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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소법 악용한다”…민원 남발에 몸살 앓는 보험사

[‘블랙 컨슈머’에 우는 금융사] ②
금융 민원 매년 증가세…보험 비중 53%로 과반 차지
“금소법 등 제도 악용 블랙 컨슈머, 불이익 장치 필요”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이코노미스트 윤형준 기자] 국내 금융 민원이 매년 늘어가는 가운데, 보험업권의 민원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 보험업계의 시름이 깊다.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을 악용해 보험사와 설계사들에게 금전적 배상을 요구하는 악성 민원이 속출하자 정상적인 민원과 악성 민원을 철저히 구분하고, ‘블랙 컨슈머’(Black Consumer)에게 확실한 패널티를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3년 금융 민원 및 상담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금융 민원 건수는 9만3842건으로 전년(8만7113건)보다 7.7% 늘어났다. 앞서 2021년(8만4499건)과 비교하면 11.06%나 증가했다.

업권별 민원 비중을 살펴보면 보험업권이 전체의 53%(손해보험 38.6%+생명보험 14.4%)로 과반을 차지했다. 생보업계의 경우 지난해 1만3529건의 민원이 접수돼 전년(1만6733건) 대비 19.1% 감소했지만, 손보업계에선 같은 기간 3만5157건에서 3만6238건으로 3.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업계 민원은 증가 추세에 있다. 손보 민원 건수는 지난해 3분기 9831건으로 1만건에 미치지 못했으나 작년 4분기 1만90건, 올해 1분기 1만555건으로 점차 늘어났다. 생보 민원 건수도 작년 3분기 4372건, 작년 4분기 4374건, 올해 1분기 4794건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法 악용하는 블랙 컨슈머…보험사·설계사는 골머리

금융위원회와 금융경제연구소 등 유관기관에 따르면 전체 민원 중 블랙 컨슈머의 비중은 7~10%가량으로 알려진다. 비교적 비중이 크지 않지만 블랙 컨슈머 대응에 따른 관련 비용 등을 고려하면 문제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금감원의 민원 처리 평균 기간은 2019년 24.8일이었으나 지난해는 48.2일로 불과 4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업계에선 보험 관련 민원이 증가하는 배경에 금소법의 영향이 크다는 판단이다. 금소법을 악용해 고의적으로 민원을 남발하는 블랙 컨슈머가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금소법은 지난 2021년 3월 25일 시행된 법으로 은행·저축은행·보험사·증권사·카드사 등 다양한 금융회사와 금융상품에 적용된다.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금융상품 6대 판매 원칙 ▲판매 이후의 청약 철회 ▲문제 발생 시 손해배상 ▲위법 계약 해지 ▲분쟁조정 제도 등의 조항이 규정돼 있다.

금소법 6대 판매원칙. [사진 금융위원회]
보험업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블랙 컨슈머 유형으로는 자신의 병력에 대해 청약서에 고지 및 기재를 해놓고도 보험금을 받지 못할 상황이 되면 ‘고지 내용을 설계사가 임의로 기재했다’는 식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다. 금소법에 명시된 판매 원칙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한 보험설계사는 “금소법이 자리잡은 지도 꽤 시간이 흘렀고, 설계사들의 교육·의식 수준도 높아져 청약 전 ‘알릴 의무(고지) 사항’은 고객들에게 가장 공들여 강조하는 과정이다”라며 “그런데 자신은 고지 사항을 안내받지 못했다며 금전적인 배상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땐 설계사도 보험사도 모두 난감해질 때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 설계사들을 비롯한 보험업계는 ‘과잉 규제’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금소법 시행으로 도입된 위법계약해지권이 대표적이다. 위법계약해지권은 금융상품이 6대 판매 원칙을 위반한 경우 5년 이내 계약 해지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금융상품 중 보험은 특히나 장기계약이 많아 해지권이 부담스럽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블랙 컨슈머가 단순 변심인데도 불완전판매라고 민원을 토로하면 손 쓸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블랙 컨슈머에 디스인센티브 필요”

현실이 이렇다 보니 보험업계에선 돈으로 민원을 해소하려는 행위도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다. 소비자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금융사의 모럴 해저드로 이어지는 셈이다. 물론 금융당국은 앞서 2013년 ‘상품권 등 물품을 제공하면서 민원을 무마하는 행위를 금지하라’고 공문을 내렸다. 하지만 현장에서 물품 제공은 민원 해결의 빠른 방법으로써  여겨지고 있어 근절이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비정상적 현실을 없애기 위해서는 단순 민원과 악성 민원을 명확히 구분해 보험사들의 민원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제언한다. 실제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비분쟁성 보험 민원을 생보·손보협회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상정되기도 했으나 결국 불발됐다. 금융투자협회와 여신금융협회는 단순 민원을 협회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권순채 한국금융소비자보호재단 선임연구원은 “보험사 등 금융권의 블랙 컨슈머 문제는 오래된 문제임에도 아직까지 정확한 정의(定義)조차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라며 “악성 민원 관리 체계를 명확히 해 블랙 컨슈머 분류 근거나 기준을 확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블랙 컨슈머들에게도 ‘악성 민원을 하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며 “블랙 컨슈머로 지정됐을 때 금융상품 가입이 제한되거나 정상적인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식의 유인책(디스인센티브)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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