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트럼프 행정부, 인텔의 최대주주로”...반도체 패권 강화하는 美 [한세희 테크&라이프]
- 109억 달러 규모 보조금, 지분으로 전환
'국가 자본주의로 향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한세희 IT 칼럼니스트]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의견 일치를 보는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공화당 출신 대통령 트럼프와 민주당에서도 가장 급진적인 편에 속하는 샌더스 의원은 반도체 기업 인텔에 대한 정부 개입 문제에 있어 같은 의견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인텔의 지분 10%를 인수하기로 했다. 반도체와 과학법, 일명 칩스(CHIPS) 법에 따라 인텔에 주어지기로 돼 있던 보조금을 지분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인텔은 최대 78억6000만달러(약 11조원)의 직접 자금 지원을 포함, 총 109억달러(약 15조원) 규모의 보조금을 받을 계획이었다. 이로써 미국 정부는 인텔의 최대주주가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텔이 하는 일인 최첨단 반도체와 집적회로를 만드는 것은 우리나라의 미래에 근간”이라며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자”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에 자유 시장 경제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공화당 의원들과 경제학자들은 “사회주의적 정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반면, 샌더스 의원은 “막대한 이익을 올리는 대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국민 세금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라는 평소 주장이 반영된 것에 만족하는 모습이다.
미국 정부가 특정 민간 기업의 지분을 대량 보유하기로 하는 이례적 결정이 현실이 되는데 대략 2주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8월 초 트럼프 대통령이 “립부 탄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매우 큰 이해 상충을 일으키고 있다. 즉각 사임해야 한다”는 글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올렸다. 인텔 자회사가 중국 국방과기대학에 반도체를 불법 판매했다는 의혹 보도가 나온 직후였다.
정부 인텔 지분 확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탄 CEO는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나 싱가포르에서 자랐고, 미국에서 성공한 인물이다. 반도체 회로 설계 소프트웨어 기업 케이던스의 CEO를 지냈고, 위기에 빠진 인텔의 구원투수 역할을 맡은 지 몇 달 되지 않았다.
졸지에 ‘중국 스파이’로 의심받게 된 그는 곧바로 백악관이 있는 워싱턴DC로 날아갔다. 탄 CEO는 자신이 간첩이 아니며, 미국에 헌신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 자리에서 정부의 인텔 지분 인수 이야기가 나왔고, 회담 후 트럼프 대통령은 말을 바꿔 “그는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수년 동안 줄곧 떨어지기만 하던 인텔 주가는 미국 정부의 지분 인수 계획이 알려진 후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모바일과 인공지능(AI)이라는 두 번의 큰 물결과 함께 찾아온 반도체 대호황의 시기를 모두 놓치고, 이젠 정말 생존을 걱정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던 인텔에게 안전 장치가 하나 생긴 셈이다.
2021년 인텔은 사업 돌파구 마련을 위해 파운드리 사업에 진출했으나 고객사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 인텔의 지난해 영업손실은 116억7800만달러(약 16조9000억원)에 이르고, 올해 상반기 누적 영업손실도 37억달러(약 5조4000억원) 수준이다. 이에 따라 인텔은 독일과 폴란드에 파운드리 라인을 건설하려던 계획을 취소했고, 미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을 위해 추진하던 오하이오주 공장 완공 시점도 미루던 차였다.
미국이 인텔을 원한 이유
사실 안전 장치는 미국 정부가 가장 갖고 싶었을 터다. 미국은 AI를 세계 패권 경쟁의 핵심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고, 실제로 AI 기술의 최정상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AI를 돌아가게 만드는 핵심 반도체 제조는 전적으로 대만 TSMC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의 디지털 패권 유지에 필수인 첨단 반도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은 대만과 한국의 소수 기업에 집중돼 있다. 이들과 견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자국 내 기업인 인텔은 최근 수년 간 제조 역량이나 재무 상황 등에서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인텔의 지분을 확보함으로써 미국 정부는 핵심 반도체 자체 생산을 위한 거점을 확보한 것이다. 정부는 미국 내 빅테크의 반도체 생산 물량 일부를 인텔에 돌리도록 정책적으로 유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AI 반도체 제조 역량의 집중에 따른 문제를 완화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정부 개입은 시장에 비효율을 불러온다. 첨단 반도체 제조 기술 경쟁에서 밀리고 있고, 기업 문화도 외부 고객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파운드리와 맞지 않는 인텔에 인위적으로 혜택을 주는 셈이기 때문이다. 인텔이 시장보다 최대 주주인 정부의 눈치를 보며 결정을 하게 될 우려도 크다.
또 미국 정부의 지분이 들어가 있는 만큼, 다른 나라 정부나 기업 역시 인텔과 거래하는데 부담을 느끼거나 규제를 강화할 가능성도 있다. 인텔은 최근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서류에서 정부 지분 투자로 인한 이같은 리스크를 명시했다.
더 큰 문제는 국가가 민간 기업과 시장에 개입하는 ‘국가 자본주의’로 미국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공정한 시장 경쟁 규칙을 만들고 운영하는데 그치지 않고 시장에 직접 개입하려는 처사기 때문이다. 중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에서 밀릴 수 없다는 절박함 때문이라지만, 중국을 이기기 위해 중국이 되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어쨌든 이런 흐름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미국 행정부는 인텔 지분 인수에 이어 미국 대표 방산 기업인 록히드마틴 같은 기업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다는 뜻도 공공연히 밝혔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은 “록히드마틴 매출의 97%가 미국 정부에서 나온다”며 “국방부에서 그런 구상의 경제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얼마 전 일본제철의 미국 US스틸 인수 조건으로 일본제철 주요 결정에 개입할 수 있는 황금주를 얻었고, 엔비디아와 AMD에겐 중국 수출로 인한 수익의 15%를 정부에 내게 했다. 미국 내 유일한 희토류 광산 기업 MP머티리얼즈 지분 15%를 확보하기도 했다.
이런 조치들이 기술 패권 경쟁 승리를 위한 핀셋 처방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조치를 정교하게 실행 가능할까? 시장 실패보다는 정부 실패가 더 크고 장기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불안감과 전체주의 국가가 힘을 쓰는 세계 질서에 대한 두려움 사이에서 세계인들은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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