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K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을 꿈꾸는 까닭..성장을 넘어 성숙으로 [스페셜리스트뷰]
- K콘텐츠의 새로운 미래, K뮤지컬...글로벌 시장 꾀해
영세한 환경에서도 빠른 속도와 규모로 외연적 확장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 및 뮤지컬 평론가] 코로나19가 전세계를 휩쓴 이후, 공연 산업의 성장세는 더욱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이른바 '보복 소비'가 극적인 반전의 양적 확대를 불러오고 있어서다. 감염에 대한 우려로 한자리씩 듬성듬성 티켓을 팔아야 했던, 그래서 공연가에서는 우스갯소리처럼 '퐁당퐁당' 티켓을 팔아야 한다며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지만, 엔데믹 이후 V자 반등의 기록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5000억원대 뮤지컬 시장의 서막을 알렸다.
인기 뮤지컬은 막이 오르기 전 구름처럼 모여든 관객의 모습으로 그야말로 일대 장관을 연출한다. 티켓 가격이 결코 만만치 않건만, 대중이 선호하는 인기 배우의 공연은 말 그대로 입추의 여지가 없는 만원사례요, 문전성시다.
마냥 장밋빛이란 뜻은 아니다. 시장의 팽창과 함께 산업의 성숙이라는 화두를 떠올리면 이제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고민거리들이 떠오른다. 몸집은 불어났지만 선순환의 건강한 생태계가 조성됐는가를 묻는다면 아직 풀어야 할 선결과제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 일단 뮤지컬의 정의부터 따져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질문을 하나 생각해보자. '마리 퀴리'와 '홍련' '프랑켄슈타인' 그리고 '위키드'와 '맘마 미아!', '킹키부츠'의 차이점은. 정답은 바로 창작 뮤지컬과 라이선스 뮤지컬이라는 구분이다.
전자가 우리의 언어와 창의력을 가져와 만든 ‘토종’ 콘텐츠라면, 후자는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그 흥행성이나 인기가 검증된 외국산 유명 뮤지컬을 가져와 우리말로 재포장하거나 아예 내한공연으로 꾸며지는 일종의 ‘재가공’ 혹은 ‘직수입’ 콘텐츠라는 의미다.
실험과 도전 무대에 올라선 K뮤지컬
사실 창작 뮤지컬이라는 용어에 대한 논란도 있다. 어떤 뮤지컬이라도 '창작'되지 않는 무대는 없다. 미국 브로드웨이나 영국 웨스트엔드 등이 우리보다 더 진일보된 글로벌 규모의 뮤지컬 시장임에는 이론이 없지만, 콘텐츠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노력과 고통이 그들이라고 해서 우리와 특별히 다를 바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창작과 수입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은 사실 토종 콘텐츠의 입장만을 반영한 일종의 마케팅적 수사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등장한다. '창작' 뮤지컬 대신 K팝이나 K드라마, K무비처럼 K뮤지컬이라 부르자는 움직임도 있다. 보다 확대되고 유연한 방식으로 우리 뮤지컬을 정의내리고, 그럼으로서 성장의 폭을 극대화하자는 주장이다.
뮤지컬의 영역을 단순히 문화예술작품으로서의 정체성 뿐 아니라 시장으로서의 기능, 산업으로서의 성장 가능성을 포함시켜 정책을 개발하고 환경을 조성하자는 의미다. 광의의 K뮤지컬은 그래서 경계 없는 자본의 흐름과 전문 인력의 글로벌한 협업, 국가나 문화권을 넘나드는 실험과 도전이 주요한 대상이자 목표가 되기도 한다.
사실 창작 뮤지컬이든 아니면 K뮤지컬이든, 보다 완성도 있는 대한민국 뮤지컬의 개발과 등장에 목말라하는 것은 문화산업적 시각에서 보면 너무도 당연한 욕구다. 특히 시장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선도적 콘텐츠를 발굴하고 정기적으로 막을 올리는 레퍼토리화는 뮤지컬 관계자라면 누구라도 꿈꾸는 달콤한 미래다.
