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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조원 적자 한전, 직원들의 보조금 빼먹기와 울림 없는 사과 [EDITOR’S LETTER]

사진은 전남 나주시 빛가람동에 있는 한전 본사 사옥의 모습.[사진 한국전력]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회사는 40조원 적자 상태인데, 한전 임직원들은 보조금 빼먹기

최근 한국전력 임직원 31명이 배우자나 자녀 등의 이름으로 태양광 발전소를 운영하며 ‘태양광 보조금’을 최대 수억 원씩 빼돌렸다가 적발된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지난해 말 감사원 감사 및 자체 조사에서 같은 사유로 한전 임직원 10명이 해임되고 118명이 정직되는 징계를 받은 일이 있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또 수십 명이 발전소 보조금 빼먹기를 한 것입니다. 2021년 이후 누적적자만 40조원에 달하고 총부채가 200조원이 넘는 기업에서 임직원들은 규정까지 위반하며 혈세로 자기 배를 불리려 했던 셈입니다.

한전에 따르면 지난해 약 2만3000명의 전 직원이 ‘겸직금지 의무 준수 및 태양광 비리 근절 서약’에 서명했습니다. 서약서에는 공사 허가 없이 임직원 본인 명의는 물론 겸직으로 판단될 여지가 있는 가족 등 지인 명의로 태양광 발전 등 전력 사업을 실질적으로 소유하거나 운영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담기도 했습니다. 이런 약속을 들먹이지 않아도 한전 임직원은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제37조’ ‘한국전력공사 정관 제32조’ 및 한전의 ‘취업규칙 제11조’ 등에 따라 겸직금지 의무를 지켜야 합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전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정부는 10월 24일부터 산업용 전기 요금을 평균 9.7% 인상했습니다. 서민경제 부담 등을 고려해 가정용·일반용 전기요금은 동결하기로 했지만, 산업용 전기 요금이 인상되면 물가가 오르고 그 부담이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한전의 위기를 막기 위해 5000만 국민이 십시일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결정으로 한전은 연간 4조7000억원가량의 추가 수익을 걷을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머지않아 가정용 전기 요금도 인상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부담을 알면서도 한전을 살리려는 것은 전기가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자원이고, 한전이라는 기업과 그 역할이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결코 국민들 주머니 사정이 풍족해서가 아닙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분기 가계신용 통계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이 1896조2000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1분기 말보다 13조8000억원이 늘어난 수준인데, 이는 가구당 8340만원의 빚이 있다는 뜻입니다. 연간 내야 하는 이자로 치면 300만원 넘는 수준입니다. 가계 상황이 좋지 않아도 허리띠를 조이면서까지 한전에 기꺼이 돈을 낸다는 뜻입니다.

한전은 국민의 기대와 바람을 알고 있는 걸까요. 기업을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썩은 살점부터 도려내야 합니다. 이런 문제가 터지지 않게 대비하고 관리 감독해야 했을 회사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겁니다. 한전은 이번 사건에 대해 “일부 직원의 겸직 의무 위반으로 태양광 발전 사업의 공정성을 훼손한 데 대해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과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런 약속에 공허함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불과 며칠 전 전기요금 인상 당시 한전은 이런 약속을 했습니다. “국민들께 약속한 자구노력을 철저히 이행해 경영정상화에 박차를 기하고 국가 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하겠다”고 말입니다. 이번 약속이 또다시 공약(空約)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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