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표 떼는 게 ‘플랫폼 매력’ 높인다고?…소비재도 ‘다이내믹 프라이싱’ 열풍
[다이내믹 프라이싱 시대가 온다]①
‘유통의 목’ 차지한 플랫폼 경제…소비자 확보가 곧 경쟁력
매력적 서비스 구현의 일환으로 ‘다이내믹 프라이싱’ 주목
고물가에 부각된 ‘정찰제’ 단점 극복…강점이자 숙제인 AI
[이코노미스트 정두용 기자] 플랫폼 시장에 ‘가격 정책’이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온라인 플랫폼 기업의 영속성은 ‘사람을 오래 잡아두는 요소를 갖추고 있는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과 물건을 연결하는 것은 물론 이용자에게 콘텐츠와 같은 ‘무형적 가치’를 전달하며 수익을 올리기 때문이다. 사용자 규모는 플랫폼 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꼽힌다. 온라인 플랫폼 업계 종사자들이 “이용자를 끌어모을 수 있는 서비스를 발굴하기 위해 늘 고민”이라고 입을 모아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매력도’는 그래서 플랫폼 기업의 숙명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다수의 기업이 ‘플랫폼 매력도’ 측면에서 최근 주목하는 지점 중 하나는 ‘새로운 가격 정책’이다. 플랫폼 경제와 ‘동적 가격 설정’(Dynamic Pricing·이하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결합해 스마트폰·PC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의 손을 오래 붙잡겠단 취지다.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제품·서비스 가격을 일률적으로 정하지 않고 유동적으로 바꾸는 전략을 말한다. 실시간 수요·공급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정찰제’ 방식보다 더욱 경제 원론적인 접근이다.
한정적 분야서만 도입한 ‘다이내믹 프라이싱’…플랫폼 타고 ‘일상으로’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그간 소비자향(B2C) 산업 중 특정 분야에만 도입이 허락됐다. 여행 산업과 같이 수요·공급이 실시간으로 변화하지만, 제품·서비스 품질을 극적으로 변화하기 어려운 분야에서만 주로 전략을 활용해 왔다. 항공권 예매 금액이나 호텔 숙박 비용의 실시간 변화는 ‘다이내믹 프라이싱’ 전형적인 예시로도 꼽힌다.
정해진 시간에 떠야 하는 비행기의 빈자리나 예약이 안 된 빈방은 ‘사라지는 가치’다. 이를 값싸게라도 판매하는 게 기업에 이익이 되는 구조다. 수요가 몰릴 때 추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도 해당 전략을 도입한 이유가 됐다. 소비자도 상황에 따라 ‘값싼 표’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합리적이다. 여행 산업 외에도 ▲조조·심야 영화 할인 ▲시간대에 따라 가격이 다른 대리운전 ▲스포츠·콘서트 예매 가격 변화 등이 넓은 의미에서 ‘다이내믹 프라이싱’에 해당한다.
그러나 소비·공급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소매업 분야에선 다이내믹 프라이싱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매번 점주와 소비자 간 가격 흥정이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이다. 1870년대 발명된 ‘가격표’가 널리 사용된 이유이기도 하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도 유명한 수요·공급에 따른 가변적 가격 책정은 ‘가격표를 보고 물건을 구매하는 일상’에서 사실상 경험하기 어려웠다.
이런 환경이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에 따라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소매업 분야에서 ‘온라인 유통 플랫폼’ 등장은 시스템을 통해 실시간 수요·공급 파악할 수 있는 환경 마련을 의미한다.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도입할 수 있는 기본적 조건이 갖춰진 셈이다.
플랫폼 경제 자체가 커지면서 다이내믹 프라이싱의 소매업 도입은 더욱 두드러졌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비대면 문화 확산은 플랫폼 경제의 폭발적 성장으로 이어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 6월 발표한 ‘2022년 부가통신사업 시장 동향’에 따르면 플랫폼 등 국내 부가통신사업자의 총매출은 전년 대비 9.1% 증가한 876조2000억원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서 재화 부문에 속한 기업의 총매출은 214조4000억원으로 전체의 24.5%를 차지했다. 이는 서비스(489조4000억원·55.8%)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 재화 부문엔 쿠팡·이마트·컬리 등과 같은 ‘이커머스 플랫폼’과 당근·크몽 등 재화 거래의 장을 제공하는 목적의 ‘전자게시판 서비스’가 속한다.