마치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급성장한 우리 가요가 K팝으로 세계 곳곳에서 인기를 누리며 성장하듯, 또 '쉬리'나 '공동경비구역 JSA'같은 작품이 한국 영화의 소비 시장을 폭넓게 확산시켰던 것처럼, 우수한 완성도와 볼거리로 치장한 우리 뮤지컬의 등장은 대한민국 공연 콘텐츠의 경쟁력을 한층 업그레이드 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매출구조 같은 경제적인 요인을 봐도 K뮤지컬의 우수한 콘텐츠 발굴은 절실한 과제다. 요즘 국내에서 인기를 누리는 해외 유명 흥행작들은 경우를 보면 명분은 더욱 선명해진다. 60~70%에 육박하는 손익분기점과 고가의 로열티, 열악한 수익분배 구조 등이 허울뿐인 성장세에 가려있다는 뼈아픈 지적도 있다. '잘해야 본전'이란 말이다.

특히 창작 뮤지컬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은 시장 환경은 곱씹어볼 문제다. 뮤지컬 전용관이 부족하고 공공적 성격의 공연장들은 대부분 복합공연장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공연 시장 여건이 그렇다. 이런 환경에서 뮤지컬은 길어야 2~3달의 공연기간을 확보할 뿐이다.
우리의 이런 환경적 요인은 이미 큰 시장에서 대중성을 검증받은 유명 수입 뮤지컬의 마케팅에나 적합할 뿐, 작품을 만들고 브랜드 가치도 키워야하는 창작 뮤지컬에게는 언감생심 이윤을 창출하기 힘든 장벽같은 구조에 다름아니다. 자연히 수지타산 맞추기 어려운 대형 공연장은 해외에서 온 유명 뮤지컬이, 적은 비용에 경제적 부담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소극장에는 창작 뮤지컬이 주를 이루는 편향된 환경이 조성될 수밖에 없다.
이 쯤 되면 연간 백여편이 넘는 창작 뮤지컬의 등장이 사실 '빛 좋은 개살구'라는 씁쓰름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영세한 규모의 구멍가게 같은 환경 하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지닌 창작 뮤지컬의 등장을 바란다는 것은 사실 도둑놈 심보에 다름없다. 매해 거의 20%에 육박하는 매출 신장이 이어지고 있다지만, 결국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몇몇 소수의 인기 배우와 ‘외국의 원저작자’들이 챙겨가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는데 사안의 심각성이 있다.
창작 뮤지컬이 갖춰야하는 경쟁력
관건은 어떻게 창작 뮤지컬이 경쟁력을 갖추게 만들 것인가의 여부다. 예술과 문화산업에 대한 보다 치밀하고 또 치열한 고민이 뒤따라야 한다.
우선 시장의 조성이 필요하다. 창작자를 보호하고 육성하며 그들이 ‘물건’을 만들어내기에 적합한 분위기와 제도를 고안해야 한다. 단계별 시장의 조성과 운영은 고려할 수 있는 대안 중 하나다. 대형 창작 뮤지컬을 만드는 제작자들이 그들의 아이디어와 콘텐츠를 본격적으로 대형 공연장에 올리기에 앞서 검증하고 테스트해 볼 수 있는 중간단계의 과정을 다양하게 마련한다는 의미다.
즉, 뮤지컬 공연 기획자가 부동산 담보에 의존해 ‘모 아니면 도’ 형식의 도박판을 벌리도록 방임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실험하고 검증받을 수 있는 공간과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형 창작 뮤지컬의 등장과 흥행, 대중성의 확보는 단계별 시장에서의 실험과 그 결과에 따른 당연한 귀결에 불과하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교육도 빠질 수 없다. 단순한 배우 양성 위주의 구조만으로는 궁극적으로 양질의 콘텐츠를 확보하기 힘들다. 100여편이 넘는 창작 뮤지컬이 등장한다지만, 이들이 얼마나 다양한 내용과 형식으로 또 폭넓은 크리에이티브 인력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는가를 따져봐야 한다.
사실 ‘그 밥에 그 나물’인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반대로 인기 작가나 작곡가라 인정받으면 수십편 넘게 관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모두 검증된 인력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방증이다.
노래하고 연기하는 무대위 배우들도 필요하지만, 뿌리를 만들고 튼실한 줄기를 형성하려면 다양한 제작 인력의 양성과 육성도 창작 뮤지컬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반드시 전제돼야 할 덕목이다. '발칙한' 실험과 '무모하지만 다양한 검증을 시도할 수 있는' 도전이 보장되지 못하면 뮤지컬의 산업화는 요원한 이상에 불과하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세계의 장벽을 넘어 글로벌한 흥행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도 바로 사람이 꿈꿔야 가능한 일이며, 콘텐츠의 저작권을 확보하고 관리하는 사람 역시 크리에이터들이다. K뮤지컬을 발전시키기 위한 진흥법을 고심하고, 아카이브를 구축해야하며, 전문인력의 육성 및 양산을 위한 아카데미를 발족시켜야 하는 명분이자 타당한 이유다.

