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샴페인 거품 속에 숨겨진 위대한 이야기
우연한 발견·기술 결합...특별함으로 재탄생

우연과 필연이 빚어낸 ‘악마의 와인’
이야기의 시작은 프랑스 북부의 춥고 척박한 땅인 샹파뉴 지역이다. 이곳 사람들은 남쪽 부르고뉴의 화려한 레드 와인을 선망했지만 샹파뉴의 서늘한 기후는 포도가 완전히 익는 것을 방해했다. 그 결과 이 지역 와인은 묽고 산도가 날카로웠다. 겨울 추위는 발효 중인 와인을 잠재웠고 봄이 돼 기온이 오르면 병 속에서 다시 발효를 시작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가스로 병이 폭발하기 일쑤였다. 와인 생산자들은 예측 불가한 거품을 ‘악마의 와인’(le vin du diable)이라 부르며 저주했다.
이처럼 샴페인의 시작은 원치 않았던 거품, 즉 ‘실수’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역사의 위대한 전환은 종종 우연한 발견을 필연적인 기술로 바꾸는 인간의 의지에서 비롯된다. 17세기 후반 영국인들은 ‘터지는 와인’의 매력에 먼저 눈을 떴다. 그들은 완성된 와인에 당분을 첨가해 의도적으로 기포를 만드는 방법을 제안했다. 석탄으로 유리를 녹여 고압에 견딜 수 있는 유리병도 만들어 냈다. 샴페인의 거품은 결함이 아닌 축제와 흥겨움을 상징하는 특별한 개성으로 여겨졌다.
샴페인의 역사를 논할 때 돔 페리뇽(Dom Pérignon)이라는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빨리 와보게, 나는 지금 별을 마시고 있네!”라는 그의 외침은 샴페인의 탄생을 알리는 낭만적인 신화로 전해진다. 다만 엄밀히 말해 그는 샴페인을 발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와인 속의 거품을 없애기 위해 평생을 바친 인물에 가깝다.
돔 페리뇽의 실제 기여는 발명이 아닌 ‘품질의 완성’에 있다. 그는 각기 다른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를 섞어 훨씬 더 복합적이고 균형 잡힌 와인을 만드는 ‘블렌딩’(assemblage) 기술을 체계화했다. 또 껍질이 검은 포도에서 맑은 즙을 얻어내는 섬세한 압착 기술을 고안했다. 폭발 위험을 줄이기 위해 코르크 마개를 철사로 고정하는 방식도 도입했다. 그의 헌신과 집념은 샴페인이 단순한 ‘거품 와인’을 넘어 깊이와 복합미를 지닌 고급 와인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견고한 토대를 마련했다.
돔 페리뇽이 닦은 품질의 기반 위에 샴페인은 프랑스 왕실과 귀족 사회의 총아로 떠올랐다.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리는 화려한 연회에는 어김 없이 샴페인이 등장했다. 그 황홀한 기포는 구체제(Ancien Régime)의 사치와 쾌락 그리고 ‘삶의 기쁨’(joie de vivre)을 완벽하게 대변하는 상징이었다. 루이 15세의 연인 마담 드 퐁파두르는 “마시고 난 뒤에도 여성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유일한 와인이 샴페인이다”라는 찬사를 남겼다.

아이러니하게도 귀족 계급을 무너뜨린 프랑스 혁명은 샴페인의 명성을 전 유럽으로 확산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혁명의 칼날을 피해 해외로 망명한 귀족들이 유럽 각국의 사교계에 샴페인을 전파하는 문화 전도사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후 샴페인은 런던·빈·상트페테르부르크의 왕실과 살롱에서 가장 세련되고 인기 있는 음료로 자리 잡았다.
이 기회를 포착한 것은 귀족이 아닌 비전을 가진 부르주아 가문들이었다. 모엣·뵈브 클리코·로랑 페리에와 같은 샴페인 하우스는 우수한 품질에 ‘브랜드’라는 무형의 가치를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인물은 ‘샴페인의 위대한 여인’이라 불리는 클리코 퐁사르당이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미망인’(Veuve)이 된 그녀는 샴페인의 찌꺼기를 제거하는 ‘리들링’(riddling) 기술을 발명해 품질의 혁신을 이뤘다. 전쟁으로 봉쇄된 러시아 시장에 몰래 샴페인을 수출하는 대담함으로 유럽 전역에 ‘뵈브 클리코’의 이름을 떨쳤다. 이처럼 샴페인 하우스들은 왕실 후원과 국제적인 이벤트 그리고 흥미로운 스토리텔링을 통해 자신들의 와인을 단순한 술이 아닌 성공과 명예의 상징으로 각인시켰다.
사치품의 정점에 있는 샴페인의 역사는 순탄하지 않았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포도밭이 파괴됐고 대공황과 금융 위기 등 세계 경제가 휘청일 때마다 샴페인 시장 역시 직격탄을 맞았다. 그럼에도 샴페인은 놀라운 회복력으로 위기를 극복해 왔다. 그 저력의 핵심에는 ‘샹파뉴 와인 생산자 공동 협회’(CIVC)라는 독특한 상생 시스템이 있다.
CIVC는 포도 재배자와 샴페인 하우스가 함께 설립한 기구다. 매년 포도 수확량과 가격을 조율하고 엄격한 품질 기준을 관리하며 ‘샴페인’이라는 이름의 가치를 공동으로 지켜 나간다. 경기가 어려울 때 무분별한 가격 경쟁으로 품질이 저하되는 것을 막는다. 호황기에는 과잉 생산을 억제해 안정적인 시장을 유지한다. 이는 단기적인 이익보다 ‘샴페인’이라는 공동의 유산을 지키려는 그들의 자부심과 지혜가 낳은 결과다.
한 잔의 샴페인에서 쉴 새 없이 피어오르는 기포는 단순한 탄산가스가 아니다. 그것은 추운 땅의 한계를 극복하려 했던 와인 생산자들의 열망이자 돔 페리뇽의 숭고한 장인정신이다. 베르사유의 화려함과 혁명의 격동을 모두 목격한 역사의 증인이다. 또 위대한 여성 사업가의 비전과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스스로의 가치를 지켜낸 샹파뉴 사람들의 굳건한 연대다.
우리가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에 샴페인을 터뜨리는 이유는 단지 그 맛과 향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 이 황금빛 액체가 품고 있는 성공과 환희 그리고 역경을 이겨낸 승리의 서사를 빌려 우리의 순간을 더욱 위대하게 만들고 싶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다음번 건배의 순간에는 잠시 귀를 기울여 보길 바란다. 당신의 잔 속에서 터지는 작고 영롱한 거품들이 속삭이는 수백 년의 이야기 속에는 당신의 성공을 축하하는 가장 품격 있는 찬사가 담겨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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