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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쟁이 신세 버티다 폐업까지”…건설업 불황 고조

[계속되는 PF 공포] ①
지난해 건설사 300곳 문 닫고 21곳 부도
시공능력평가액 16위 태영건설 결국 워크아웃 신청

서울 여의도 태영건설 본사. [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박지윤 기자]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고 원자잿값‧인건비 등 건설 원가가 오른 가운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 공포가 건설업계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지난해 건설사 10곳 중 4곳은 정상적으로 채무를 상환하기 어려운 ‘잠재적 부실기업’으로 지목됐고, 폐업에 이른 종합건설사는 300여 곳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시공능력평가액(시평액) 16위의 중견건설사 태영건설이 PF 대출 문제로 최근 기업재무구조 개선작업(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금융업계에도 PF 대출 관련 자금 회수 우려가 전반적으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윤세영 태영건설 회장 채권단에 직접 호소 

지난해 12월 28일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만기가 도래한 PF 대출을 상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워크아웃은 부도 위기를 맞은 기업 가운데 회생 가능성이 있는 곳에 채무상환 능력을 제고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부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채권단과 채무자가 신뢰를 바탕으로 구조조정, 상환 연장, 자금 지원 등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2023년 시공능력평가액(시평액) 상위 16위에 올랐던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하게 만든 요인은 480억원 규모 서울 성수동 오피스빌딩 PF 대출 미상환이었다. 

태영건설은 저금리 시대를 맞아 주택시장이 호황이었던 2019~2022년 적극적으로 개발사업 수주를 늘리고 외형을 키웠다. 하지만 지난 2022년부터 시작된 가파른 금리 인상과 함께 원자재 가격·인건비 상승 등으로 조달 비용이 늘어나면서 부동산 경기가 침체기로 돌아섰다. 수주 이후 착공하지 못한 개발 사업들이 줄줄이 대기하면서 이자 비용이 늘어났지만, 사업성이 떨어져 삽을 뜨지 못하면서 태영건설의 유동성에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투자증권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태영건설의 PF 대출 잔액은 약 4조4100억원이다. 이 가운데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제외한 순수 부동산 개발 PF 잔액은 약 3조2000억원에 이른다. 한국신용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태영건설의 PF 보증 채무도 지난해 11월 말 기준 3조6027억원에 달하는 상태다. 순차입금은 약 1조9300억원이며 부채비율은 478%에 이른다.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회장은 지난 3일 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채권단 설명회에 나와 채무 상환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윤 회장은 태영건설의 부도를 막고 기업을 살릴 수 있도록 워크아웃을 신청해 기업 회생의 첫걸음을 뗐다고 설명했다. 건설과 부동산업은 늘 부침이 있는데 태영건설은 지난 몇 년 동안 PF 사업을 하면서 좋은 성과를 거둬왔고 가능성을 증명해 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를 과신한 나머지 자기 관리에 소홀하면서 부도 위기를 맞았다며 태영건설 대주단의 워크아웃 승인을 요청했다.

윤세영 회장은 “1년 내내 유동성 위기로 가시밭길을 걷던 태영건설은 결국 흑자 부도 위기를 맞으면서 창립 50주년의 영광은 고사하고 망할 처지가 됐다”며 “태영건설이 이대로 무너지면 협력업체에 큰 피해를 남기면서 줄도산을 피할 수 없게 되고 채권단에게도 피해가 돌아간다”고 말했다. 또한 “태영건설의 현재 수주 잔고는 12조원이 넘어 향후 3년 동안 연 3조원 이상의 매출이 가능하다”며 “영업이익률도 4%로 동종업계 상위권 회사 평균치보다 높으며 실제 문제가 되는 우발채무 규모도 2조5000억원 정도”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만기가 돌아오는 PF 대출에 대한 고민이 비단 태영건설 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SK에코플랜트· 롯데건설·한화 건설부문·현대건설 등도 마찬가지다. 오는 2월 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이들 회사채 규모는 총 1조4200억여 원에 달한다.

김승준 하나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태영건설과 롯데건설의 공통점은 도급 PF 대출 규모가 크고, 1년 안에 돌아오는 PF 대출도 유동성보다 크고, 양호하지 않은 지역에서 도급 PF 대출 보유 비중이 크다는 것”이라며 “올해 1분기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롯데건설의 미착공 PF 대출 규모 3조2000억원 가운데 서울 제외 지역의 미착공 PF 대출은 2조5000억원으로 추정되지만, 롯데건설 보유현금 규모는 2조3000억원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김 연구원은 “2조5000억원 전체를 채무 인수하거나 자금 보충을 해야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최근 서울 이외 지역에서의 청약 결과가 부진하다는 점에서 부담스러운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동부건설‧신세계건설 등 신용등급‧전망치 하향

신용평가업계는 국내 주요 건설사에 PF 대출 관련 우발채무를 우려하며 신용등급 또는 전망치를 하향하고 있다. 지난해 신용등급을 부여한 건설사 21곳 가운데 등급이 하향 조정된 건설사는 8곳이다.

한국기업평가(한기평)는 지난해 12월 말 GS건설의 무보증사채(A+)와 기업어음(A2+) 등급을 각각 ‘A’, ‘A2’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해 시평액 22위인 동부건설의 기업어음 및 전자단기사채(STB) 등급도 기존 ‘A3+’에서 ‘A3’로 내렸다. 지난해 시평액 32위인 신세계건설(A)의 무보증사채 전망치도 ‘부정적’으로 낮췄다.

