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잠시 멈춘 시장, 더 깊어진 불안과 분노[김현아의 시티라이프]
- 근본적인 해법은 서울 집값을 억누르는 것이 아닌 서울 밖의 선택지를 키우는 일
“집값이 아니라 삶의 지리를 바꾸는 것, 그것이 진짜 부동산 정책”
[김현아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초빙교수·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전 국회의원] 10월 15일, 정부가 발표한 세 번째 부동산 대책은 시장에 대한 일종의 봉쇄령이었다. 서울과 경기 12개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고, 고가주택 대출 한도를 절반으로 줄였으며, 전세대출도 막혔다.
정부는 이를 “투기 수요 억제”라 설명했지만, 현장에서 대책은 투기수요와 실수자를 구별하지 않았다. 집을 사려던 신혼부부는 대출 승인이 취소됐고, 전세 만기를 앞둔 세입자는 갑자기 계약을 포기해야 했다. 부동산 앱의 거래창에는 ‘거래보류’, ‘계약취소’ 문구가 잇따랐다. 이들은 투기꾼이 아니라 몇년 동안 저축한 돈으로 내 집마련을 하기위해 부족분을 대출로 충당하려던 일반 시민이다.
이제 집을 사거나 빌릴때 대출을 이용하는건 상식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 어디에도 대출없이 자기자본으로 집을 사는 나라는 없다. 그런데 가뜩이나 집값이 비싼 서울과 경기 일부 지역의 대출을 막은 것이다. 정부대책으로 가장 먼저 멈춰 선 것은 평범한 시민의 일상이었다.
정책은 때로 강제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 강제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공감 가능한 명분이 필요하다. 지금의 서울 집값 상승은 단순한 투기가 아니라 구조적 결과다. 일자리와 교육, 교통, 문화, 인프라가 집중된 도시의 가치가 그대로 가격에 반영된 것이다.
사람들은 서울에서 부동산을 통해 돈을 벌고 싶은 것이 아니라, 서울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비싼 집을 감수한다. 그래서 인구 감소시기에도 서울의 집값이 유지되는 것이다. 아니 서울을 대체하는 그 어느것도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서울의 집값이 더 오르는 것이다. 이 근본적인 사실을 무시한 채 거래를 통제하는 것은 결과를 원인으로 착각한 처방이다.
실수요자들의 좌절, 현실과 시장을 모르는 말말말
정부가 시장을 ‘잠시’ 멈추게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러나 멈춤의 시간마다 사람들은 더 불안해졌다. 대출을 옥죄고 세금을 늘려도 결국 ‘거래를 포기하는 건 서민이고 실수요자’들이다. 서울의 대출을 옥죌때마다 서울 주택의 구매자들은 현금부자와 외국인들로 채워졌고, 부자들의 자녀에 대한 주택증여는 늘었다. 높아진 세금은 전세주택을 월세로 전환시키면서 세입자의 임대료에 그대로 전가됐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문재인 정부 당시 드러났던 가까운 과거의 일이다. 그런데도 동일한 정책이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반복되고 있다. 진짜 국민들을 분노케하는 것은 정책의 내용보다 그것을 설명하는 정책 당국자의 ‘말’이다.
부동산 정책의 실직적인 책임자라고 볼 수 있는 국토교통부의 차관은 “지금은 집을 사지 말고 돈을 모아 나중에 사라”고 말했다. 과거 “모두가 강남에 살 필요는 없다”, “실제 거주하고 있는 주택을 제외하고는 모두 처분하라”고 했던 정당의 정치인과 관료들이 모두 강남에 집을 보유하고, 거주주택이 아닌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 정부가 집을 사지 말라고 했던 그 시기에 집을 산 사람은 모두 자산가치가 상승했지만 정부를 믿고 기다렸던 사람들은 내집마련이 더 요원해졌다. 그 ‘나중’은 영영 오지 않았다. 조세정책 책임자는 “보유세를 높이면 버티지 못하고 팔게 될 것”이라 했다. 여당과 대통령실은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고 있지만 국민들 입장에선 ‘겁박’이긴 마찬가지다.
통제에도 품격이 필요하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1933년 대공황 당시 ‘뱅커스 할리데이’(Bank Holiday)를 선포했다. 당시 미국은 은행 도산이 연쇄적으로 번지던 시기였다. 루즈벨트는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수 있는 법률, 즉 1917년 적국거래법(Trading with the Enemy Act) 제5조 (b) 항에 근거해 모든 은행을 4일간 일시 폐쇄했다. 이후 긴급법(Emergency Banking Relief Act)을 의회가 통과시키면서 은행의 건전성을 신속히 점검했고, 건전하다고 판정된 은행부터 영업을 재개했다. 그는 이 조치를 ‘휴일’이라 불렀다. 국민에게 “이건 위기가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 위한 점검의 시간”이라고 설득했기 때문이다.
이 비상조치는 단순한 통제가 아니라 명분·절차·사후 책임이 모두 갖춰진 행정적 신뢰 회복의 모델이었다. 문제는 지금의 한국 정부가 그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는 점이다. 10·15 대책의 핵심인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은 법적으로 지자체장의 권한이다. 그러나 서울시는 발표 하루 전날에야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다. 정책의 폭력성은 때로 불가피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폭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명분이 있어야 하고, 절차가 투명해야 하며, 사후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이번 대책은 이 세 가지 모두가 결여됐다.
더 큰 문제는 거래를 멈춘 이후다. 정부가 멈춘 시장을 언제, 어떻게 다시 움직일지에 대한 청사진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루즈벨트가 4일의 ‘휴일’을 통해 신뢰를 회복했다면, 우리는 1년 가까운 ‘정지 상태’ 속에서도 불신만 깊어지고 있다. 불가피한 멈춤이라면 그 시간 동안 무엇을 고칠지, 어떤 질서로 회복할지를 제시했어야 했다. 그러나 정부는 결과만 통제하고, 과정과 방향은 비워뒀다. 아무런 책임도, 설계도 없었다.
서울 집값이 여전히 비싸지만, 그 안에는 단순한 콘크리트가 아니라 ‘기회의 농도’가 있다. 외곽으로 가면 집은 싸지만 일자리와 교육, 의료 접근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편한 삶 대신 비싼 삶을 택한다. 그 선택은 욕심이 아니라 생존의 전략이다.
근본적인 해법은 서울의 집값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서울 밖의 선택지를 키우는 일이다. 수도권 외곽과 지방의 주거환경, 교통, 일자리 인프라가 서울 수준으로 개선된다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그러나 신도시들은 30년째 자족기능을 갖추지 못하고, 광역교통망은 약속으로만 진행중이다. 지역의 삶이 서울의 대체제가 되지 못하는 한, 서울의 집값은 어떤 규제에도 다시 오른다. 서울이 아닌 곳에서도 살아볼 만한 이유를 만들지 못한다면, 이번 대책은 또 다른 위기의 예고편일 뿐이다.
집값이 아니라 삶의 지리를 바꾸는 것, 그것이 진짜 부동산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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