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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수준의 기후변화…태양광 대체할 조명으로 식량위기 극복

27년 조명 한우물 판 DSE, 식물생장용 LED로 신사업
부족한 햇볕, 조명 달면 생육기간 30%까지 단축
지구온난화·농가인구 감소로 결국 인도어팜·식물공장 체제로
태양광 보완하는 보광등에서 점차 대체등으로 진화

[이코노미스트 마켓in 권소현 기자] “아들이 가보라 해서 왔는데, 이제 농사지을 때 전기 써가면서 조명까지 설치해야 하는 거요?”

올해 4월 경북 상주시에서 열린 농업기계 박람회를 방문한 노부부가 디에스이(DSE) 부스를 찾았다. 설립 28년차 조명기업인 DSE는 이번 박람회에 식물생장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출품했다. 

“어르신, 한 20년 전에 물을 돈 주고 사먹는다는 생각 해보셨어요? 이제 다들 생수 사먹잖아요. 그리고 요새 각 가정마다 다 공기청정기 쓰죠? 돈 주고 맑은 공기를 사는 셈인 건데요. 햇빛도 마찬가지에요. 부족한 광량을 조명으로 보완하는 거죠. 식물생장용 LED 등 쓰면 더 빨리, 더 잘 자라요.” 

DSE 부스를 지키던 박길선 글로벌마케팅사업본부 차장의 설명을 들은 노부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스내 설치된 조명을 꼼꼼하게 둘러봤다. 

재해 수준의 가뭄, 폭염, 폭우를 번갈아 겪으면서 기후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기후변화가 이제는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상황. 식량안보 위기를 넘어 위협으로까지 다가오고 있다. 

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스마트팜 기술도 진일보하고 있다. 그 중 조명은 햇빛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넘어 대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1879년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이후 150년 가까이 어둠을 밝히는 역할에 머물렀던 조명이 애그테크(Agtech·Agriculture와 Technology를 결합한 용어)의 핵심으로 부상한 것이다. 

조명으로 상품성 높이고 출하시기 앞당긴다

농사는 1년동안의 노동을 수확기에 몰아서 보상받는 구조다. 비단 자연재해가 아니더라도 황사나 미세먼지로 일사량이 줄고 농작물 성장속도가 떨어지면 한해 농사를 망칠 수 있다. 생육 상태를 지켜보던 농장주들이 불안감에 먼저 조명을 찾는 경우가 많다. 

경북 김천 샤인머스캣 농장에 설치한 식물생장용 LED등[사진 DSE]

경북 김천 샤인머스캣 농장을 운영하는 한 농장주는 지난해 긴 장마로 인해 당도가 오르지 않고 껍질이 두꺼워지면서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을 경험하고는 DSE에 연락해왔다. 식물생장용 LED를 일부 설치해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조명을 받은 곳에선 얇은 껍질에 고당도 샤인머스캣이 영글고 있다. 

경기도 남양주 딸기 농가에서는 수확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LED 조명을 달았다. 딸기는 봄에 수확하는 과일이지만, 하우스 재배를 통해 겨울 과일로 자리잡았다. 조금이라도 일찍 출하하면 가격을 높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조명을 통해 일반 농가에 비해 2~3주 먼저 출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 식물생장용 LED등을 사용할 경우 작물별로 최소 15%에서 최대 30% 생육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또 수확물의 크기나 중량을 더 키울 수 있다. 

농가에서 입소문이 나다 보니 깻잎이나 고수 등 특정 식물에 대한 보광 문의도 많다. 하지만 조명을 켜놓으면 전기료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지금은 샤인머스캣처럼 비싼 작물을 위주로 생장용 조명을 설치한다. 

갈수록 보광을 넘어 태양광 대체역할에 더 무게가 실릴 것으로 보인다. 기후변화로 인해 외부 환경을 통제할 수 있는 인도어팜(Indoor Farm)이 대안으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농촌 인구가 노령화되면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인구가 줄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결국 식물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하는 체제로 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높다. 

