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시경 노래인 줄”...AI 커버곡, 법적 문제 없을까[백세희의 컬쳐&로]
‘밤양갱’ 인기 속 쏟아지는 AI 커버곡
AI 이용한 음성 복제의 법률적 문제점
[백세희 디케이엘파트너스 법률사무소 변호사] 석 달 전쯤인가. 가수 비비의 노래 ‘밤양갱’이 한창 유행일 때, 같은 반주에 고(故) 김광석의 목소리가 씌워진 음원을 들어봤다. 그 무렵 필자는 유명인의 목소리를 이용하는 것에 대한 법률적 의견을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고 있었다. 김광석의 인공지능(AI) 커버(cover·음악 분야에서는 타인의 곡을 재연주 또는 재가창 하는 것, 종래 ‘리메이크’라고도 불리었다)는 과연 어떨지 참고차 들어본 것이었다.
해당 음원 게시물의 댓글창은 칭찬 일색이었다. ‘눈물이 난다’, ‘이것이 바로 AI의 순기능’, ‘AI에게 감사하다’ 등등, 권리 침해라는 관점에서 차갑게 접근한 나 자신이 머쓱해질 정도였다. 하염없이 김광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어느새 가수 양희은을 비롯해 이수현(악뮤의 보컬)·오혁(혁오의 보컬)·성시경·박명수의 버전까지 모두 듣고 말았다.
허락 없이 이뤄진 타인의 음성 이용
AI 커버는 단순히 게시물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보이스피싱과 같은 경제범죄나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용되기도 한다. 지난 1월 미국에서는 정치 컨설턴트가 AI로 조 바이든 대통령의 가짜 음성 메시지를 만들어 민주당원들에게 전화를 돌려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가장 광범위하게 이뤄지는 도용은 역시 AI 커버곡(曲)의 제작이다. 박명수와 양희은 등 밤양갱 AI 커버곡의 여러 목소리 주인이 커버곡 제작을 허락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밤양갱의 작사‧작곡가가 이 노래를 마음껏 이용해 다른 가수의 목소리를 입히라고 허락한 것 같지도 않다. 이렇듯 온라인상 대부분의 커버곡은 타인의 음성과 배경이 되는 악곡을 허락 없이 이용하고 있다.
허락 없이 유명인의 목소리를 이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막연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권리 침해가 있었는지를 따지기 시작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쉬운 이해를 위해 대상곡을 정해 법적 침해 부분을 분석해보자. AI 커버 대상곡은 장기하가 작사·작곡하고 비비가 부른 ‘밤양갱’으로 AI 산출물인 커버곡의 목소리 주인공은 ‘김광석’으로 설정했다.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저작권 침해 문제다. 목소리 자체는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라 볼 수 없으므로 저작권을 부여받는 대상이 될 수 없다. AI 커버곡과 저작권 침해 문제는 목소리의 도용 그 자체가 아니라, 커버곡을 만드는 기술적인 측면과 관련이 있다.
AI 커버곡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음원 파일에서 음성과 MR(목소리가 빠진 배경음악)을 분리해야 한다. 김광석이 실제로 부른 노래를 이용해 그의 목소리를 분리하고 밤양갱에서는 비비의 목소리가 빠진 MR을 추출한다.
가수의 목소리·코러스·에코·악기 연주 등이 혼재된 음원에서 목소리와 MR만을 분리하기 위해서는 여러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허락 없는 음원의 복제와 전송이 수반된다. 저작권법상 복제권과 전송권이 침해되는 순간이다.
김광석이 부른 노래 중에는 그가 만든 것도 있고, 다른 작사·작곡가의 작품도 있다. 목소리와 MR의 추출 과정에서 김광석(정확히는 그의 유족)과 그가 부른 노래의 다른 저작권자, 그리고 밤양갱의 작사·작곡가인 장기하의 복제‧전송권이 모두 침해된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추출한 목소리와 MR을 합치는 과정을 거쳐 AI 커버곡이 완성된다. 김광석이 부른 여러 노래의 목소리를 학습해 다양한 억양과 톤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 나아가 밤양갱의 MR을, 학습된 김광석의 목소리와 합성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로 복제권과 전송권 침해가 문제될 수밖에 없다.
