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 대란’ 또 올라…재료 없어 약 못 만드는 제약사들
[의약품, ‘재료’가 없다]①
자급률 11.9% 불과…중국·인도에 의지하는 현실
의약품 가격 치솟아 ‘생산 중단’ 기업 속출
[이코노미스트 선모은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세계 시민의 삶의 방식을 바꿨다. 산업 분야 곳곳도 예외는 아니다. 세계 의약품 시장은 코로나19가 유행하며 백신과 치료제 개발로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감염병이 확산하며 국가 간 교류가 중단되자 정부는 자력으로 국가의 위기 상황을 돌파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코로나19가 유행하며 ‘원료의약품’(API)의 자급률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이유다.
원료의약품 자급률 반토막…정책 지원 필요
원료의약품은 완제의약품을 만들 때 사용되는 재료다. 제약사는 원료의약품을 사들여 일반의약품(OTC)과 전문의약품(ETC) 등을 생산한다. 환자들이 의약품을 제때 사용하려면, 제약사가 원료의약품을 잘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이 구축돼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유행하는 동안 원료의약품 생산 국가들이 공급을 중단해 일부 국가에서 몇몇 의약품을 생산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는 제약사가 원료의약품의 상당수를 해외에서 사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 시장에서 중국와 인도의 원료의약품 공급 비중이 매우 높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2022년 11.9%를 기록했다. 1년 전(24.4%)과 비교하면 반토막 수준이다.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10여 년 동안 20~30%대를 유지했지만, 코로나19를 기점으로 10% 수준까지 하락했다.
문제는 원료의약품의 자급률이 낮은 상황에서 코로나19와 같은 보건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환자들에게 의약품을 제대로 공급할 수 없다는 점이다. 특정 국가나 기업이 원료의약품을 공급하지 않기로 하면 꼼짝없이 완제의약품을 생산할 수 없어서다. 우리나라는 특히 중국과 인도에서 큰 규모의 원료의약품을 사들이고 있다. 제약사가 중국에서 사들이는 원료의약품 규모는 2019년 1조원 정도였지만, 2022년 1조2000억원을 넘어섰다.
전문가들도 원료의약품의 자급률을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은 올해 초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의약품 공급망을 안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하며 세계적으로 필수의약품을 자국에서 개발·생산하려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연구개발(R&D)과 시설 투자 등을 통해 원료의약품의 자급률을 높이려는 정책이 부족하다는 판단에서다.
노 회장은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보건 위기 상황에 대비하려면 개발·생산 체계를 미리 구축해야 한다”며 “완제의약품의 70%를 차지하는 복제약(제네릭)과 개량신약 등을 의약품 시장에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 의약품을 제대로 수급하지 못하는 사태를 방지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는 “국산 원료에 대해 세제 혜택을 줘 인센티브 제공의 범위를 확대할 것”이라며 “국산 원료로 생산된 필수의약품의 약가 보상 체계도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정윤택 연세대 약학대학 겸임교수도 한국제약바이오협회의 글로벌 이슈 파노라마에 실린 ‘의약품 글로벌 공급망 확보를 위한 해외 동향과 정책 제언’이라는 글을 통해 “의약품 안보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며 “원료의약품의 공급원을 늘려 중국과 인도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특히 코로나19와 같은 보건 위기 상황에서 필요한 의약품을 선정하고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노 회장에 앞서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을 지낸 원희목 서울대 약학대학 특임교수도 지난해 초 기자간담회를 열고 “원료의약품의 자급률을 높여 제약주권을 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료의약품을 해외에서만 조달한다면 또 다른 감염병이 세계적으로 유행할 때 보건 위기를 키울 수 있어서다. 원 교수는 “약가 우대와 세제 지원 확대, 국산 원료 활용 기업에 대한 약가 차등제 예외 적용 등 규제를 혁신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감기약 대란’ 또 일까
원료의약품의 자급률을 높이지 못하면 환자의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다. 코로나19가 유행하는 동안 약국에서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의약품을 구할 수 없었던 이유도 ‘의약품 자급률’과 연관돼 있다. 다국적 제약사가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해 자국에 집중적으로 공급한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의약품이 국내에 들어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증상 완화를 위해 감기약을 찾는 환자가 많아졌고, 이는 감기약 품귀 현상으로 이어졌다.
원료의약품의 가격이 높아지자 생산을 중단하는 기업도 속출하고 있다. 앞서 영일제약은 기관지염 등에 쓰는 의약품 ‘암브록솔’의 원료 가격이 올라 일부 제품을 생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암브록솔은 점액의 분비를 촉진해 가래를 묽게 하는 약물이다. 가래를 배출하지 못해 생기는 호흡기질환을 치료할 때 쓴다. 프레지니우스 카비도 단백질아미노산제제인 글라민의 원료 등의 가격이 올라 생산을 중단하기로 했다.
