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일반
투자자 모르게 바뀐 계획…‘사각지대’ 된 공모자금
- [IPO 공모금 점검]②
IPO 공모자금, 계획 달라도 규제 어려워…상장 후 '경영 판단'으로 변경 가능
집행 단계서 정보 단절 발생…소액주주 권익 침해 가능성 존재

[이코노미스트 정동진 기자]수산인더스트리가 기업공개(IPO) 당시 확보한 공모자금 일부를 자회사의 신사옥 및 공장 이전 관련 부동산 매입에 사용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IPO 공모자금 운용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한번 도마 위에 올랐다. IPO를 통해 상장하는 기업들이 조달한 자금을 당초 계획과 다르게 사용하거나 장기간 방치하는 경우가 빈번하지만, 이를 실질적으로 제재할 구체적인 규제 가이드라인이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IPO는 자본시장 내에서 기업이 성장 잠재력을 시장에 알려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는 핵심적인 수단이다. 투자자들은 기업이 증권신고서와 투자설명서를 통해 제시하는 사업 계획과 자금 사용 목적을 믿고 투자 결정을 내린다. 자본시장법 제119조 및 제125조는 증권신고서에 ‘자금의 사용목적’을 명확히 기재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이는 투자자의 합리적인 투자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항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적지 않은 기업들이 상장 이후 공모자금 사용 계획을 변경하거나,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수년째 자금을 예치해두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 취재에 따르면, 수산인더스트리 외에도 공구우먼·리파인·씨유테크 등 다수 기업이 IPO를 통해 조달한 자금의 상당 부분을 장기간 미집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공모자금 표류’ 현상은 자칫 기업의 성장 동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자금이 적시에 필요한 곳에 투입되지 못하면, 기업가치 제고의 기회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더 큰 문제는 시장에서의 신뢰 훼손이다. IPO 당시 기업이 제시한 자금 사용 계획은 투자 유치를 위한 핵심적인 약속이다. 해당 약속이 이행되지 않을 경우 투자자들은 기업이 발표하는 사업 계획 등을 믿지 못하게 될 수 있다. 특히 자금 사용 목적이 불투명하게 변경되거나, 명확한 설명 없이 자회사의 부동산 취득 등 당초 예상과 다른 곳에 사용될 경우 공모자금의 사적 유용이나 비효율적 운용에 대한 의혹으로 번질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자금 운용의 불일치에 대한 제재나 감시 제도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상장 전에는 자금 사용 목적이 상장 심사의 핵심 기준으로 작용하지만, 상장 이후에는 공모자금 사용이 달라지더라도 이에 대한 감독은 이뤄지지 않는다. 자본시장법 위반에 해당하는 중대한 허위 기재나 고의적인 정보 은폐가 아니라면, 공모금 계획 변경이나 미집행에 대해 당국이 나설 근거는 제한적이다.
때문에 투자자 입장에선 ‘깜깜이’가 되기 쉽다. 증권신고서에 명시된 자금 운용 계획은 신뢰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해당 계획이 변경되더라도 이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일부 상장기업들은 여전히 투자설명서에 기재한 자금 배분 비율이나 사용 시기를 따르지 않으면서도, 공식적인 설명을 생략하거나 단순한 공시로 갈음하고 있다. 공모자금이 장기적으로 유휴 자금화되거나, 계열사 간 거래를 통한 내부 자산 이전에 사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일단 상장된 이후 기업이 공모자금 사용 계획을 변경하는 것에 대해 금융당국이 직접적으로 제재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은 이와 관련해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하는 측면이 크고, 사업 환경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계획 변경을 명백한 허위 공시나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는 한 문제 삼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설령 문제가 발생해 투자자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라도, 당국의 조사 착수까지는 여러 제약이 따른다. 실제로 한 금감원 관계자는 "특정 기업의 공모자금 사용 계획 변경이나 미집행에 대해 구체적인 위법 혐의가 포착되거나 다수의 민원이 제기되지 않는 이상, 선제적으로 조사에 착수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모자금 사용처 변경이 기업의 ‘경영 판단’ 영역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고, 당국의 직접적인 개입이 자칫 기업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 같은 행태로 인해 투자자들에게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자자들은 IPO 당시 기업이 제시한 성장 로드맵과 자금 활용 방안을 신뢰하고 투자에 나서지만, 정작 자금이 예상과 다른 곳에 사용되거나 장기간 방치될 경우 예기치 않은 손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보 비대칭 상황에서 기업의 일방적인 계획 변경은 소액주주들의 권익을 침해할 소지가 크다. 공모자금 사용처가 당초 계획과 달리 변경될 경우, 투자자 입장에선 사전에 제공받은 정보에 기반해 판단한 투자 결정이 무력화될 수 있다. 기업이 공모자금 사용 계획을 변경할 경우 이사회 결의나 주주총회 결의를 거치도록 하는 방안도 거론되지만, 현행법상 이를 강제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의 공모자금 집행 계획은 당시로서는 최선을 다해서 선택한 어떤 계획일 수 있기 때문에 그것 자체를 제도적으로 규율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며 "다만 기업이 공모자금을 완전히 엉뚱한 방향으로 사용한다고 한다면 기업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서 그 이유를 설명하는 제도적인 보완 장치가 필요할지, 공시 위반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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