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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AI의 제안에 익숙해졌을까 [스페셜리스트 뷰]
- 마케팅 기획자 vs AI 추천…실험 결과 보니
AI 추천 기술 성과, 고객 행동 변화가 관건

[권혁민 케이뱅크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금융 앱을 켤 때, 어떤 화면이 가장 먼저 보이는지 떠올려 보자. ▲금리 안내 배너 ▲이달의 이벤트 소식 ▲과거에 살펴봤던 적금 상품 등이 추천돼 등장한다.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콘텐츠지만, 어딘가 익숙하다. 낯설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이미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이 설계한 정보의 흐름 속에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금융 앱 첫 화면의 비밀…AI 추천 알고리즘 전략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추천이라는 것이 전문가의 영역만은 아니다. 예컨대 명절을 앞두고 친인척에게 어떤 선물을 할지 고민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실수를 피하고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먼저 연령대·성별·직업 같은 기본적인 정보를 따져볼 것이다. 다음으로는 과거 어떤 선물을 했을 때 반응이 좋았는지 기억을 되짚거나, 과거 어떤 선호를 가졌는지 파악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요즘 어떤 상황인지, 최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같은 맥락까지 고려할 것이다. 다시 말해 선물 대상의 속성·과거 행동 이력·최근 정보만 잘 파악해도 꽤 정교한 ‘추천’이 가능하다.
AI 추천 시스템도 본질적으로 이 구조와 다르지 않다. ▲누구에게 ▲무엇을 ▲어떤 맥락에서 보여줄 것인가를 판단하는 일, 그것이 바로 추천의 핵심이다. 그렇게 알고리즘은 고객의 행동 이력과 맥락을 바탕으로 추천을 수행하고, 우리는 그 안내에 점차 익숙해지며 이를 자연스러운 사용자 경험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처럼 알고리즘이 ‘무엇을 누구에게 언제 보여줄지’를 결정하면서, 개인화 추천 시스템은 앱 비즈니스 환경의 기본 전제가 됐다. ▲포털 사이트의 뉴스 ▲쇼핑몰의 추천 상품 ▲OTT의 연관 콘텐츠까지, 사용자가 명시적(Explicit)으로 선호를 표현하지 않아도 수많은 고객의 행동 이력과 맥락을 바탕으로 수많은 ‘다음 선택지’들이 암묵적(Implicit)으로 예측되고 제시된다.
그러나 이 익숙함은 동시에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 예컨대 ▲‘이 추천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나를 돕기 위한 안내인가?’ ▲‘아니면 나의 주의를 붙잡아 두고 클릭을 유도하기 위한 설계인가?’ ▲‘이 AI 추천시스템은 과연 나를 정말 이해하고 있는가?’와 같은 질문이다.
이에 대한 실증적 해답을 찾기 위해, 필자가 소속된 케이뱅크에서는 대규모 실험을 진행했다. 이 실험은 ‘AI 기반 추천 시스템의 전략적 설계와 사용자 경험 변화 분석’이라는 논문에도 소개됐다. 이를 토대로 본 글에서는 AI 기반의 금융 맞춤형 추천 기술이 고객 행동, 사용자 경험, 그리고 기업 수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견해를 제시하고자 한다.

살아있는 추천 시스템 만들어야
AI 추천 시스템은 단순한 모델링이나 알고리즘 구현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어떤 산업에서든 유사한 모델 구조로 시작할 수 있지만, 실제 서비스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데이터 수집·정제 ▲피처 엔지니어링 ▲예측 결과의 실시간 서빙 ▲시스템 안정성 등 복잡한 기술적 요소들이 종합적으로 설계되고 운영돼야 한다.
뉴립스(NeurIPS) 논문 ‘Sculley et al.(2015)’은 머신러닝 시스템에서 모델 코드는 전체 구조의 ‘작은 일부’에 불과하며, 진짜 어려움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처리하고 예측 결과를 실제 환경에 안정적으로 서빙하는 과정에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케이뱅크의 추천 시스템 개발에 안정적인 개인화 서비스 운영을 목표로 모델 개발은 물론 ▲데이터 파이프라인 ▲실시간 서빙 ▲성능 모니터링 ▲자동 재학습까지 전 과정을 자동화해 운영하는 머신러닝 운영 자동화 체계(Machine Learning Operations·MLOps)를 적용했다. 이를 통해 AI 모델을 일회성 분석이 아닌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고객 서비스로 제공할 수 있었다.
모델이 아니라 ‘경험’을 설계
모델은 단순히 정확도가 아닌, 고객의 속성과 맥락에 맞춰 설계돼야 실질적 효과가 드러난다. 이러한 접근은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uman-Computer Interaction·HCI) 관점에 기반한다. 이를 위해 먼저 금융 전문가를 대상으로 인터뷰(Focus Group Interview·FGI)를 실시해 실제 고객 유형을 도출했고, 이 인사이트를 입력 변수 설계와 모델 개발 과정 전반에 체계적으로 반영했다. 단순히 데이터를 투입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고객의 특성과 추천 결과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역할을 하도록 조정한 것이다.
또한 알고리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추천이 어떤 화면에서, 어떤 방식으로 노출돼야 하는지까지 고민해야 했다. 이를 위해 사용자경험(UX) 디자이너와 협업하며 앱 내 콘텐츠 갱신 주기나 노출 위치와 추천 타이밍 등을 반복 실험과 개선을 통해 정교하게 다듬었다. 기술 중심이 아닌 경험 중심의 설계가 이뤄지도록 했다.

