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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무실’ IPO 중간수수료…반응 없는 업계

단계별 정액 지급 구조지만…발행사도 주관사도 계약상 존재만 인식
턱없이 적은 수수료 규모…주관사 해지 및 교체도 드물어

한국거래소 황소상. [사진 한국거래소]


[이코노미스트 정동진 기자]IPO(기업공개) 주관업무를 맡은 증권사가 상장 절차가 중단되더라도 일부 수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한 중간수수료 제도가 도입됐지만, 시장에서는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주관사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무리한 상장 추진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하지만, 업계에서는 실질적인 변화가 없다는 반응이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5월 ‘IPO 주관업무 제도개선 간담회’를 열고, 중간수수료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후 금융투자협회가 주관계약서 표준안을 마련하고, 금융위원회가 관련 인수업무 규정을 개정하면서 같은 해 8월부터 제도가 본격 시행됐다.

중간수수료는 상장이 완료되지 않더라도 주관사가 일정 금액을 지급받는 제도다. 기존에는 IPO가 실패하거나 중도 철회될 경우 주관사가 수수료를 받지 못했지만, 금융당국은 이러한 관행이 주관사의 과도한 상장 추진을 부추길 수 있다고 보고 이를 개선했다. 이에 따라 대표주관계약 해지 시 해당 시점까지 수행한 업무에 대한 대가를 지급받을 수 있도록 계약서에 명시하는 것이 의무화됐다.

그러나 증권업계 반응은 냉담하다. 한 대형 증권사 IPO 실무자는 “계약서상 조항으로는 명시돼 있지만 실제 계약 체결 시 중간수수료가 중요하게 고려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주관사 입장에서도 해당 조항을 낮게 책정한다고 해서 딜 수주에 유리해지는 것도 아니다”고 성토했다. 이어 “통상적으로 IPO 주관 계약은 수 년에 걸친 관계를 기반으로 맺는 것이기 때문에, 상장이 좌절된다고 해서 주관계약을 해지하는 경우도 잘 없다”고 덧붙였다.

국내에서는 일반적으로 중간수수료가 ▲상장예심 신청 전 ▲예심 통과 후 ▲증권신고서 제출 이후 단계로 구분된다. 해당 단계를 통과한 뒤 계약이 해지되면 정액으로 중간수수료가 부과되는 구조다. 그러나 실제 IPO 시장에서는 이러한 구조가 거의 작동하지 않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상장예심 신청 전 수년간 계약만 유지하는 경우가 많고, 상장이 무산되더라도 주관사를 교체하는 사례는 드물기 때문이다.

더불어 계약서에 명시되는 수수료 액수도 크지 않다. 최근 체결된 주관계약 사례를 보면, 중간수수료는 통상 5000만원 내외로 설정됐다. IPO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증권사 실무진 4~5명이 1년 이상 투입되는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또한 통상 수억~수십억원에 달하는 전체 주관 수수료 규모와 비교하면, 중간수수료는 사실상 상징적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업계에서는 보다 강력한 당국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간수수료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제도가 유명무실해진 만큼, 수수료율 책정 방식과 계약서 작성 기준 등을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발행사에 대한 주관사의 자율성을 높인다는 제도 도입 취지를 실현하려면, 보다 큰 규모의 중간수수료가 강제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해외 사례를 보면 우리와는 다른 접근이 눈에 띈다. 미국, 영국, 홍콩 등 주요 시장에서는 성공 수수료 외에도 주관사가 일정 수준의 비용을 사전에 확보할 수 있도록 계약 관행을 통해 실비를 보전받는다. 미국의 경우 계약 초기 단계에서 착수금(engagement fee)이나 실비 보전 약정(reimbursement agreement)을 포함해 상장 추진 중단 시에도 일부 비용을 회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홍콩과 영국은 스폰서 제도를 활용해 IPO 추진 중에도 주관사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홍콩에서는 스폰서 수수료가 별도로 존재해 IPO가 철회되더라도 일정 부분 수수료를 지급받는다. 영국도 프리미엄 상장의 경우 상장 적격성 심사를 위한 스폰서 역할을 증권사가 맡으며, 이 과정에서 고정 자문료를 지급받는다. 이와 같이 해외에서는 이 같은 문제를 계약 구조 내에서 주관사의 리스크를 완화하고 있다.

다만 금융당국은 이번 제도 도입을 그간 무상으로 이뤄졌던 주관사 업무에 대해 정당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업계에 정착시키기 위한 출발점이라고 보고 있다. 과거에는 계약 해지 시 업무 대가를 요구하는 문화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이번 규정을 통해 관행을 점차 개선하겠다는 설명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과거에는 업무 대가를 요구한다는 인식 자체가 희박했지만, 이번 제도 개선은 그런 문화를 바꾸기 위한 트리거(방아쇠) 역할을 하려는 것”이라며 “금융당국이 직접 시장 가격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중간수수료 도입을 계기로 업계 내 관행이 점차 변화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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