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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자존감 흔들린다면…‘더닝 크루거 효과’ 기억하라 [이코노 헬스]

AI로 업무 처리하며 일자리 뺏길까 우려
“불안 느낀다면 AI와 경쟁·공존할 준비된 것”

인공지능(AI)이 물질문명을 넘어 정신 건강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사진 REUTERS/연합뉴스]
[샘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상욱 원장] 자신감은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보통 주변 환경이라 하면 개인을 둘러싼 인간관계, 아무리 폭넓게 보더라도 사회적 관계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듯하다. 기술, 그중에서도 인공지능(AI)이 물질문명을 넘어 정신 건강에까지 영향을 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상담 중 AI 이야기가 오르내린 게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9년 전 ‘알파고 대 이세돌’ 2년 전 ‘챗GPT 3.5 등장’ 등 상담에서 화젯거리가 됐던 사건들이 있었다. 차이라면 일상성이다. 2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특이한 사건이 있을 때 한해 단발성으로 AI 관련 이야기가 들렸다면, 이제는 그런 사건 없이도 내담자가 자연스럽게 AI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요컨대 AI가 일상에 녹아든 셈이다.

AI가 일상에 녹아들면서 정신 건강에도 변화가 생겼다. 무엇보다 자신감과 자존감 측면에서 AI로부터 자극을 받는 사람이 많아졌다. 자극은 긍정적일 수도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다. 30대 A씨는 긍정적 자극을 받은 듯했다. 대학원 유학을 준비하는 A씨는 AI가 공부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AI가 과외 선생님처럼 영작문을 봐준 덕에 성적이 크게 올랐다는 평이다. 

게다가 심리적인 부분에서도 도움을 받는다고 A씨는 말했다. A씨가 공부하던 중 불안감이 몰려오거나 외로움을 느낄 때 AI에 ‘구조 요청’을 하면 AI가 채팅으로 공감 어린 해결책을 나름 제시한다는 찬사였다.

“유학을 준비하면서 자존감이 바닥을 쳤는데, 상담과 AI 덕에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요. AI가 도와준다면 박사 과정까지 해낼 것이라는 자신감이 듭니다.”

모든 사람이 A씨처럼 AI를 통해 정신 건강에 긍정적인 자극을 받으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AI로 인해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사람도 많은 듯하다. 특히 AI가 자신의 직업이나 전문 분야로 활발하게 진출할 때 악영향은 더욱 커지는 것으로 보인다.

소프트웨어 개발자 B씨가 그랬다. 20년차 프로그래머 B씨는 ‘시니어 프로그래머’로 자부심이 가득했다. 하지만 최근 개발 프로젝트를 이끄는 데 자신감이 부쩍 떨어졌다고 토로했다. 비교 대상은 챗GPT·클라우데(Claude) 등 대규모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LLM)이다. 자신이 주니어 개발자들을 이끌고 내놓는 결과물이, 주니어 개발자 혼자 LLM을 활용해 생산한 결과물보다 더 나은지 모르겠다는 당혹감을 느꼈다고 B씨는 말했다.

전문 분야에서 자신감이 떨어지니 일상에서도 불안감이 커졌다고 B씨는 말했다.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길 수 있다는 걱정 탓이다. 실제로 지난해부터는 AI를 도입하며 개발 직군 일자리를 줄이는 회사가 많아졌다고 B씨는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불경기 구조조정이 겹치니, 동료들이 희망퇴직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면 B씨 또한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작업 지시도 디버깅(debugging·시스템의 논리적인 오류나 비정상적 연산을 찾아 수정하는 작업 과정)도 AI가 다 해주는데, 시니어 개발자나 관리자는 점점 설 곳을 잃는 거죠. 나도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밤잠 설치는 경우가 많아지네요. 불안해서 말이죠.”

심지어 AI로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과 AI가 자신을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모두를 양가적으로 느끼는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당장에 필요하니 AI로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면서도, 미래에 일자리를 뺏길까 걱정하는 마음이다. 

AI를 활용해 자존감을 높일 수 있다면, 정신 건강의 관점에서는 말을 보탤 필요가 없다. AI로 인한 불안을 최소화할 수 있게 돕는 과정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할 일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쉬움이라면 불안의 근본을 뿌리 뽑기 어렵다는 점이다. 직업 환경과 전문 분야에서의 불안은 AI 발전과 일상화라는 흐름을 반전시키지 않는 이상 완전히 해결하기가 불가능하다. 전 지구적으로 이뤄지는 변화를 일개 의사가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차선책이라면 불안이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조치하는 일이다. 대부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지만 거듭 반복할 수밖에 없는 말이 있다. 신체 및 정신 증상, 예를 들어 ▲가슴 두근거림 ▲불면 ▲불안 ▲초조 ▲흉부 불쾌감 등이 나타난다면 최대한 빨리 전문가를 찾는 편이 좋다는 조언이다. 조기에 증상을 발견한다면 약물치료·인지치료를 통해 이러한 불안감을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다.

추가로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를 떠올려본다면 AI에 대한 불안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순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닝 크루거 효과는 특정 영역에서 숙련도가 낮은 사람이 자신의 실력을 과도하게 높게 평가하는 인지 편향(cognitive bias)을 가리킨다. 다만 데이비드 더닝과 저스틴 크루거(J. Kruger and D. Dunning, 1999)의 연구에서는 숙련도가 높은 사람과 관련한 내용도 포함한다. 고숙련자는 자신의 실력을 과도하게 낮게 평가한다. 하지만 주변 사람의 평가를 본다면 고숙련자는 자신의 능력을 적정 수준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AI에 대한 반응에서도 더닝 크루거 효과는 유효하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더닝 크루거 효과의 핵심은 ‘무능하면 스스로가 무능한지도 모른다’라는 역설이다. 그렇기에 AI로 인해 불안을 느끼는 자체가 능력과 메타인지가 있음을 어느 정도 반증하는 셈이다. 자신이 AI로 인해 뒤처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은 최소한 AI와 경쟁 혹은 공존하는 데 필요한 공부가 무엇인지 인지하고 있는 셈이다.

핵심은 AI가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유도하는 데 있다. AI는 앞으로 지난 몇 년보다도 한층 빠르고 광범위하게 일상생활에 침투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AI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품어낼 수 있기를 소망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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