이에 대비해 DSE는 경북 상주에서 식물 컨테이너 테스트베드를 운영하고 있다. 40피트 대형 컨테이너 6대에서 새싹, 과채, 엽채, 버섯류를 재배 중이다. 판매용이라기보다 이름 그대로 테스트용이다. 식물별로 빛의 파장, 광합성 유효방사, 광포화점 등을 연구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쌓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도 두드리고 있다. 그 첫 대상국은 몽골이다. 겨울이 긴데다 한겨울에는 영하 40도까지 떨어져 농사를 짓기엔 다소 척박한 자연환경이다. 때문에 농산물 수입 의존도가 90%에 달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는 해외 수입선이 끊기면서 농산물 공급 대란을 겪기도 했다. 식량안보 위협을 제대로 느낀 몽골 기업 아마그랜드가 먼저 DSE를 찾았다. 

몽골 아마그랜드가 DSE의 기술을 바탕으로 구축한 식물 생장 컨테이너 [사진 DSE]


DSE는 몽골에 컨테이너와 조명을 셋팅해주고 샐러드용 채소 중 하나인 이자벨과 미나리 생육에 나섰다. 이렇게 컨테이너에서 키운 채소는 식당 두곳과 계약을 맺고 독점 공급하고 있다. 앞으로 학교 급식시장을 정조준할 계획이다. 아무리 컨테이너 안에서 키운다고 해도 극한기에는 내부 온도를 유지하기 쉽지 않은 만큼 학교 건물 내 여유 공간을 활용해 식물을 키우고 이 곳에서 재배한 식물은 학교내 급식용으로 공급할 방침이다. 

R&D 성과…태양광에 가장 가까운 조명

실내등 전문이었던 DSE가 식물생장 조명으로 눈을 돌린 계기는 바로 개성공단 폐쇄였다. 가격경쟁력이 떨어진 만큼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특수등 분야를 눈여겨보고 있던 차에 버섯농가에서 식물생장용 등을 개발해달라고 먼저 의뢰가 들어왔다. 농가에서 원하는 빛의 스펙트럼대로 조명을 개발하면서 자연스럽게 식물생장용 조명에 주목하게 됐다. 

그간 식물생장용 등은 적색, 청색, 보라색 등 단색 파장을 주로 사용해왔다. DSE는 여러 파장을 담아 태양광에 가까운 LED 등을 개발했다. 연색지수 95Ra 이상으로 태양광의 100Ra에 가깝다. 단색 파장 등은 연색지수 50~60Ra로 실제 태양 빛의 절반 수준 밖에 안된다. 

실제 엽채류의 경우 모종을 심은 후 30일간 하루 10시간씩 연색지수 95Ra 이상인 조명을 쏘이면, 단색 파장 등에 비해 수확물의 중량이 40% 이상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DSE는 컨테이너나 식물공장, 습도가 높은 농원 등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조명에 방진, 방수, 방습 기능도 넣었다. DSE의 인천 송도 본사에는 극한의 조건에서 조명의 성능을 실험할 수 있는 각종 실험장비를 갖추고 있다. 

경북 상주에 위치한 DSE의 식물 컨테이너 테스트베드. [사진 DSE]

사후관리도 DSE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석달에 한번씩 농가를 찾아 전격광속이 적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지를 체크한다. 이를 관리하지 않으면 보광등을 설치한 의미가 없고, 자칫 1년 농사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DSE는 개성공단 폐쇄로  매출이 10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을 때에도 R&D 비용을 줄이지 않았다. 한국 조명 기업 중에서는 지적재산권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식물생장 LED 조명 브랜드 '히포팜텍' 뿐 아니라 동물전용 LED 조명 '무럭', 선박 및 항만 인프라용 LED '오션', UVC 파장을 이용한 가정용 살균기 브랜드 '히포씨저', 캠핑용 조명 '히포캠픽' 등 다양한 분야의 조명을 생산 중이다. 

DSE는 헬스케어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햇빛을 충분히 쬘 여유가 부족한 현대인을 위해 비타민D를 만들 자외선을 만들어내는 조명을 개발, 최근 특허를 받았다. 나아가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조명을 연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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