월 이용료를 내는 합법적인 음악 사이트에서 다운로드 받은 음원을 활용한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유튜브뮤직’이나 ‘멜론’·‘지니뮤직’ 등 음악 사이트가 우리에게 돈을 받고 제공하는 것은 음악을 다운로드 받아 감상할 수 있는 서비스일 뿐, AI 프로그램을 이용해 음원의 일부를 추출하거나 변형시켜 공개하는 것까지 허락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타인의 음성 이용,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음성권 침해
저작권 침해가 AI 프로그램을 이용한 복제와 전송이라는 기술적 측면의 문제라면, 목소리 그 자체의 허락 없는 이용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약칭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및 인격권 침해와 관련이 있다.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타목은 ‘국내에 널리 인식되고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타인의 성명, 초상, 음성, 서명 등 그 타인을 식별할 수 있는 표지를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하여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부정경쟁행위로 규정해 이를 금지하고 있다. 이른바 ‘퍼블리시티권’을 명문화한 것이다. 음성, 즉 목소리를 도용당한 유명인은 AI 커버곡을 만든 이에게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을 주장해볼 수 있다.
그런데 도용당한 내 목소리가 ‘국내에 널리 인식되고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정도가 아닐 때는 어떨까? 아무리 무명의 일개 시민이라도 자신의 음성에 대한 결정권을 갖고 있다. 우리 판례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음성이 함부로 녹음되거나 재생, 방송, 복제, 배포되지 않을 권리를 가지는데, 이러한 음성권은 헌법 제10조 제1문에 의하여 헌법적으로도 보장되고 있는 권리이므로, 음성권에 대한 부당한 침해는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위 판례에 의할 때 온라인상 퍼져있는 타인의 목소리를 AI 프로그램 등을 이용해 새로운 음성 파일로 만들어 복제·전송하는 행위는 그 대상자가 유명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음성권을 침해한 것이라 판단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내가 아닌 나,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
앞서 살펴본 내용은 AI 커버곡과 현행법 사이의 긴장 관계였다. 지금까지는 가수들과 음악 저작권자들이 드러내어 항의를 한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AI 커버곡이 원곡의 수요를 대체하는 정도로 퍼진다면 더는 묵과하기 힘든 상황이 올 수 있다.
허나 앞서 설명한 실정법 위반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나도 모르는 내가 있을 수 있다’는 실존적 두려움이 아닐까. 누구라도 기억에 없는 자신의 모습을 보거나 목소리를 듣게 된다면 오싹함을 느낄 수 있다. 나의 인격 표지가 타인의 평가 대상이 되거나 범죄에 이용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두려움을 일으키기 충분하다.
내가 아닌 내가 마치 나인 것처럼 존재할 수도 있다는 실존적 불안. 비단 유명인이 아니라도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일이다. 인격적 표지의 도용 문제가 더 널리 퍼지고 심각해지기 전에 이러한 위험을 인정하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법이론과 제도적인 해결점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백세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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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음원 게시물의 댓글창은 칭찬 일색이었다. ‘눈물이 난다’, ‘이것이 바로 AI의 순기능’, ‘AI에게 감사하다’ 등등, 권리 침해라는 관점에서 차갑게 접근한 나 자신이 머쓱해질 정도였다. 하염없이 김광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어느새 가수 양희은을 비롯해 이수현(악뮤의 보컬)·오혁(혁오의 보컬)·성시경·박명수의 버전까지 모두 듣고 말았다.
허락 없이 이뤄진 타인의 음성 이용
AI 커버는 단순히 게시물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보이스피싱과 같은 경제범죄나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용되기도 한다. 지난 1월 미국에서는 정치 컨설턴트가 AI로 조 바이든 대통령의 가짜 음성 메시지를 만들어 민주당원들에게 전화를 돌려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가장 광범위하게 이뤄지는 도용은 역시 AI 커버곡(曲)의 제작이다. 박명수와 양희은 등 밤양갱 AI 커버곡의 여러 목소리 주인이 커버곡 제작을 허락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밤양갱의 작사‧작곡가가 이 노래를 마음껏 이용해 다른 가수의 목소리를 입히라고 허락한 것 같지도 않다. 이렇듯 온라인상 대부분의 커버곡은 타인의 음성과 배경이 되는 악곡을 허락 없이 이용하고 있다.
허락 없이 유명인의 목소리를 이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막연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권리 침해가 있었는지를 따지기 시작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쉬운 이해를 위해 대상곡을 정해 법적 침해 부분을 분석해보자. AI 커버 대상곡은 장기하가 작사·작곡하고 비비가 부른 ‘밤양갱’으로 AI 산출물인 커버곡의 목소리 주인공은 ‘김광석’으로 설정했다.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저작권 침해 문제다. 목소리 자체는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라 볼 수 없으므로 저작권을 부여받는 대상이 될 수 없다. AI 커버곡과 저작권 침해 문제는 목소리의 도용 그 자체가 아니라, 커버곡을 만드는 기술적인 측면과 관련이 있다.