한기평 관계자는 “올해 공급 축소가 본격화하면서 전년 대비 매출이 감소할 것”이라며 “금융권의 PF 관련 익스포저(위험 노출액) 축소로 PF 우발채무 리스크가 건설업계 자금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중대형 건설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중소형 건설사는 자금난으로 인한 타격이 더 크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KISCON)에 따르면 지난 2023년 1~11월 폐업한 종합건설사는 366곳이다. 연간 기준으로 2020년 211곳, 2021년 169곳, 2022년 261곳 등 100~200대를 유지하다가 지난해 300곳을 훌쩍 넘어선 것이다. 2022년 1~11월에 214곳이 폐업한 것과 비교하면 약 70% 늘어났다. 

지난해 부도로 이어진 건설사는 총 21곳으로 종합건설사는 9곳, 전문건설사 12곳이다. 대창기업·신일건설 등이 회생절차에 들어갔고, 에이치엔아이엔씨(HN Inc)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지난 2일에는 경남지역 8위 건설사로 ‘남명더라우’ 브랜드를 보유한 남명건설이 최종부도 처리됐다.

남명건설은 경남 함안 지역주택조합 사업장에서 공사비를 회수하지 못하면서 유동성 위기를 맞았고 만기가 돌아온 12억4000만원 규모 어음을 막지 못했다. 남명건설의 누적 공사 미수금은 600억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형 건설사 관계자는 “현재 본 PF 전 단계인 브릿지론 연이자가 두 자릿수인 상태에서 만기 연장을 해준다고 해도 본 PF 대출 실행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라며 “본 PF 대출로 넘어가기 위해서 담보나 보증을 서라고 하는데 그 정도로 체력이 탄탄한 시행사 또는 건설사는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부동산개발업계 관계자는 “당장 가장 효력이 강한 지원 방안은 금융감독원에서 금융사에 엄격하게 제한하는 PF 대출 관리 기준을 완화해 주는 것이라고 본다”며 “태영건설 같은 유명한 건설사도 워크아웃 신청까지 하는 상황에서 대형사들을 제외한 중소형 건설사 또는 지방 분양 물량이 몰려있는 기업들이 자금난을 타개할 수 있는 자구책을 마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건설기업 10곳 중 4곳, 잠재적 부실기업


기업의 채무상환능력을 나타내는 지표인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잠재적 부실기업도 전체의 40%를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다. 이자보상배율은 영업이익을 금융비용 즉 이자비용으로 나눠서 산출하는 비율이다.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이면 회사가 벌어들이는 영업이익보다 이자비용이 많아 정상적인 채무상환이 어려운 잠재적 부실기업으로 분류한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0월 28일 발간한 ‘2022년도 건설 외부감사 기업(건설외감기업) 경영실적 및 한계기업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건설업 외감기업 2232곳 가운데 잠재적 부실기업은 총 929개 업체로 41.6%를 기록했다. 

잠재적 부실기업은 2018년 32.3%(642곳)에서 매년 상승해 4년 만에 10%포인트(p) 가까이 올랐다. 지난해 건설업계의 이자보상배율 1 미만 기업 비중은 전체 산업 평균인 36.4%보다 높았다. 잠재적 부실기업 가운데 종합건설업체는 전년(2021년) 대비 0.5%p 증가한 70.9%를 차지했고, 전문건설업체는 0.5%p 감소한 29.7%의 비중을 보였다.

이자보상배율이 3년 동안 1 미만을 기록한 ‘한계기업’ 역시 총 387곳으로, 전체의 17.3%를 기록했다. 지역별 한계기업 분포를 살펴보면 수도권이 17.4%, 비수도권이 20.3%로 조사됐다.

지난해 건설업계의 부채비율도 144.6%로, 2022년(133.5%)보다 11%p 이상 높아졌다. 부채비율은 2018년 132.8%에서 2019∼2020년 120%대로 내려왔지만, 지난해 140%대로 다시 치솟았다.

지난해 건설업계의 평균 매출액은 1107억원으로 전년 대비 15.4% 늘었지만, 영업이익률은 4.5%로 전년보다 1.5%p 떨어졌다. 순이익률도 2021년 4.9%에서 지난해 3.6%로 하락했다.

태영건설의 서울 성동구 성수동 개발사업 부지. [사진 연합뉴스]
김태준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한계기업이 늘어난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의 저금리 기조로 부채 증가가 이뤄졌지만, 물가 상승에 따른 금리 인상이 이어지면서 이자 비용 부담이 급증한 것이 원인”이라며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한 건설자재 가격으로 건설업체의 수익률이 악화한 것도 영업이익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또한 김 연구위원은 “건설 경기의 반등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내년 이후 건설업체의 전반적인 부실이 본격화할 것”이라며 “건설업계 유동성 공급 현실화와 부실기업들에 대한 선제적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정상적으로 영업하는 전문 및 중소 건설업체들의 연쇄 부도 및 흑자 도산이 이뤄지지 않도록 공정한 생태계 관리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1군 건설사들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대부분 사내 리스크 관리부서를 보유하고 있다”며 “신규 수주 사업을 선별하고 이미 수주한 현장도 사업성에 문제가 없는지 꼼꼼하게 체크하면서 부실 사업장이나 분양성이 부족한 사업을 걸러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허가를 받아서 분양에 돌입할 수 있는 본 PF 사업장이나 조합원 보유 대물이 있는 정비사업만 선별해 사업을 추진하면서 금융권에서 대위변제를 통해 부실 채권 회수에 문제가 없도록 관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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