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작품은 없고 계약만 있었다’... 수천억 ‘아트테크 사기’ 뭐길래 [백세희의 컬처&로(LAW)]
- 미술품 구매를 빙자한 금융사기의 실체
문제의 본질은 아트센터가 만든 '투자 상품'
주최 측이 요청하는 강의 주제는 늘 비슷하다. 바로 ‘안전한 아트테크’다. 아트테크는 ‘아트’(Art)와 ‘재테크’를 합친 말로, 미술품 구매의 여러 이유 가운데 경제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신조어다.
전통적인 미술품 거래 구조는 비교적 단순하다. 작품을 판매하는 갤러리와 이를 구매하는 콜렉터가 전부다. 당사자가 명확하기 때문에 계약 관계 역시 단순한 편이다. 그래서 필자가 강의에서 다루는 아트테크 역시, 작품을 소장하게 될 구매자 입장에서 낯설지만 중요한 계약 조항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설명하는 데 초점을 둔다.
여기에 비교적 최근 등장한 투자 방식들도 함께 다룬다. 미술품 조각투자나 NFT(대체불가능토큰) 열풍 같은 사례들이다. 그리고 강의 말미에는 늘 같은 당부를 덧붙인다.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신중하게 판단하라. 정말 좋은 투자 정보라면, 과연 나에게까지 왔을지 한 번 더 의심해보라.”
너무 흔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그만큼 가장 중요한 원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구매와 소장’을 전제로 한 이야기를 아무리 강조해도, 현실에서는 전혀 다른 곳으로 돈이 흘러가고 있다. 실제로 큰돈은 작품을 사서 소유하는 단순한 구조를 벗어난 지점에서 움직이고 있다. 투자처를 찾는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를 파고든 이른바 ‘아트테크 사기’에 많은 이들이 현혹됐다.
수법 자체는 전형적인 사기와 다르지 않다. 다만 그 포장지가 ‘예술’이라는 점에서 새롭고 그럴듯해 보였을 뿐이다. 그 결과, 피해자는 더욱 빠르게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아트테크 시장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새로운 투자처’인가 전형적인 ‘폰지 사기’인가
2024년 들어 갤러리 대표들이 구속됐다는 소식이 잇따라 보도되기 시작했다. ▲지웅아트갤러리 ▲아트컨티뉴 ▲서정아트센터 ▲갤러리K 등은 미술품 투자에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름들이다. 이들 업체의 공통된 혐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와 「유사수신 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이다.
이들 갤러리는 투자자들에게 “미술작품을 구매한 뒤 일정 기간 갤러리에 맡기면 전시·광고·협찬·대여 등을 통해 연 10~16%의 수익을 지급하겠다”고 홍보했다. 계약 기간이 끝난 뒤 작품이 제3자에게 팔리지 않을 경우 갤러리가 재매입해 원금을 보장하겠다는 조건도 제시됐다. 투자자들은 작품 대금을 지급했지만 실제 미술품을 인도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작품 이미지만 파일 형태로 전달받거나, 잠시 인도받았다가 다시 반환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문제는 일정 기간 이어지던 수익금 지급이 갑자기 중단되면서 드러났다. 수익금은 물론 약속된 원금까지 지급되지 않자 피해자들의 고소가 잇따랐고, 수사 끝에 업체 대표들이 구속됐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사기 혐의를 받는 주요 네 개 업체에서 각각 약 1000억원 규모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확인된 피해액만 4000억원을 넘어섰고, 전체 피해 규모가 수조원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수사기관은 이들 업체가 치밀하게 설계된 금융 사기를 벌였다고 보고 있다. 미술품을 병원 등에 임대해 수익을 창출한다는 설명은 형식에 불과했고 실제로는 신규 투자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지급하는 전형적인 ‘폰지 사기’ 수법이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업체들은 투자자 보호와는 무관하게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겼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실제로 지웅아트갤러리의 경우, 지난해 3월 회장과 임원진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및 「유사수신 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회장은 징역 23년, 대표이사 두 명은 각각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매월 투자금의 1% 수익과 3년 후 원금 보장을 약속했지만, 투자금 대부분은 갤러리 회장이 운영하던 부동산 시행사업 등에 전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은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정보의 불균형이 만든 투자 피해
문제의 본질은 일부 아트센터들이 만들어낸 ‘투자상품’에 있다. 이 상품은 투자자의 돈으로 고가의 자산을 매입해 보관·관리·운용하고 그 수익을 나눠주며 원금까지 보장하겠다는 구조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이런 방식의 자금을 모집하려면 법에 따른 인·허가를 받고 엄격한 규제를 충족해야 한다. 엄격한 규제 하에 제한적으로만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정보의 비대칭’이라는 투자 거래의 특수성 때문이다. 투자상품의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다양한 요소의 영향을 받게 마련인데, 그에 대한 정보는 상품을 만들어 낸 주체가 독점하곤 한다. 일반 투자자는 상품의 가치를 좌우할 수 있는 수많은 변수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나아가 충동적인 투자 혹은 투기의 가능성도 상당하다. 여기에 노동 없이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유혹, 원금 보장이라는 말이 더해지면 판단은 더욱 흐려지기 쉽다.
아트테크 역시 예외가 아니다. 업체들은 쿠사마 야요이·데미안 허스트·이우환·박서보 등 유명 작가의 작품을 내세워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투자자들은 형식적인 소유권만 넘겨받았을 뿐, 작품을 실제로 소장하지도 못했고 구체적인 운용 방식에 대한 정보도 제공받지 못했다. 자신이 지불한 금액이 미술 시장에서 적정한 가격인지조차 알기 어려운 구조였다. 미술품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치 변동이 큰 재화다. 얼마에 팔고 얼마에 살 수 있는지는 업계에 있는 사람들만이 제대로 알 수 있다.
공동구매 방식을 통해 평소라면 감히 상상할 수 없던 거액의 작품을 분할 소유할 수 있다고 믿었던 이들도 있다. 그러나 실상은 위법한 금융투자상품의 구매자에 불과했을 가능성이 크다. 수년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조각투자나 NFT 투자도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위법한 금융투자상품으로 판단되어 금융당국의 철퇴를 맞고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곤 했다. 업체들은 불황을 탓하며 투자의 실패를 다른 곳으로 돌렸고, 투자자는 어리석은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왜 그런 정보가 나에게 왔을까”를 묻는 자세
갤러리들이 의도적으로 폰지 사기를 기획한 사실이 입증된다면, 관련자들은 실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가해자가 처벌받는 것과 투자자의 피해가 회복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형사재판의 목적은 처벌이지, 피해 회복이 아니기 때문이다.
피해 회복은 결국 민사 절차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민사소송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설령 승소하더라도 집행할 재산이 없다면 판결문은 종이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는 수백 년간 반복되고 있는 투자 사기의 전형적인 말로이다.
그렇게 수익성이 좋은 상품 정보가 굳이 나한테까지 흘러든 이유가 무엇인지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한다. 하나마나 한 소리일 수 있지만 또 한 번 강조하게 되는 이야기다.
백세희 법률사무소 아트앤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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