사실 주목할 만한 시도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에서는 매해 창작 뮤지컬을 선발해 대구에서 트라이 아웃을 꾸밀 수 있도록 대관료나 제작비 등을 지원하고, 다시 이들끼리 경쟁에서 선발된 작품을 이듬해 축제의 정식 초청작으로 초청하는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창작산실도 유사한 목적의 지원프로그램이다. 아직 충분하다고 까진 말하기 어렵겠지만, 체계적이고 바람직한 도전이자 시도여서 이들이 빚어낼 '물건'을 기대하게 만든다.
최근 국내외에서 들리는 반가운 소식들은 낙관적인 전망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나라 제작자인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가 수석 프로듀서가 참여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가 현지에서 인기를 누리며 화제가 되더니, 대학로 K뮤지컬로 시작된 ‘어쩌면 해피엔딩’의 브로드웨이 현지 버전인 ‘메이비 해피엔딩’은 전대미문의 토니상 6개 부문 석권이라는 진기록을 세우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에미상을 받은 ‘오징어 게임’, 오스카를 휩쓴 ‘기생충’, 수상까지는 이어지지 못했지만 연이은 후보 선정으로 시선을 모았던 그래미상의 방탄소년단(BTS)과 더불어 한국 문화예술계가 미국문화산업의 상징적인 수상제도인 에고트(EGOT)에서 이뤄낸 ‘대박’ 사건들이다.
한류가 왜 미래의 먹거리가 될 수 있으며, 국가 브랜드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에 대한 실증적인 자료들이 될 전망이다. 앞으로 펼쳐질 전개도 궁금하다. 물론 뮤지컬계가 제 2, 제 3의 ‘어쩌면 해피엔딩’을 꿈꿔야하는 너무도 당연한 이유이기도 하다.

반가운 소식들도 들린다. 여성학자 마리 퀴리의 일생을 소재로 한 K뮤지컬 ‘마리 퀴리’는 그녀의 고국인 폴란드로 진출할 예정이며, 푸치니의 오페라를 한국식으로 변화시킨 뮤지컬 ‘투란도트’는 슬로바키아로 악보와 대본이 팔려나가는 재미난 행보를 선보인 바 있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외딴 무인도에 남겨진 한국군과 북한 포로들의 해프닝을 그린 ‘여신님이 보고 계셔’도 영미권 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고, ‘스웨그 에이지, 외쳐! 조선’은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쇼케이스 무대를 올리며 관계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K뮤지컬의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 확장되고 성숙되어질 전망이다.
서구에서 뮤지컬이 대중문화 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데는 대략 150여년의 세월이 소요됐다. 우리의 초기 흥행 창작 뮤지컬인 ‘살짜기 옵소예’가 등장한 것은 불과 60년전, 게다가 본격적인 규모의 시장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20여년 역사에 불과하다. 아직은 성장통이 남아 있지만 그래도 남다른 속도와 규모의 외연 확장은 기념비적 성과다.
기왕이면 이제 우리 콘텐츠가 세계 시장으로 진출해 글로벌 공연가를 호령하는 하는 시대로까지 발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젠 성장을 넘어 성숙으로 나가야할 전환점을 맞고 있다. 뮤지컬 관계자들에게 응원의 기립박수를 보낸다.

※ 원종원 뮤지컬 평론가는 순천향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과와 공연영상학과 교수이며 SCH미디어랩스대학 학장을 맡고 있다. 유럽을 여행하다 만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활동을 시작했고, 우리나라 최초로 PC통신을 통해 동호회를 결성해 관극운동을 펼쳤다. KMTV, NTV의 프로듀서와 스포츠투데이 기자, 파이낸셜 뉴스 런던특파원을 거쳤으며, 조선일보 ‘원종원 뮤지컬 엿보기’, ‘크리틱스 초이스’, 경향신문 ‘문화내시경’, 한겨레신문 ‘뮤지컬 넘버 열전’, 매경 프리미엄 ‘원종원의 뮤지컬 읽기’, 한국경제신문 ‘문화의 향기’ 등 뮤지컬 관련 칼럼을 연재했다. 또 오페라의 유령(2001), 캣츠(2002),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2004), 플래시댄스(2019) 등 여러 뮤지컬을 우리말로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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