플랫폼 기업들이 코로나19를 계기로 최근 3년간 ‘유통의 목’을 쥔 셈이다. 플랫폼 내 소비자 증가는 다이내믹 프라이싱의 합리적 가격 형성을 구현하는 데 핵심 요소다. 여기에 인공지능(AI) 기술과 빅데이터 분석 역량이 접목되면서 다이내믹 프라이싱 대중화가 이뤄졌단 분석이 나온다. 보다 정밀한 가격 변동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엔데믹(풍토병화)이 이뤄진 후엔 플랫폼마다 차별화 지점을 마련하기 위해 다이내믹 프라이싱을 도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단 견해도 관측된다.
플랫폼업계 관계자는 “다이내믹 프라이싱 전략의 도입은 이용자 입장에선 ‘합리적 소비’가, 기업 입장에선 ‘추가 수익의 기대’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윈-윈’(Win-Win)으로 평가된다”며 “이 전략의 도입 여부는 플랫폼의 매력도와도 직결돼 소비자 유입 요인 측면에서도 필요성이 충분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장점 많다지만…‘다이내믹 프라이싱’ 부작용은?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고물가 시대에 부각된 ‘정찰제의 단점’을 보완한다는 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정찰제를 시행하는 소비재 기업은 원가를 조절해 이익을 얻는다. 원가가 하락한다면 추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하다. 그러나 이를 반대로 말하면 고물가 시대엔 가격경쟁력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최근 토핑형 발효유 ‘비요뜨’ 가격 인상 조절이 대표적 사례다. 서울우유협동조합은 원윳값 상승에 따라 비요뜨 가격을 1800원에서 2300원으로 500원(27.8%) 올릴 계획을 세웠으나, 소비자 반발에 부딪혀 200원(11.1%)만 인상했다. 이커머스업계 관계자는 “장기화하고 있는 고물가와 플랫폼 확산이 맞물리며 정찰제의 단점을 보완하는 다이내믹 프라이싱이 주목받고 있다”며 “유통·물류·보험 등 분야를 막론하고 여러 기업이 앞다퉈 해당 전략을 도입하는 추세”라고 했다.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이커머스 세계 강자 ‘아마존’이 적극적으로 도입하면서 플랫폼 경제와의 시너지 효과를 이미 증명한 바 있다. 아마존은 동일 상품에 대한 경쟁사 가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 판매가를 끊임없이 변경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하루에만 상품 가격이 총 250만번 바뀌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이내믹 프라이싱이 적용된 제품 가격이 10분마다 한 번씩 바뀌는 셈이다. 이를 통해 ‘아마존에선 최저가를 찾을 수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며 플랫폼 유입이란 효과를 얻었다.
다만 가격 변동 기준이 플랫폼 기업의 입맛에 좌우될 수 있다는 점은 문제로 꼽힌다. 기업들이 경쟁 물품 가격·제품 생애 주기 등 빅데이터를 분석, AI를 적용해 수요와 공급을 실시간으로 변동하는 ‘합리적 가격 형성’ 구축을 주장하곤 있지만 아직은 기술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주진열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경쟁법학회를 통해 논문 ‘빅데이터·인공지능을 이용한 이윤극대화 가격차별과 독점규제법’을 지난해 3월 발행한 바 있다. 그는 논문에서 “AI를 이용한 동태적 가격 설정에서 최적 가격이라고 함은 불확실성 상태에서 AI가 확률 함수에 따라 기계적으로 추론한 가격일 뿐 실제로 최적 가격인지는 알 수 없다”며 “정보가 불완전한 현실에서는 어떤 AI를 이용하더라도 최적 가격이라고 여겨지는 가격을 확률로 추측할 수 있을 뿐”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어떤 AI 알고리즘이 최적 가격이라고 추정한 가격이 실제로 최적 가격인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AI를 이용한 결과 이윤이 증가했다고 하더라도 그 이윤이 극대화된 수준인지는 알 수 없다”며 “AI 가격차별이 경쟁제한행위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 비해 더 높은 가격을 부과받는 사람들로서는 불공정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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