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서울시 “훼손된 그린벨트 개발”…전문가들 “집값 못 잡는다”
[논란의 그린벨트]①
그린벨트에 주택공급, 부동산 가격 안정 사례 없어
훼손된 곳 개발 “불법 행위 부추기는 시그널 우려”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정부가 서울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을 대규모로 풀어 내년까지 수도권에 8만 가구 규모의 신규 택지를 조성하기로 했다. 주택 공급 부족 우려에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아파트값이 급등하면서 이른바 ‘특단의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지난 8월 8일 정부는 부동산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이런 내용의 ‘국민 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가 그린벨트를 대대적으로 해제하는 건 2012년 이후 약 3년 만이다.
정부는 오는 11월 구체적인 그린벨트 해제 지역 등 5만 가구 공급 계획을 먼저 발표하고, 2025년에 3만 가구 규모의 택지를 지정한다고 발표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주택 공급 확대에 동참한다”고 밝혔다.
이날 정부가 주택 공급 대책을 발표한 것은 수요자들이 원하는 서울 도심 등 주요 입지에 주택이 충분히 공급된다는 신호를 주기 위한 대책으로 풀이된다. 최근 서울 등 수도권에 주택이 수요만큼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불안감이 커지고 그 불안감이 아파트 매수세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면서 공급 계획을 서둘러 발표한 것이다.
한국부동산원이 지난 8월 29일 발표한 ‘8월 넷째 주(26일 기준) 아파트 매매가격 동향’을 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전주보다 0.26% 오르며 23주째 상승세를 이어갔다. 3월 넷째 주 이후 서울 아파트값은 지칠 줄 모르고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부동산원은 “마포·용산구 일대 선호단지에서 신고가 갱신 사례가 포착되는 등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파트 매수세 열기도 뜨거워졌다. 국토교통부의 7월 주택통계를 보면 같은 달 서울 주택 매매거래(신고일 기준)는 1만2783건으로 집계됐다. 1년 전 거래량(6081건)과 비교하면 110.2% 늘어난 수치다. 서울 월간 주택 거래 건수가 1만 건을 넘은 건 2021년 8월 이후 처음이다. 서울 주택 매매 가운데 ‘아파트’ 거래는 9518건으로 6월 6150건보다 54.8% 증가했다.
“그린벨트 해제로는 집값 못 잡는다”
문제는 그린벨트를 풀어 주택을 공급하면 집값을 잡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린벨트를 해제할 수 있느냐 하는 물음에는 엇갈린 의견을 내놨지만, 한결같이 “주택 가격 억제 효과는 없거나 미미할 것”이라고 했다.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게 ‘택지’를 공급하는 것이지, 당장 아파트를 지어 시장에 주택을 공급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가 꾸준히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줄 수는 있어도 수요를 억누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해석이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는 “정부의 주택공급 신호가 가격 안정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실질적인 효과는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택지 조성 후 공급 입주까지 최소 7~8년 이상, 보통 10년의 기간 소요되기 때문이다. 서 교수는 “시장 상황이 달라지면, 공급 효과가 없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그린벨트를 보전하되 사유재산 침해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정부가 수용해 국유지로 관리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은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도시개혁센터 부장 역시 “그린벨트를 풀어 집값이 잡힌 사례가 없었다.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킨 예가 있는지 정부에 묻고 싶다”며 “(정부가) 오히려 투기를 조장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다면 그린벨트를 해제할 수도 있지만, 그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굳이 이런 정책을 낼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문재인 정부에서 전국 집값이 폭등할 때 특단의 대책이라는 것을 내놨지만, 효과가 없는 것을 봤다. ‘특단의 대책’, ‘핀셋 규제’ 등 이런 정책이 효과를 보지 못했다”며 “그린벨트를 해제해야 할 이유가 적다”고 말했다.
실제 서울연구원이 2022년 8월 발간한 연구보고서 ‘수도권 개발제한구역 50년 정책변천사’에서도 그린벨트 해제 후 국책사업을 추진한 강남보금자리주택지구에 대해 “부동산 시장 안정화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 중 하나로 추진된 보금자리주택사업지구인 강남지구는 개발제한구역인 자곡동, 세곡동 일대 93.9만m²에 공영개발이 추진됐다. 분양주택으로 전환되는 5년‧10년 임대, 분납임대주택과 장기전세주택이 전체의 32%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지만, 부동산 가격 안정에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준공‧입주 이후에도 주변 아파트 매매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했다는 것이다. 분양주택의 경우 최초 분양가가 시세보다 낮게 책정됐지만, 이후 주변 시세를 따라가는 이른바 ‘키 맞추기’ 문제가 발생하면서 ‘로또분양’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훼손된 그린벨트’ 개발…관리‧처벌도 없어 무책임 지적
오세훈 시장은 지난달 9일 기자간담회에서 “그린벨트 중 이미 훼손된 곳, 녹색공간의 기능을 이미 상실한 곳에 한정할 것”이라고 했다. “개발제한구역 지정 취지와 기본 원칙에는 변함이 없지만, 인구 소멸 위기를 직면하는 상황에서 미래세대를 위한 주택 공급을 위해 그린벨트를 일부 해제하는 것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인 언급한 그린벨트 해제를 위한 ‘기준’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린벨트는 자연환경 보전 등을 위해 지정한 지역인데, 정부나 지자체가 이를 관리하지 않고 오히려 훼손된 곳을 중심으로 개발한다는 것이 잘못됐다는 주장이다.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개발제한구역법) 제2조(국가 등의 책무)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개발제한구역을 지정하는 목적이 달성되도록 성실히 관리해야 한다’. ‘또 국민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개발제한구역을 관리하기 위해 수행하는 업무에 협력해야 하며, 개발제한구역이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에서는 해제하려는 ‘훼손된 그린벨트’에 대한 관리 등에 대해 별다른 계획은 밝히지 않고 있다.
윤은주 경실련 도시개혁센터 부장은 “개발이 아니라 정부와 (서울)시가 그린벨트 관리를 하지 않은 것에 책임을 져야 한다”며 “이런 기준은 무책임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서진형 교수는 “이같은 기준대로 그린벨트를 해제해 개발할 경우 ‘불법 행위로 그린벨트 훼손하면 언젠가 택지 개발이 될 수 있다’는 시그널을 줄 수 있다”며 “한 번 훼손한 그린벨트는 원상회복이 어렵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잘 보존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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