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인 듯 인수 아닌 듯…빅테크의 ‘AI 스타트업’ 확보 전쟁 [한세희 테크&라이프]
천정부지 오른 생성형 AI 개발비…빅테크에 흡수되는 혁신 스타트업들
‘플랫폼 독과점’ 규제 나선 정부들…소규모 인수합병 관리 강화 시작
[한세희 IT 칼럼니스트] 6월 말 ‘전자상거래 거인’ 아마존이 주목받는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어뎁트’의 창업자와 핵심 인력을 영입했다.
어뎁트는 사무실 업무를 자동화하는 AI 모델과 에이전트를 개발한다는 목표로 설립된 회사다. AI가 사람들이 컴퓨터로 수행하는 업무와 과제 해결 과정을 학습해 현장에서 필요한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한다. “이 제품에 대한 월간 매출 보고서를 작성하라”거나 “청사진에서 이 두 지점 사이에 계단을 그려 줘” 같은 일을 시킬 수 있다. 텍스트 생성을 넘어 업무를 실제로 수행하며 짐을 덜어주는 AI를 개발한다는 것이다.
이 회사는 구글에서 AI 모델 개발에 주요 역할을 하고 오픈AI에서 엔지니어링 부사장을 지낸 데이비드 루안이 창업해 최고경영자(CEO)를 맡았다. 초거대언어모델(LLM) 발달의 기폭제가 된 ‘트랜스포머’ 모델을 공개하는 논문에 저자로 이름을 올린 니키 파르마와 아시시 바스와니 등 구글의 핵심 인력도 함께 창업했다.
2022년 창업해 1년여 만에 주요 벤처투자사로부터 3억5000만 달러(약 48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신생 기업)으로 부상했다.
AI 스타트업 핵심 인력만 ‘쏙’
하지만 4800억원의 돈도 세상을 바꿀 AI 에이전트를 개발하기엔 부족했던 것일까? 어뎁트는 실질적으로 아마존에 흡수되는 선택을 했다. 창업자와 공동창업자 등 핵심 인력이 아마존에 들어가 새로 생기는 ‘인공일반지능 자율성’(AGI Autonomy) 팀에서 일하기로 했다. 아마존의 AI 기술 및 서비스 개발에 힘을 보태는 것이다. 또 아마존은 어뎁트의 기술 일부를 라이선스로 쓰기로 했다. 어뎁트는 20여 명의 직원이 남아 별개 회사로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인수 절차를 밟지는 않았지만, 실질적으로 아마존이 인수한 셈이다. 빅테크가 유망한 스타트업의 핵심 인력과 기술은 가져가지만 정작 회사는 남겨 놓는 기묘한 방식의 협업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낯설지 않다. 딥마인드 공동창업자 출신으로 2022년 생성형 AI 스타트업 인플렉션AI를 창업한 무스타파 슐레이만 역시 지난 3월 마이크로소프트에 합류했다.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소비자 AI 사업을 담당하는 ‘MS AI’ 조직을 이끌며 코파일럿 등 AI 연구개발을 이끄는 역할을 맡았다. 공동창업자와 연구진 등 핵심 인력도 대부분 마이크로소프트로 이동했다.
인플렉션AI는 남은 인력으로 기업 대상 AI 모델을 개발하는 사업을 진행하며 ‘인플렉션-2.5’ 등 자사 모델을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서비스 ‘애저’에서 제공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모델의 라이선스 비용 형식으로 6억5000만 달러(약 9000억원)를 지불하고, 인플렉션AI는 이 돈을 투자사에 돌려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링크드인 창업자 리드 호프먼의 벤처투자사 그레이록 등과 함께 이 회사에 15억 달러(약 2조770억원)를 투자한 바 있다.
AI에 도전하는 스타트업 입장에서 이는 생성형 AI의 개발과 사업화에 드는 비용이 감당하지 못할 수준으로 치솟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초거대 AI 모델을 학습시키고 운영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반도체·컴퓨팅 비용·전력 등이 소모된다. AI 학습에 가장 많이 쓰이는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칩은 값이 천정부지로 올랐지만, 여전히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상황이다. 결국 이미 수만 개 이상의 칩을 확보했고, 계속 사들일 여력이 있으며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과 사용자 데이터도 풍부한 빅테크를 후발 주자가 따라가긴 어렵다는 얘기다.
어뎁트나 인플렉션AI같이 슈퍼스타 연구자가 창업해 적지 않은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미지 생성 AI 모델 ‘스테빌리티 디퓨전’으로 주목받은 스테빌리티AI도 자금난이 악화하면서 경영진이 물갈이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따라 마이크로소프트·구글·아마존·메타 등 소수 빅테크나 오픈AI·앤스로픽 같은 일부 AI 선도 기업에 AI 분야 주도권이 더욱 집중되리라는 우려도 커진다. 스타트업의 혁신 시도가 줄어들어 시장에 긴장감도 떨어질 것이다. 자금·인프라·데이터의 열세를 딛고 멀리서 추격해야 하는 한국 입장에서도 답답한 일이다.
반독점 규제 피해 우수 스타트업 확보
한편 빅테크 입장에서 이 같은 기묘한 행보는 독점과 반경쟁 행위에 대한 규제를 피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그간 빅테크는 ‘될성부른’ 스타트업을 초기에 인수해 필요한 기술을 흡수하거나 시장을 선점하고, 때로는 경쟁의 싹을 자르곤 했다. 페이스북이 직원 수십 명 규모이던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을 거액에 인수해 세계 소셜미디어와 모바일 메신저 시장을 장악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오로지 인재 영입을 위해 회사를 사들이고 인수한 회사의 서비스는 닫는 ‘재능 인수’(acqu-hire)도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스타트업 창업자가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되니 창업을 활성화하는 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빅테크가 성장하며 플랫폼을 독과점하는 문제가 발생하자 미국과 유럽의 반독점 규제 기관들은 그간 특별히 감독하지 않던 소규모 인수합병에 대한 관리도 강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디지털 플랫폼에 이어 AI 주도권까지 내어주게 생긴 유럽의 몽니(?)가 만만찮다. 이제 빅테크의 스타트업 인수는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하는 쉽지 않은 일이 돼 버렸다.
하지만 정부에 정책이 있다면, 기업엔 대책이 있는 법.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이 인플렉션AI와 어뎁트를 흡수하는 방식은 정부 규제를 피해서 앞선 기술과 우수 인력을 가진 스타트업을 손에 넣는 새로운 방법을 자본이 개발했음을 보여준다.
정부 역시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플렉션AI의 거래가 정부 규제를 회피하기 위한 꼼수가 아닌지 조사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또 FTC는 연초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픈AI 투자’와 ‘아마존의 앤스로픽 투자’에 문제가 없는지 조사를 개시한 바 있다. 유럽연합(EU) 역시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픈AI 투자가 AI 분야의 경쟁을 저해하는지 조사했다가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판정을 내린 바 있으나, 최근 새로운 관점에서 재조사에 착수할 의사를 밝혔다.
AI는 세계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묶은 빅테크들에도, 이들을 통제해야 하면서 AI 기술도 확보해야 하는 국가들에 사활적 이해가 달린 일이 됐다. 물론 우리로선 이렇게 꼭 확보하고 싶은 기술이나 인력이 있기만이라도 하면 좋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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