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젠슨 황의 ‘잃어버린 15년’…우리는 왜 그를 기억하지 못했나[최화준의 스타트업 인사이트]
- 과소평가된 '약한 유대(Weak Tie)'의 힘
작은 인연이 혁신의 씨앗 될 수 있어
[최화준 아주대 경영대학원 벤처/창업 겸임 교원] 지난해 10월 엔비디아의 창업자 젠슨 황(Jensen Huang) 최고경영자(CEO)의 방한은 장안의 화젯거리였다. 특히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함께 ‘치맥’을 즐기면서 진행한 이른바 ‘깐부 회동’은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 경제 관계자들은 깐부 회동을 첨단 기술 기업들이 협력 의지를 다지는 행사로 받아들였고, 대중은 재벌 총수들이 선술집에서 만나 러브 샷을 하는 낯선 풍경에 열광했다.
필자 역시 이 흥미로운 만남을 지켜보며 한편으로 풀리지 않는 의문이 생겼다. ‘젠슨 황은 왜 그토록 오랜만에 한국을 찾아 대기업 총수들만 만나고 갔을까’ 하는 점이다. 물론 글로벌 빅테크 기업 CEO로서 당연한 행보라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반도체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세계적인 기업을 일군 엔비디아의 정체성을 생각하면, 이번 방한 행보에는 까닭 모를 아쉬움이 남는다.
젠슨 황의 한국 방문은 무려 15년 만이었다고 한다. 그는 그동안 중국·대만·일본 등 주변 아시아 국가를 수차례 방문했지만, 정작 메모리 반도체 강국인 한국은 찾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 글로벌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국내 반도체 스타트업들이 속속 등장했음에도, 엔비디아는 한국의 스타트업 생태계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한국을 추억하는 젠슨 황,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한국
측근들의 전언에 따르면 젠슨 황은 인연을 매우 소중히 여기는 인물이다. 30여 년 전 엔비디아에 투자했던 일본인 담당자의 연락 한 통에 직접 답장을 보내고 일본행을 택했을 정도다. 이번 방한의 계기 중 하나로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과 편지를 주고받았던 인연을 꼽기도 했다.
그에게 한국은 각별한 기억이 있는 곳인 듯하다. 그는 방한 기간 중 "엔비디아의 성장은 한국의 PC방 덕분"이라며 과거 용산 전자상가를 누비던 시절을 회고했다. 온라인에서는 2008년 서울대학교에서 강연하던 그의 앳된 모습이 담긴 사진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 엔비디아에게 한국은 의미 있는 시장이었고 젠슨 황은 이곳에서 꽤 열정적으로 활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이한 점은 그 시절의 젠슨 황을 상세히 기억하거나, 개인적인 인연을 이어온 한국인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유명인의 사소한 에피소드까지 발굴하는 언론조차 그의 과거 행적을 찾지 못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용산 상인들의 인터뷰를 싣는 데 그쳤다. 반도체 업계 원로 중 누구도 그와의 인연을 자랑스레 이야기하지 않았다.
작은 인연을 가능성으로 바꾸지 못한 실수
엔비디아는 한국에 진출한 지 오래되었고, 한국은 그들에게 결코 작은 시장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젠슨 황을 기억하지 못할까. 스타트업 생태계에 몸담은 필자는 그 이유를 '과소평가된 작은 인연'에서 찾는다. 경영학에서는 이를 ‘약한 유대’(Weak Tie)라고 부른다.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이 약한 유대는 종종 거대한 기회로 이어진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자유롭게 교류하는 문화 속에서 창업자들은 새로운 협업 관계 형성에 적극적이다. 스쳐 지나가는 만남이 훗날의 사업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반면, 이미 구축된 가치 사슬 위에서 이해득실을 따져가며 협업을 결정하는 기존 대기업의 문화는 이와 사뭇 다르다.
기성 기업들은 종종 창업자의 잠재력과 스타트업의 파괴력을 과소평가하며 작은 인연을 흘려보낸다. 모바일 운영체제 안드로이드(Android)의 창업자 앤디 루빈과 삼성전자의 일화가 대표적이다. 2004년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삼성전자를 찾은 앤디 루빈과 8명의 개발자는 턱없이 작은 회사 규모를 이유로 문전박대당했다. 그로부터 1년 뒤 안드로이드는 구글에 인수됐다. 이 사건은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바라보는 시각의 한계와, 그들이 왜 혁신적인 파트너와 ‘깊은 관계’를 맺기 어려운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필자는 15년 전, 젠슨 황 역시 한국에서 비슷한 시선을 경험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세계를 호령하지만 당시 엔비디아는 그저 그래픽 카드나 만드는 부품 제조사로 인식되던 시절이었다. 많은 국내 기업 관계자들이 그를 단순한 하청 업체 대표 정도로 치부했을 가능성이 크다.
작은 인연도 소중히 여긴다는 젠슨 황은 과거 한국에서의 시간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시 그와 시간을 보내며 약한 유대를 맺었을 수많은 한국인 중 그를 뚜렷하게 기억하는 이는 없다.
15년 만에 돌아온 거물을 정치인과 재계 총수들은 환대했고 대중은 환호했다. 하지만 작은 인연이 불러올 엄청난 잠재력을 아는 필자는 그 화려한 깐부 회동 뒤편에서 씁쓸함을 느낀다.
오늘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또 다른 스타트업 창업자가 15년 뒤 제2의 젠슨 황이 되어 돌아올지 모른다. 그때도 우리는 그를 기억하지 못할 것인가. 펜을 놓는 순간까지 개운치 않은 뒷맛이 남는 건 단순한 기우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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