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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커진 적대적 M&A...해외는 어떻게 방어하나

[新 금산분리 논쟁]③
포이즌 필·신주예약권…해외선 M&A 방어 제도 다양
국내도 규제 논의 시작…경영 효율성 저해 우려도

일론 머스크가 지난 2022년 트위터(현 엑스)를 인수하려 하자 트위터 측에서는 포이즌 필을 발동시키며 경영권 방어에 나섰다. [사진 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 정동진 기자]최근 고려아연 사태를 계기로 사모펀드(PEF)의 단기 수익 극대화를 위한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모펀드의 기업 인수가 경영개선보다는 비용 절감과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노동자를 해고하는 등의 방식으로 단기 차익을 실현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는 까닭이다. 국내 금융시장과 산업계에서는 이를 견제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해외 주요국들은 이러한 적대적 M&A를 방어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방어 장치인 ‘포이즌 필(Poison Pill)’ 제도는 인수자가 일정 지분을 확보할 경우 기존 주주들에게 신주를 저렴한 가격에 발행해 인수자의 지분율을 희석시키는 방식이다. 이는 경영권 방어를 위한 가장 일반적인 수단으로, 기업의 경영권이 갑작스럽게 장악되는 것을 방지하고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과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해외선 포이즌 필·신주예약권 등으로 경영권 방어

대표적인 사례로 2022년 트위터(현 엑스)가 일론 머스크의 적대적 M&A 시도에 맞서 포이즌 필 전략을 사용한 바 있다. 당시 머스크는 트위터 지분 9%를 확보한 뒤, 경영권 장악을 시도하며 추가 지분 인수를 발표했다.

이에 트위터 이사회는 주주들에게 더 낮은 가격으로 추가 지분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포이즌 필을 발동했다. 구체적으로 머스크가 15% 이상의 지분을 확보할 경우 다른 주주들이 할인된 가격으로 주식을 매입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결과적으로 머스크는 트위터 인수에 성공했으나, 전략을 수정해 경영진과의 협상을 통해 인수 절차를 마무리해야 했다. 

일본에서는 적대적 M&A를 방어하기 위해 신주예약권을 활용하는 전략이 사용됐다. 2007년 미국계 사모펀드 스틸파트너스(Steel Partners)가 일본 식품업체 불독소스(Bulldog Sauce)의 경영권을 인수하려 했을 때, 사측이 신주예약권을 활용해 이를 방어했다. 당시 스틸파트너스는 불독소스의 지분 10% 이상을 확보한 뒤, 추가 지분 인수를 통해 경영권을 장악하려 했다. 이에 불독소스는 모든 주주들에게 신주예약권을 무상으로 배정하고, 스틸파트너스가 보유한 신주예약권은 회사가 금전 보상을 하고 취득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러한 조치는 적대적 인수자의 지분율을 희석시키면서도 기존 주주들에게만 신주 인수 기회를 제공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스틸파트너스는 일본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며 해당 조치가 불공정하다고 주장했으나, 일본 최고재판소는 불독소스의 신주예약권 발행이 정당한 경영권 방어 수단이라고 판결했다.

캐나다에서는 정부가 직접 개입해 전략적 산업을 보호하는 방식으로 적대적 M&A를 방어한 사례가 있다. 2008년 미국 방위산업체인 얼라이언트 테크시스템(ATK)가 캐나다 우주기업 MDA 스페이스(MDA)를 13억불에 인수하려 하자, 캐나다 정부와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가 개입해 이를 저지했다. 

MDA는 위성 및 항공우주 기술을 보유한 핵심 기업으로, 국방과 안보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기업이다. 캐나다 정부는 외국인투자법을 적용해 매각을 막고, 국가 전략산업 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적대적 M&A가 단순한 기업 인수 경쟁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전략산업을 보호하고 자국 기업의 기술 및 혁신 역량을 유지하기 위한 문제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유럽에서는 적대적 M&A를 방어하기 위해 규제 기관을 활용해 인수 기업에 부담을 가중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2006년 독일 에너지 기업 E.ON이 스페인 최대 전력회사인 엔데사(Endesa)를 인수하려 하자, 스페인 정부는 국가 에너지 위원회(CNE)를 통해 엄격한 조건을 부과했다. CNE는 E.ON이 엔데사를 인수할 경우 ▲전력 생산량 제한 ▲송전망 사업 분리 ▲에너지 요금 규제 준수 등의 의무를 부여하는 방안을 승인했다. 이 같은 규제는 E.ON의 인수 부담을 증가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결국 E.ON은 인수 시도를 철회했고, 이후 스페인 기업 악시오나(Acciona)와 이탈리아의 엔엘(Enel)이 엔데사를 공동 인수했다. 이 사례는 스페인 정부가 직접 법률을 동원해 인수를 금지하기보다는, 규제 기관을 통해 간접적으로 인수 기업의 부담을 높여 전략적으로 경영권을 방어한 사례로 평가된다.

이를 통해 스페인은 자국의 핵심 에너지 기업이 외국 기업에 넘어가는 것을 막으면서도 국제적인 무역 분쟁을 피할 수 있었다.

고려아연 사태로 국내도 논의 본격화…다각도 검토 필요

최근 국내에서도 적대적 M&A의 부작용을 둘러싼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고려아연 사태를 비롯해 사모펀드의 적극적인 경영권 개입이 확산되면서, 기업의 핵심 자산 매각과 단기 차익 실현을 우선시하는 경영 방식이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까닭이다.

이에 지난 1월 8일 국회에서는 사모펀드의 적대적 M&A에 따른 국가 기간산업 보호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사모펀드의 적대적 M&A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의 간담회가 열리기도 했다. 간담회에서는 사모펀드가 기업을 인수한 후 핵심 자산을 매각하고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참석자들은 국가 기간산업 보호와 노동자 권익 보장을 위한 제도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최성호 경기대학교 교수는 간담회에서 “포이즌 필과 같은 경영권 방어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며 “적대적 M&A에 대해 산업 경쟁력과 고용 안정을 보호할 수 있는 정책 개입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적대적 M&A가 반드시 부정적인 결과만 초래하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적대적 M&A가 기존 경영진에 대한 감시 기능을 수행하고 내부 비효율성을 개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글로벌 사례에서도 적대적 M&A를 통해 기업 지배구조가 정비되고 주주 이익이 증대된 경우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조건적인 규제보다는 시장의 감시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이 더 적절할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최순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적대적 M&A는 사례마다 특성이 달라 단순히 좋다 나쁘다라고 얘기하기는 좀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분명히 어떤 경영의 비효율성이 있다고 판단될 때 M&A가 이뤄지는 경우도 있어 적대적 M&A가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국내 시장에서는 조금 상황을 지켜보고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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