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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쿠팡처럼 되나"...유통사들 'PB상품 규제 리스크' 확산

국내 유통사 80%는 직매입-중개상품 모두 파는 '이중적 지위'
공정위 "PB상품-중개상품 차별 안된다"...기존 유통사들 고민
국내 PB상품 비중 전체 3% 불과...시장 위축 우려도

[사진 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가 쿠팡 자사브랜드(PB) 상품 밀어주기에 대해 1400억원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향후 PB상품 관련 시장이 위축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공정위가 이번 사건에 대해 내린 판단 중 하나는 직매입(자사상품)을 팔면서 동시에 오픈마켓(중개상품)을 영위하는 ‘이중적 지위’에 있는 유통사가 자사상품을 우대하면 문제가 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국내 주요 이커머스는 물론, 대형마트·백화점 등 유통업계에는 이런 이중적 지위를 가진 업체가 이미 많은 실정이다. 이에 이번 제재로 국내 PB상품 산업이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유통업계 "PB우선 노출, 고물가 시대 전략인데..."

1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14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쿠팡은 현재 공정위 시정명령 통보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의 시정명령은 통상 예고 한달 내 홈페이지에 게재된다.

공정위는 쿠팡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약 6만4000개의 쿠팡 소유 로켓배송 직매입과 PB상품을 우선 노출했고 4억개의 오픈마켓 상품보다 자사상품을 상단에 올리는 ‘위계행위’를 했다고 판단했다. 쿠팡은 이에 즉각 행정소송할 방침이다. 

유통업계가 이번 공정위 제재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이중적 지위’ 때문이다. 공정위는 유통업체가 직매입을 통해 직접 자사상품을 팔면서 입점업체의 중개상품 판매까지 동시에 할 경우 ‘이해충돌’ 소지가 크다는 입장이다. 즉 ‘자사상품’과 유통사에 소유권이 없는 ‘납품·입점업체 상품’의 차별이 문제의 본질이라는 얘기다.



쿠팡은 이에 대해 "고물가 시대 PB상품은 유통업체의 차별화 전략"이라며 "이미 모든 유통업체가 각자 PB상품을 우선 추천 진열하고 소비자도 이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는 입장문을 냈다.

문제는 국내 유통업체 가운데 ‘이중적 지위’에서 자유로운 업체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공정위가 지난해 말 발표한 ‘유통거래 실태조사’(2022년 기준)를 보면, 국내 편의점·온라인몰·대형마트·백화점 등 35개 브랜드 가운데 직매입 상품만 파는 곳은 6곳으로 대부분 GS25·CU 등 편의점들이다.

그 중 하나인 마켓컬리는 최근 판매자가 스스로 입점해 파는 오픈마켓 사업을 론칭했기 때문에 현재 기준으로 보면 ‘직매입 온리’ 유통사는 5곳에 불과하다.

‘위수탁’ 사업을 자사상품(특정매입 포함) 판매와 병행하는 곳은 27곳이고, 100% 임대만 하는 곳은 2곳이었다. 35개 브랜드 중 77%는 한 채널에서 자사상품도 팔지만, 입점업체와 납품업체 소유 상품 판매나 중개 비즈니스를 한다는 뜻이다.

매장 임대는 공간을 빌려주고 사용료를 받는 ‘판매자 사업’이고, 위수탁은 소유권을 기준으로 보면 납품업체에 있기 때문에 유통사의 자사상품이 아니다.

온라인몰인 쿠팡과 11번가 등은 직매입과 오픈마켓을 병행하고 있다. 또 쓱닷컴, 롯데온 등도 위수탁 사업을 한다. 대형마트도 수수료를 받고 공간 일부를 떼어내 판매자에게 제공한다는 점에서 자사상품만 팔지 않고 있다.

’이중적 지위’ 유통업체들 어쩌나

쟁점은 이중적 지위의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유통기업들이 상당수 PB상품을 오프라인과 온라인 공간에서 우선 노출, 판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형마트는 입구 매대나 ‘골든존’(170cm 이하 매대)에서 PB상품을 우선 판촉하고 있고, 온라인 쇼핑몰도 웬만한 식료품과 생활필수품 PB상품을 검색어마다 상단에 진열한다.

온라인몰에 접속하면 기본 ‘추천순’이나 ‘인기순’으로 손쉽게 생수나 휴지, 우유, 물티슈를 검색 상단에서 찾을 수 있다.

대형마트도 오프라인에서 추천하는 PB상품을 온라인몰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메인에 올려놓고 있다. 백화점도 쥬얼리 등 PB브랜드 매장을 유동고객이 많은 1층에 연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PB상품의 경우, 대기업 브랜드만큼의 인지도가 없어 출시 직후 이런 형식의 마케팅을 하지 않으면 금새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업계에선 공정위의 다음 스텝을 주시하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 13일 쿠팡 제재 브리핑에서 “자사상품만 우대하고 경쟁사업자의 상품은 불리하게 한다든지, 소비자를 오인하게 하거나 경쟁사업자를 배제하는 행태가 있으면 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자사상품 우대 사례가 나타나고, 상대적으로 오픈마켓 등 납품업체의 노출이 제한받을 경우 예외없이 공정거래법 위반이 될 수 있다고 암시한 것이다.

유통업계는 “국내 PB상품 비중이 5%도 안 되는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규제 리스크가 닥쳤다”는 분위기다. 가성비가 좋은 PB상품이라도, 무리한 상품 추천은 위법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근거가 이번 쿠팡 제재를 통해 마련된 것 아니냐는 얘기다.

국내 PB관련 시장이 위축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재 한국은 전 세계에서 PB상품 비중으로만 보면 최하위권 그룹에 속해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Statista)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한국의 PB상품 비중은 3%로 조사대상 50개국 중 43위를 기록했다. 이는 레바논·사우디보다 낮은 순위다.

스위스, 독일 등 서유럽 국가들은 PB상품 비중이 전체에서 40~50% 수준이고 미국은 19%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PB상품 비중이 80%에 달하는 독일 다국적 유통체인 알디 또는 30~50%에 이르는 트레이더 조, 샘즈클럽 같은 곳들은 한국에선 ‘자사우대’로 폄훼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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