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일반
“아파트보다 삼성전자·하이닉스”…젊은 부자들부터 바뀌는 부의 공식
- [K증시, 머니무브의 시대]③
“집 사서 버티기” 대신 주식·ETF·연금으로 자산 이동
부동산 기대수익률 낮아지며 ‘코리아 머니무브’ 조짐
[이코노미스트 이승훈 기자] “예전엔 서울 강남 아파트가 부의 상징이었다면, 최근에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나 인공지능(AI) 상장지수펀드(ETF)를 꾸준히 모으겠다는 자산가들이 늘고 있습니다.”
최근 자산관리 업계에서는 이 같은 분위기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과거처럼 대출을 최대한 끌어 아파트 가격 상승에 기대기보다 ▲국내외 주식 ▲ETF ▲연금 등을 활용해 장기적으로 자산을 불리려는 흐름이 자산가와 젊은 고소득층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시장에서는 이를 단순 투자 트렌드 변화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부의 공식’ 자체가 바뀌기 시작한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수십 년간 이어진 ‘부동산 중심 자산 축적 시대’가 점차 흔들리면서 자금이 자본시장으로 이동하는 이른바 ‘머니무브’(Money Move)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동안 한국에서 부의 상징은 단연 부동산이었다. 특히 서울 강남 아파트와 재건축 단지는 단순 주거 공간을 넘어 가장 강력한 자산 증식 수단으로 인식돼 왔다. 실제 한국은행과 통계청 등에 따르면 국내 가계 자산 가운데 부동산 비중은 주요 선진국 대비 높은 수준이다. 미국 등은 금융자산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반면 한국은 여전히 부동산 중심 자산 구조가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구조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가계부채 확대 ▲자산 양극화 ▲청년층 박탈감 등을 키웠다고 지적한다. 시중 자금이 생산적 투자보다 아파트 가격 상승에 과도하게 몰리면서 기업 투자와 혁신 성장 동력이 약화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한국에서는 좋은 기업에 투자해 자산을 불리기보다 결국 부동산 가격 상승이 더 큰 수익을 가져다준다는 인식이 강했다”며 “자본시장이 경제 성장의 중심 역할을 하지 못했던 배경”이라고 말했다.
“이젠 부동산만 믿기 어렵다”…달라진 자산가들
시장에서는 최근 정책 환경 변화도 자금 흐름 변화의 배경으로 꼽는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시장에서는 ▲대출 규제 강화 가능성 ▲토지거래허가구역 운영 지속 ▲다주택자 규제 재강화 우려 등이 거론되면서 과거처럼 레버리지를 활용한 부동산 투자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최근 서울 핵심 지역에서는 여전히 신고가 거래가 이어지고 있지만 시장 분위기는 이전과 다르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양도소득세 중과 부활 ▲보유세 부담 확대 가능성 ▲금리 변수 등이 맞물리며 과거처럼 집값이 계속 오른다는 기대감은 이전보다 약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프라이빗뱅크(PB) 업계에서는 자산가들의 상담 내용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김세한 하나증권 더(THE) 센터필드 W PB는 “최근 자산가와 젊은 고소득층 사이에서는 향후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 가운데 어느 쪽의 기대수익률이 더 높을지를 두고 관심이 커지고 있다”며 “다주택자나 상가 형태의 수익형 부동산을 처분하고 금융자산으로 옮기려는 상담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삼성전자 주식을 팔아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아 투자)로 부동산을 매수하는 흐름이 강했다면 최근에는 금융자산에 대한 신뢰도가 상당히 높아진 분위기”라며 “ETF 기반 장기투자와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관심도 함께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용진 한국투자증권 PB센터 팀장은 “최근 거액 자산가들 사이에서는 국내 ETF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표주를 매수하려는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젊은 자산가들 사이에서는 서울 아파트 PIR(연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이 20배를 넘는 반면 국내 반도체주의 PER(주가수익비율)은 5~6배 수준이라는 점을 비교하며 주식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이 상대적으로 합리적이라는 인식도 확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증권사로 유입되는 자금 상당수는 은행권 퇴직연금이나 예금, 부동산 매수 대기자금 또는 부동산 매도자금 등에서 이동한 자금”이라며 “자산시장 내 자금 시프트가 실제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집 한 채보다 포트폴리오”…변화하는 투자 공식
특히 이런 변화는 젊은 자산가층에서 더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과거에는 “어느 지역 아파트를 샀느냐”가 자산 증식의 핵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어떤 산업과 기업에 투자하느냐”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 기술주와 인공지능(AI) 관련 ETF, 국내 반도체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산 포트폴리오 자체를 금융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움직임도 늘고 있다.
시장에서는 정부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정책과 주주환원 강화 기조도 국내 증시 재평가 기대를 키우는 요인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조선 ▲방산 ▲전력 인프라 등 한국 대표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부각되면서 “한국 증시가 장기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부동산 중심 자산 구조가 단기간에 완전히 바뀌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여전히 서울 핵심 입지 아파트에 대한 선호가 강하고, 부동산이 교육과 거주 안정성, 상속 문제 등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장에서는 적어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는 변화가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영끌해서 집 사기’가 가장 강력한 재테크 공식이었다면 이제는 글로벌 산업 변화와 기업 경쟁력을 보고 투자하려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며 “한국 자산시장도 조금씩 ‘부동산 중심’에서 ‘자본시장 중심’으로 이동하는 초입에 들어선 모습”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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