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멜리타에서 하리오까지…핸드드립 커피의 역사 [심재범의 커피이야기]
- ‘끓여’ 마시는 음료에서 ‘내려’ 마시는 음료로
독일·일본 거쳐 스페셜티 커피 산업으로 발전
[심재범 커피칼럼니스트] 1908년 독일 드레스덴. 평범한 가정주부 멜리타 벤츠는 탁하고 쓴맛이 강한 커피에 늘 불만을 느꼈다. 당시 유럽에서 쓰이던 금속망이나 천 필터는 미세한 가루를 걸러내지 못했고, 잔 바닥에는 늘 불쾌한 찌꺼기가 남았다.
멜리타는 아들의 공책에서 흡수성이 좋은 종이를 뜯어내 구멍을 뚫은 주석컵에 깔고 커피를 내려 봤다. 놀랍게도 맑고 깨끗한 커피가 잔에 담겼다. 인류 최초의 브루잉 커피인 ‘핸드드립 커피’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그는 곧바로 특허를 내고 ‘멜리타’(Melitta)라는 회사를 세웠다. 최초의 커피 장비 회사로 출발한 멜리타는 꾸준히 제품을 개발하며 성장했고, 21세기 들어 연 매출 3조원 규모의 다국적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이전까지 커피가 끓여 마시는 음료였다면, 멜리타 드리퍼의 등장으로 커피는 내려 마시는 음료, 곧 브루잉 커피로 바뀌었다. 멜리타 이후 가정에서도 커피를 손쉽게 즐길 수 있게 되면서, 100년 넘게 이어진 커피 소비 확대의 토대가 됐다.
칼리타와 핸드드립 커피의 정착
브루잉 커피 문화는 곧 일본으로 전해졌다. 전후 경제가 살아나던 1950년대 일본에서 커피는 서양적 낭만과 일상의 여유를 동시에 상징했다. 전국에 기사텐(喫茶店·끽다점)이 생겨나며 커피는 단순한 음료를 넘어 생활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음악을 듣고 담소를 나누며 커피를 마시는 일은 곧 서구 문화를 경험하는 방식이었다.
1958년 요코하마에서 출발한 칼리타는 멜리타의 단점을 보완한 드리퍼를 내놓았다. 멜리타가 단일 구멍 구조여서 물줄기에 따라 맛이 달라졌다면, 칼리타는 바닥이 평평하고 세 개의 배수 구멍을 둬 보다 균일한 맛을 보장했다.
일본의 기사텐 마스터들은 이 도구를 활용해 커피를 배우고 가르치며 도제식 학습 문화를 만들었다. 커피를 내리는 과정은 단순한 손재주가 아니라 장인의 수련 과정으로 여겨졌고, 한 잔의 커피에는 기술과 정성이 담겼다.
쇼와 시대의 성장과 함께 일본 핸드드립 문화는 꾸준히 확산했다. 물줄기를 세심히 조절하고 시간을 기록하며 온도를 맞추는 과정은 단순한 조리가 아니라 하나의 의식 같은 행위로 자리매김했다.
칼리타 드리퍼는 한국의 ‘1서3박’ 세대 같은 초기 커피 마스터에게도 깊은 영향을 주었다. 한국과 일본의 다방 문화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아시아 전역으로 퍼졌고, 나아가 20세기 말 미국과 유럽에서 태동한 스페셜티 커피 산업에도 자극을 줬다.
하리오 V60과 스페셜티 커피의 시대
칼리타가 안정성과 장인의 미학을 제공했다면, 2004년 등장한 하리오 V60는 개성과 과학을 결합한 도구였다. 일본의 유리 전문 기업 하리오는 60도 원뿔형 구조와 나선형 리브, 단일 배수구멍을 결합한 V60 드리퍼를 출시했다.
종이 필터가 드리퍼 벽에 달라붙지 않도록 한 설계는 공기 통로를 만들었고, 넓은 배수 구멍은 추출 속도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
21세기 초 스페셜티 커피 붐이 일던 미국과 유럽의 젊은 바리스타는 기존 드리퍼의 높은 난이도에 부담을 느꼈다. 하리오 V60는 저울과 온도계를 활용해 변수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고, 숙련자에게는 창의적 해석의 자유를 줬다.
V60는 빠르게 세계 무대에 올랐다. 2000년대 후반 이후 월드 브루어스 컵(WBrC) 대회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도구가 됐고, ‘핸드드립’이라는 표현은 점차 국제 표준어인 ‘푸어오버’(Pour Over) 혹은 ‘브루잉’(Brewing)으로 바뀌었다. 칼리타 웨이브, 에어로프레스 같은 새로운 도구가 등장하며 브루잉 커피의 세계는 더욱 다양해졌다.
지난 8월 30일, 서울 성수동에서는 하리오 V60 출시 20주년을 기념하는 브루어스 컵 한국 대표 선발전이 열렸다. 우승자는 유대연 바리스타였다.
그는 도쿄 스페셜티 커피 전시회(SCAJ) 2025 무대에서 각국 대표와 맞붙게 된다. 이 대회는 브루잉 커피 역사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세계인의 일상이 된 핸드드립 커피
독일에서 시작하고 일본에서 발전한 핸드드립 커피 문화는 한국과 아시아를 거쳐 서구 스페셜티 커피 산업으로 이어졌고, 이제는 전 세계인의 일상이 됐다.
최근에는 ▲지속가능성 ▲윤리적 소비 ▲로컬 로스터리의 부상 등 새로운 흐름과 결합하며 커피 문화가 또 한 번 변화를 겪고 있다. 스타벅스가 세계적으로 확산시킨 에스프레소 문화가 프랜차이즈 커피를 키웠다면, 브루잉 커피 덕에 전 세계 가정에서 누구나 쉽게 커피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오늘날 커피 시장은 양극화 속에 놓여 있다. 기후 변화와 자본의 영향으로 국제 커피 지수는 급등하고, 저가 커피 브랜드는 비용 압박에 흔들린다.
품질과 개성을 내세운 스페셜티 커피는 여전히 성장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멜리타 벤츠가 우연히 시작한 드리퍼는 일본의 칼리타와 하리오를 거치며 발전했고, 브루잉 커피의 역사는 전세계 커피 애호가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인류 최고의 음악가 베토벤은 매일 아침 60알의 원두를 세어가며 일관된 커피를 내려 마셨다. 청각을 잃어가는 절망 속에서도 커피 한 잔의 여유가 그의 마지막 작품을 지탱했듯이 2025년 분열과 혼란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커피 한 잔이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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