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부의 격차 커진다...옥스팜 “정치적 불평등 심화”
- ‘다보스포럼’ 개최 맞춰 부의 불평등 보고서 발표
지난해 억만장자 총 자산 2조5000억 달러 증가
하위 50% 빈곤층 총 자산과 비슷한 규모
[이코노미스트 이지완 기자] 지난해 억만장자들의 자산은 사상 최고치인 18조3000억달러를 기록했으며, 지난 5년 평균보다 3배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이 같은 막대한 부의 집중은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여러 국가에서 민주주의 근간을 위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Oxfam)은 이달 19~23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를 앞두고 발표한 보고서 ‘부가 권력이 되는 세상,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옥스팜은 2014년부터 매년 다보스포럼 개최에 맞춰 부의 불평등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하고, 스위스 다보스 현지에서 불평등 해소를 위한 각국 정부와 기업들의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억만장자들의 총 자산은 2조5000억달러 증가했다. 이는 하위 50%인 41억명의 총 자산과 거의 맞먹는 규모다. 억만장자 수는 지난해 처음으로 3000명을 넘어섰다. 억만장자들의 자산 증가분인 2조5000억달러는 전 세계 극심한 빈곤을 26번 해소할 수 있는 수준이다.
보고서는 이처럼 심화되는 경제적 불평등이 인간의 권리와 정치적 자유를 후퇴시키는 주요 원인이며, 동시에 권위주의가 자라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한다고 강조한다. 불평등 수준이 높은 국가는 평등한 국가에 비해 민주주의가 후퇴할 가능성이 7배나 높다는 것이다.
아미타브 베하르(Amitabh Behar) 옥스팜 인터내셔널 총재는 “부유층과 다른 계층 사이의 격차 확대는 매우 위험하고 지속 불가능한 정치적 결핍을 초래하고 있다”며 “정부들은 엘리트층을 달래고 부를 지키기 위해 잘못된 선택하며, 수많은 국민의 삶이 감당할 수 없고 견딜 수 없게 되는 현실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억누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옥스팜은 억만장자가 일반 시민보다 공직에 오를 확률이 4000배 더 높다고 추정한다. 66개국을 대상으로 한 세계 가치관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거의 절반이 자국에서 부자들이 종종 선거를 매수한다고 답했다.
또한 보고서는 시민의 자유와 정치적 권리가 억압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제 인권 단체 프리덤 하우스(Freedom House)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은 19년 연속으로 자유가 후퇴한 해였으며, 전 세계 국가 4곳 중 1곳에서 표현의 자유가 축소됐다. 또한 지난해에는 68개국에서 142건이 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다. 대부분의 정부는 이를 폭력으로 대응했다.
이처럼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한 민주주의 퇴보는 결국 기아와 질병으로 이어진다. 현재 수십억명의 사람들이 ▲빈곤 ▲기아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인한 사망과 같은 피할 수 있는 고통에 직면하고 있다. 이는 시스템이 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전 세계적으로 4명 중 1명은 식량 불안정에 시달리며 정기적으로 식사를 거르고 있다. 빈곤 감소율은 2019년 수준에서 정체돼 있으며, 아프리카에서는 극빈곤이 다시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 정부들이 원조 예산을 삭감하기로 한 정치적 결정은 빈곤층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줬다. 이는 2030년까지 추가로 1400만명 이상의 사망을 초래할 수 있다.
베하르 총재는 “경제적 빈곤은 굶주림을 낳고 정치적 빈곤은 분노를 낳는다. 어느 나라도 안주할 여유가 없다. 경제적·정치적 불평등이 국민의 권리와 안전을 침식하는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빠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옥스팜은 보고서를 통해 각국 정부가 초부유층이 언론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기업을 장악하도록 방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제프 베조스의 워싱턴 포스트 인수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X) 인수 ▲패트릭 순시옹의 LA타임스 인수 ▲한 억만장자 컨소시엄의 이코노미스트 지분 매입 등을 예로 들며 억만장자들은 세계 최대 미디어 기업의 절반 이상과 주요 소셜 미디어 기업을 모두 소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주요 언론 편집국장 중 여성은 27%, 인종 소수자 출신은 23%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여성과 소수자의 목소리가 주변화되고 ▲이민자나 유색인종 등 소수 집단은 낙인과 희생양으로 전락하며 ▲비판적 목소리마저 침묵당하고 있다. 케냐에서는 정부가 X를 이용해 비판 인사를 추적하고 처벌, 심지어 납치·고문한 사례도 보고됐다. 캘리포니아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일론 머스크가 X를 인수한 이후 몇 달 동안 혐오 발언이 약 5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베하르 총재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더욱 병들고 독성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실제로 그렇기 때문”이라며 “초부유층이 정치·경제·미디어에 미치는 과도한 영향력이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빈곤 해결의 길에서 우리를 멀어지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부유층의 이해가 아니라 국민의 요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양질의 의료와 기후변화 대응 및 공정한 조세 제도 같은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옥스팜은 보고서를 마무리하며 각국 정부가 다음 사항을 우선적으로 시행할 것으로 촉구했다. ▲현실적이고 시한이 명시된 국가 불평등 감소 계획을 수립 ▲초부유층에 대한 효과적인 과세 ▲부와 정치의 유착을 방지하기 위한 로비와 선거자금 지원 관련 규제 강화 ▲언론의 독립성 보장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조합의 활동 보호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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