대원제약도 지난해 진통소염제인 펜세타의 생산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 의약품을 제조하기 위한 원료의약품을 제대로 구할 수 없어서다. 한국페링제약도 뇌하수체 기능 검사에 쓰는 약물인 씨알이에치페링의 원료의약품을 확보하지 못해 제품을 공급하지 않기로 했다. 종근당도 원료의약품의 수급에 문제가 생겨 의약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포세프의 공급 중단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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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료의약품 자급률 반토막…정책 지원 필요
원료의약품은 완제의약품을 만들 때 사용되는 재료다. 제약사는 원료의약품을 사들여 일반의약품(OTC)과 전문의약품(ETC) 등을 생산한다. 환자들이 의약품을 제때 사용하려면, 제약사가 원료의약품을 잘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이 구축돼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유행하는 동안 원료의약품 생산 국가들이 공급을 중단해 일부 국가에서 몇몇 의약품을 생산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는 제약사가 원료의약품의 상당수를 해외에서 사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 시장에서 중국와 인도의 원료의약품 공급 비중이 매우 높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2022년 11.9%를 기록했다. 1년 전(24.4%)과 비교하면 반토막 수준이다.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10여 년 동안 20~30%대를 유지했지만, 코로나19를 기점으로 10% 수준까지 하락했다.
문제는 원료의약품의 자급률이 낮은 상황에서 코로나19와 같은 보건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환자들에게 의약품을 제대로 공급할 수 없다는 점이다. 특정 국가나 기업이 원료의약품을 공급하지 않기로 하면 꼼짝없이 완제의약품을 생산할 수 없어서다. 우리나라는 특히 중국과 인도에서 큰 규모의 원료의약품을 사들이고 있다. 제약사가 중국에서 사들이는 원료의약품 규모는 2019년 1조원 정도였지만, 2022년 1조2000억원을 넘어섰다.
전문가들도 원료의약품의 자급률을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은 올해 초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의약품 공급망을 안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하며 세계적으로 필수의약품을 자국에서 개발·생산하려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연구개발(R&D)과 시설 투자 등을 통해 원료의약품의 자급률을 높이려는 정책이 부족하다는 판단에서다.
노 회장은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보건 위기 상황에 대비하려면 개발·생산 체계를 미리 구축해야 한다”며 “완제의약품의 70%를 차지하는 복제약(제네릭)과 개량신약 등을 의약품 시장에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 의약품을 제대로 수급하지 못하는 사태를 방지하겠다”고 했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는 “국산 원료에 대해 세제 혜택을 줘 인센티브 제공의 범위를 확대할 것”이라며 “국산 원료로 생산된 필수의약품의 약가 보상 체계도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정윤택 연세대 약학대학 겸임교수도 한국제약바이오협회의 글로벌 이슈 파노라마에 실린 ‘의약품 글로벌 공급망 확보를 위한 해외 동향과 정책 제언’이라는 글을 통해 “의약품 안보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며 “원료의약품의 공급원을 늘려 중국과 인도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특히 코로나19와 같은 보건 위기 상황에서 필요한 의약품을 선정하고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노 회장에 앞서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을 지낸 원희목 서울대 약학대학 특임교수도 지난해 초 기자간담회를 열고 “원료의약품의 자급률을 높여 제약주권을 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료의약품을 해외에서만 조달한다면 또 다른 감염병이 세계적으로 유행할 때 보건 위기를 키울 수 있어서다. 원 교수는 “약가 우대와 세제 지원 확대, 국산 원료 활용 기업에 대한 약가 차등제 예외 적용 등 규제를 혁신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감기약 대란’ 또 일까
원료의약품의 자급률을 높이지 못하면 환자의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다. 코로나19가 유행하는 동안 약국에서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의약품을 구할 수 없었던 이유도 ‘의약품 자급률’과 연관돼 있다. 다국적 제약사가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해 자국에 집중적으로 공급한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의약품이 국내에 들어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증상 완화를 위해 감기약을 찾는 환자가 많아졌고, 이는 감기약 품귀 현상으로 이어졌다.
원료의약품의 가격이 높아지자 생산을 중단하는 기업도 속출하고 있다. 앞서 영일제약은 기관지염 등에 쓰는 의약품 ‘암브록솔’의 원료 가격이 올라 일부 제품을 생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암브록솔은 점액의 분비를 촉진해 가래를 묽게 하는 약물이다. 가래를 배출하지 못해 생기는 호흡기질환을 치료할 때 쓴다. 프레지니우스 카비도 단백질아미노산제제인 글라민의 원료 등의 가격이 올라 생산을 중단하기로 했다.
대원제약도 지난해 진통소염제인 펜세타의 생산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 의약품을 제조하기 위한 원료의약품을 제대로 구할 수 없어서다. 한국페링제약도 뇌하수체 기능 검사에 쓰는 약물인 씨알이에치페링의 원료의약품을 확보하지 못해 제품을 공급하지 않기로 했다. 종근당도 원료의약품의 수급에 문제가 생겨 의약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포세프의 공급 중단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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