AI 커버곡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음원 파일에서 음성과 MR(목소리가 빠진 배경음악)을 분리해야 한다. 김광석이 실제로 부른 노래를 이용해 그의 목소리를 분리하고 밤양갱에서는 비비의 목소리가 빠진 MR을 추출한다.
가수의 목소리·코러스·에코·악기 연주 등이 혼재된 음원에서 목소리와 MR만을 분리하기 위해서는 여러 프로그램을 사용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허락 없는 음원의 복제와 전송이 수반된다. 저작권법상 복제권과 전송권이 침해되는 순간이다.
김광석이 부른 노래 중에는 그가 만든 것도 있고, 다른 작사·작곡가의 작품도 있다. 목소리와 MR의 추출 과정에서 김광석(정확히는 그의 유족)과 그가 부른 노래의 다른 저작권자, 그리고 밤양갱의 작사·작곡가인 장기하의 복제‧전송권이 모두 침해된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추출한 목소리와 MR을 합치는 과정을 거쳐 AI 커버곡이 완성된다. 김광석이 부른 여러 노래의 목소리를 학습해 다양한 억양과 톤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 나아가 밤양갱의 MR을, 학습된 김광석의 목소리와 합성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로 복제권과 전송권 침해가 문제될 수밖에 없다.
월 이용료를 내는 합법적인 음악 사이트에서 다운로드 받은 음원을 활용한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유튜브뮤직’이나 ‘멜론’·‘지니뮤직’ 등 음악 사이트가 우리에게 돈을 받고 제공하는 것은 음악을 다운로드 받아 감상할 수 있는 서비스일 뿐, AI 프로그램을 이용해 음원의 일부를 추출하거나 변형시켜 공개하는 것까지 허락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타인의 음성 이용,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음성권 침해
저작권 침해가 AI 프로그램을 이용한 복제와 전송이라는 기술적 측면의 문제라면, 목소리 그 자체의 허락 없는 이용은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약칭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및 인격권 침해와 관련이 있다.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타목은 ‘국내에 널리 인식되고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타인의 성명, 초상, 음성, 서명 등 그 타인을 식별할 수 있는 표지를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하여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부정경쟁행위로 규정해 이를 금지하고 있다. 이른바 ‘퍼블리시티권’을 명문화한 것이다. 음성, 즉 목소리를 도용당한 유명인은 AI 커버곡을 만든 이에게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을 주장해볼 수 있다.
그런데 도용당한 내 목소리가 ‘국내에 널리 인식되고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정도가 아닐 때는 어떨까? 아무리 무명의 일개 시민이라도 자신의 음성에 대한 결정권을 갖고 있다. 우리 판례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음성이 함부로 녹음되거나 재생, 방송, 복제, 배포되지 않을 권리를 가지는데, 이러한 음성권은 헌법 제10조 제1문에 의하여 헌법적으로도 보장되고 있는 권리이므로, 음성권에 대한 부당한 침해는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위 판례에 의할 때 온라인상 퍼져있는 타인의 목소리를 AI 프로그램 등을 이용해 새로운 음성 파일로 만들어 복제·전송하는 행위는 그 대상자가 유명인이 아니라 할지라도 음성권을 침해한 것이라 판단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내가 아닌 나,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
앞서 살펴본 내용은 AI 커버곡과 현행법 사이의 긴장 관계였다. 지금까지는 가수들과 음악 저작권자들이 드러내어 항의를 한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AI 커버곡이 원곡의 수요를 대체하는 정도로 퍼진다면 더는 묵과하기 힘든 상황이 올 수 있다.
허나 앞서 설명한 실정법 위반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나도 모르는 내가 있을 수 있다’는 실존적 두려움이 아닐까. 누구라도 기억에 없는 자신의 모습을 보거나 목소리를 듣게 된다면 오싹함을 느낄 수 있다. 나의 인격 표지가 타인의 평가 대상이 되거나 범죄에 이용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두려움을 일으키기 충분하다.
내가 아닌 내가 마치 나인 것처럼 존재할 수도 있다는 실존적 불안. 비단 유명인이 아니라도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일이다. 인격적 표지의 도용 문제가 더 널리 퍼지고 심각해지기 전에 이러한 위험을 인정하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법이론과 제도적인 해결점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백세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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