AI 추천의 힘…클릭률·계약율·재방문율 ‘쑥’
2025년 봄, 케이뱅크는 자체 개발한 AI 추천 시스템이 실제 고객 경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검증하기 위한 대규모 실험을 진행했다. 많은 기업들이 추천 시스템의 성과를 클릭률이나 전환율 같은 단기 지표로 효과를 판단하지만, 우리가 던진 질문은 달랐다. 구체적으로 ‘AI 추천은 고객 경험을 넓힐 수 있는가? 그리고 그 확장이 일시적 반응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인 관계로 이어질 수 있는가?’를 확인해보고자 했다. 우리는 고객이 AI 기반 추천을 실제로 어떻게 수용하고, 그것이 어떤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지를 실증적으로 살폈다.
이를 위해 케이뱅크는 운영 가능한 추천 시스템을 내부적으로 설계하고, 세 가지 기술을 핵심 축으로 하는 시스템을 구성했다. 첫째, 고객 관심사 예측 모델이다. 고객의 최근 활동·보유 상품·금융 거래 이력·클릭 패턴 등 수천 개의 변수를 바탕으로 관심 있는 상품을 예측한다. 여기에는 빠른 추론 속도와 높은 예측 성능을 동시에 확보하기 위해 경량화 부스팅 기법(Light Gradient Boosting Machine·LightGBM)을 적용했다.
둘째, 고객의 상황에 맞는 표현을 자동으로 생성하는 개인화 문구 생성 모델이다. 사내에서 운영 중인 Private 대형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LLM)을 활용해, ‘이자 놓치지 않게 알려드릴게요’, ‘이번 달 리워드 놓치지 마세요’ 같이 마케터가 직접 쓴 것 같은 문구가 자동 생성된다.
셋째, 여러 문구 중 어떤 표현이 가장 효과적인지를 실시간으로 판단하는 노출 최적화 알고리즘이다. 다중 선택 실험 알고리즘(Multi-Armed Bandit, MAB)을 활용해 초기에는 다양한 문구를 고르게 노출한다. 이를 통해 클릭률과 전환율 등 고객 반응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학습해, 반응이 좋은 문구를 점점 더 자주 보여주는 구조로 설계했다.
실험으로 드러난 고객의 행동 변화 시스템이 실제 고객에게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을까. 우리는 총 100만명의 고객을 두 그룹으로 나눠 실험을 진행했다. 한 그룹은 ‘수기 타키팅(targeting) 그룹’으로, 기존처럼 마케팅 기획자가 제작한 배너를 추천받았다. 다른 한 그룹은 ‘AI 추천 그룹’으로, AI가 자동 생성한 문구를 추천받았다. 실험은 3주간 진행됐고, 클릭률·계약 전환율·재방문 여부 등을 측정했다.
결과는 분명했다. AI 추천 그룹의 클릭률이 기존 수기 타기팅 그룹보다 71.43% 높았다. 계약 전환율은 AI 추천 그룹이 66.67% 높았다. 특히 배너 반복 노출 이후에도 반응이 지속됐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고객의 탐색 행동 폭도 넓어졌다. 예·적금 상품에만 반응하던 고객이 추천을 통해 카드·대출·투자 상품으로 관심 범위를 확장한 것이다. 이는 추천 시스템이 단순히 맞춤형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객의 금융 탐색 범위 자체를 넓히는 역할을 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앱 유지율 또한 크게 개선됐다. 실험 종료 두 달 뒤, AI 추천 그룹의 재방문율은 수기 타키팅 그룹보다 23.88% 더 높게 유지됐다. 이는 AI 추천이 단기적 클릭 성과를 넘어, 장기적 관계 형성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음을 시사한다. 결국 이 실험은 AI 추천 시스템이 ‘정보 전달 기술’을 넘어, 고객과의 관계를 설계하는 도구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AI 추천 시스템의 진화를 위한 제언
AI 추천 시스템은 이제 ‘추천해 주는 기술’을 넘어,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하는 마케팅 주체로 진화하고 있다. 고객의 과거 이력·맥락·반응뿐 아니라 시장 트렌드와 이벤트 같은 외부 요인까지 통합적으로 고려해 콘텐츠를 생성하고, 노출 타이밍까지 조절하는 자율형 AI 에이전트(AI Agent) 구조로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사람이 개입하지 않아도 ‘타기팅 → 콘텐츠 생성 → 실시간 A/B 테스트 및 노출 최적화 → 성과 분석 판단 → 모델 보완’까지 마케팅의 전 과정을 AI가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하며 학습하고 반영하는 운영주체인 에이전트(Agent)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AI가 자율적으로 판단해 실행하는 에이전틱(Agentic) 구조에서 고객 행동은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리고 사용자 경험의 질이 어떠한 방향으로 진화하게 되는지를 정밀하게 분석하는 후속 연구가 벌써 궁금해진다.
특히 인간의 개입 없이 AI가 고객 경험을 설계해 나갈 때 고객은 이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리고 그 경험이 과연 ‘고객 중심’으로 이어지는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성능의 문제가 아니라, AI가 고객의 선택과 자율성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묻는 ‘AI 윤리’의 문제다. 이러한 시스템이 일상화될수록, 기술은 단기 성과보다 고객과의 신뢰를 우선해 설계돼야 하며 윤리 기준과 거버넌스 체계 역시 함께 마련돼야 한다.
결국 AI 기술의 성과는 알고리즘의 복잡성보다 고객의 상황과 맥락을 얼마나 정확히 반영해 실질적인 행동 변화를 이끌어냈는가에 달려 있다. 기술을 고도화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실제 환경에서 고객의 요구와 비즈니스 목표에 맞게 작동하도록 설계하고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AI 분석가는 모델 구조뿐 아니라 고객과 데이터 특성, 서비스 목적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상황에 맞게 기술을 적용하며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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