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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R 제도…국내 창업 기획자들에게 반전의 기회 가능 [최화준의 스타트업 인사이트]

창업 기획자 위기 높아져…최근 라이선스 자진 반납 사례 증가
초빙 기업가들...창업가의 부족한 점 채워줄 수 있어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2024년 11월 1일  서울 중구 컨퍼런스 달개비에서 열린 '글로벌 창업허브 조성을 위한 민간 자문위원회 킥오프 회의'에서 참석자들과 글로벌 창업허브 프로그램 운영방안 및 공간 설계 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최화준 아산나눔재단 AER지식연구소 연구원] 스타트업의 초기 성장을 도와주는 창업 기획자의 위기가 심상치 않다. 업계에서 엑셀러레이터 혹은 AC로 불리는 이들은 초기 스타트업을 발굴 및 보육하고, 부분적으로 투자까지 집행한다. 초기 스타트업 생태계의 핵심 활동 집단인 셈이다. 국내에서는 2017년 1월 정부가 지정·인가가 아닌 등록 방식으로 한국형 액셀러레이터 제도를 도입했다. 

엑셀러레이터 제도는 도입 첫해에 무려 54개 사가 등록할 만큼 인기가 높았다. 국내 창업 기획자들은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면서 그 수가 2022년 400개를 넘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정점으로 간판을 내리는 곳이 늘고 있다. 벤처투자종합포털 정보에 따르면 2024년 9월 기준 국내 창업 기획자 수는 381개이다. 최근 몇 년간 라이선스를 자진 반납하는 창업 기획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문을 닫는 창업 기획자들은 올해와 내년에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벤처투자법에 따라 창업 기획자는 투자금의 일부를 의무적으로 보육 스타트업에 투자해야 한다. 올해와 내년은 2017년에 등록한 창업 기획사들이 결성한 투자 펀드 만기가 도래하는 시점이다. 안타깝게도 이들의 투자 결과가 신통치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업계의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앞으로 몇 년간 창업 기획자 시장에 구조 조정의 바람이 불어닥칠 것이라고 예측한다. 성과가 좋은 창업 기획자는 앞으로 치고 나가겠지만, 부진한 투자 성적표를 받은 창업 기획자는 시장에서 퇴출될 것이 자명해 보인다. 특히 정부 지원금에 기대어 보육 사업을 운영하면서 자생력을 키우지 못한 창업 기획자들이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위기에 처한 창업 기획자들의 생존 해법은…

위기의 창업 기획자들은 초빙 기업가를 해법의 대안으로 고민해보는 어떨까

초빙 기업가라는 개념이 국내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생소하다. 반면 해외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초빙 기업가는 꽤 대중적인 직함이다. 필자도 10여 년 전 베를린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활동하는 한 초빙 기업가의 명함을 받은 후에 해당 직무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는 초빙 기업가를 영어 직함 ‘EIR’(Entrepreneur In Residence)로 자주 표현한다. 우리말로 ‘상주하는 창업가’ 정도로 번역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그들은 도대체 어디에 상주하고 있을까. 그들은 대개 창업 기획자와 벤처 캐피털에 소속되어 활동한다. 

기업가라는 직함이 암시하듯 초빙 기업가는 창업을 여러 번 경험한 이들이다. 소속 집단에서 이들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포괄적이다. 이들은 벤처 캐피털이나 창업 기획자가 투자한 기업에 스타트업 경영 노하우를 공유하고 기술 관련 조언을 전달한다. 이는 외부에서 전문가를 초빙하여 진행하는 멘토링과는 다르다. 초빙 기업가는 소속 집단에 상주하면서 투자 대상 기업의 생애 주기 전반에 적극 관여한다. 

투자사 입장에서 초빙 기업가 제도는 투자 대상 스타트업에 재무적 자원뿐만 아니라 지식과 같은 무형 자원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그들의 질적 성장을 도와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투자 대상 스타트업 역시 선배 창업가들에게서 조언을 받고 운영 과정에서 실수를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가 초빙 기업가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스타트업 경영까지 포함하기도 한다. 해외 벤처 캐피털은 창업 아이템 선정, 창업자 선발, 그리고 창업 회사 설립을 직접 도맡아서 진행하기도 한다. 이른바 컴퍼니 빌딩(company building)이나 벤처 스튜디오(venture studio)라고도 알려진 창업 방식이다. 이때 벤처 캐피털들은 검증된 창업가 혹은 전문 경영인을 외부에서 영입해 스타트업 운영을 맡기기도 하는데, 이들이 초빙 기업가이다. 

이 외에도 초빙 기업가들은 성장세가 둔화되었거나 꺾인 스타트업의 구원 투수로 등판하기도 한다. 일부 창업가들은 창업 초기 성장 동력을 이어가지 못하고 추가 성장을 추구하는 스케일업(scale-up)에 실패한다. 이를 지켜본 투자사들은 초빙 기업가를 투입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투자 대상 스타트업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런 이유로 해외 창업 기획자와 벤처 캐피털은 능력 있는 초빙 기업가를 영입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심지어 초빙 기업가 채용 공고를 일년 내내 홈페이지에 올려두는 회사들도 있다.

나의 창업 아이템은 (서울=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 2024년 10월 3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IFS 프랜차이즈 창업·산업 박람회를 찾은 한 시민이 참가 업체 부스 배치도를 살피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초빙 기업가, 국내 창업 기획자 부족한 부분 메워줄 것

해외 창업 기획자와 국내 창업 기획자 사이에는 특별한 차이점이 있다. 해외에는 창업자들이 창업 기획자를 직접 설립하고 이끄는 경우가 빈번하다. 반면 국내에는 큰 조직 내 부설 기관에서 운영하는 창업 기획자가 많다. 예컨대 대학 창업 지원단, 기업 신사업 팀, 지역 창조경제혁신센터나 테크노파크 등을 비롯한 공공기관 산하 창업보육팀 등이다.

이들은 뛰어난 보육 공간과 지원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지만, 직접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창업 현장 노하우는 부족하다.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 전문가들은 국내 창업 기획자들이 보고서에 적힌 정량 지표에 매몰되고 실제적 성과를 얻지 못하는 이유로 이러한 점을 지적해 왔다.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가 초빙 기업가 제도를 아예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과거 소수의 창업 기획자나 컴퍼니 빌딩 기업에서 초빙 기업가를 활용해 투자 기업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아직 그들의 영향력은 미미하고, 그들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초빙 기업가 제도가 위기에 처한 국내 창업 기획자들에게는 반전의 계기가, 국내 창업 생태계에는 질적 성장의 발판이 되기를 바란다.

최화준 아산나눔재단 AER지식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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