지에선 대형 택배사와 비교해 온라인 유통사들은 물량 폭증의 어려움이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쿠팡 등 온라인 유통사들은 ‘택배 없는 날’로 물량이 늘었거나 줄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택배사와 유통사들의 물류 시설이 몰린 물류센터에서도 쿠팡 등 다른 유통사들의 택배 적재 현장은 상대적으로 한산한 모습이었다.
전국 주요 택배 현장에서는 오전 9~10시 기점으로 각 택배사 터미널에서 출발한 간선차들이 쏙쏙 들어오면서 수만 개의 택배 박스를 물류 현장에 쏟아냈다. ‘택배 없는 날’에 처리하지 못한 11~12일 물량은 16~17일 배송해야 하고, 추가로 택배가 쉬는 날 동안 소비자들이 주문한 대규모 물량이 주요 택배 물류센터에 도착할 전망이다.
이날 택배 현장 곳곳에선 밀린 물량 처리를 위해 택배기사들이 추가 집하(물량 영업)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택배 분류부터 적재까지 평소보다 훨씬 많은 업무가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며 “저녁 7~8시를 넘어 밤샘 작업을 하는 기사들도 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택배 없는 날’은 지난 2019년 민주노총과 대형 택배사들이 도입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주 5~6일 일하는 택배기사들에게 휴식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으로는 돈을 내고 휴가를 가야 하는 처지를 일거에 해결하고자 도입했다는 것이 현장 택배기사들의 견해다. 주요 택배사들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간 근무만 하기 때문에 택배기사들끼리 서로 쉬더라도 업무 공백을 메워 줄 ‘백업 기사’ 확보가 대리점마다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그동안 기사가 휴가를 가기 위해선 20~30만원의 용차비를 내오는 것이 관행이었다.
전직 택배사 출신의 쿠팡 로지스틱스서비스(CLS) A 대리점 대표는 “대형 택배사 소속 택배기사들은 휴가를 가기 위해선 용차비를 내야 하는데, 과거 B 대형택배사에서 배송 건당 1200~1500원씩(배송물품 200개 기준 30만원)을 하루 낸 적이 있다”며 “예비군 훈련 3일에 100만원을 냈다”고 토로했다. 하루면 20~30만원이 소요되지만, 휴가를 2~3일 이상씩 쓸 경우 100만원 이상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여름철은 용차도 휴가를 가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평소 대비 천정부지 치솟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사업자인 택배기사 휴무 강제가 말이 되나” 소비자 분통
하지만 노조와 주요 택배사들은 “쿠팡을 포함한 유통사들도 ‘택배 없는 날’에 참여하라”고 매년 주장해 왔고 올해도 마찬가지다. 365일 로켓배송을 하는 쿠팡은 근무 일수가 많은 만큼, 쿠팡 친구를 포함한 배송 기사들이 근무일수를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고, 용차비 없이 조를 짜서 기사들이 자유롭게 휴가를 가고 있다고 반박해 왔다.
매년 ‘택배 없는 날’ 논란이 불거지면 소비자 불만이 적지 않았다. 이번에도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택배기사들의 휴식권도 중요하지만 “굳이 시스템이 잘 되어 알아서 잘 쉬는 회사도 강제로 참여해야 하는 민주노총 주장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소비자들은 ▲택배기사가 직원이 아닌 개인사업자로 스스로 일하고 쉬는 재량이 있으며 ▲태풍 카눈 등에 이어 1주가량 배송 지연이 되어 국민 불편이 크고 ▲ 모든 택배를 ‘올스톱’하면 국민생활에 적지 않은 타격이 올 것이라고 우려한해 택배 물동량은 36억 3000개(2021년 기준)으로 하루 평균 물동량이 1000만개 전후에 달하는데, 하루만 쉬어도 택배를 받는 국민 일상에 큰 타격이기 때문이다.
소비자 임모 씨는 “건별로 수당 받는 개인사업자들이 알아서 쉬는 거지 왜 쿠팡 등 유통사들도 강제로 쉬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쿠팡은 로켓배송 하는 기사들이 쿠팡친구 등 정직원도 있는데다 용차비 없이 휴가를 가는 상황에서 왜 휴무를 강요하는지 이해가 안된다”고 했다.
이번 택배 없는 날 시행으로, 소비자들이 택배사를 통해 주문한 물건은 오는 18~19일 또는 21~22일까지 배송이 지연되는 사례가 나올 전망이다. 이렇게 될 경우 지난 태풍 카눈(8~9일)으로 지연된 배송이 최대 1주일 이상 소요될 경우도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물류업계에서는 대형 택배사들이 택배 기사들의 근로조건과 휴무 체계를 혁신해 이들이 평소에 충분히 쉬는 체계를 만들면서 국민의 불편을 해소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물류업계 한 관계자는 “민주노총 주도의 택배노조원은 전체 택배 기사의 극소수에 불과하다”며 “모든 기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게 아니다. 택배기사는 물론 국민 혼선을 줄일 새로운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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