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일반
3개월 만에 4000→5000…코스피 랠리 움직인 핵심 변수는
- [코스피 5000, 새 역사 쓰다] ②
금리 인하 기대…밸류에이션 재평가 촉진
정책이 밀어올린 투심…‘코리아 디스카운트’ 완화
[이코노미스트 송현주 기자]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5000선에 올라서며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무엇보다 이번 돌파는 속도에서 전례를 찾기 어렵다. 지수 출범 이후 1000선까지는 6년이 걸렸고, 2000선 도달에는 18년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후 3000선까지 13년, 4000선까지도 5년이 소요됐지만, 5000선은 불과 3개월 만에 넘어섰다. 코스피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에 이뤄진 급등 구간이다.
시장에서는 외국인 자금의 대규모 복귀와 반도체·인공지능(AI) 중심 대형주의 실적 기대, 금리 인하 전환 전망과 정책 드라이브가 맞물리며 지수 상단을 끌어올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상승 속도가 가팔랐던 만큼 이번 돌파가 구조적 재평가의 시작인지, 단기 과열 국면인지에 대한 논쟁도 커지고 있다.
3개월 만에 1000포인트…숨 가빴던 상승 추이
코스피 상승 속도는 전례 없이 가팔랐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지난해 11월 4일 종가 4052.3포인트에서 출발해 연말로 갈수록 랠리가 가속화됐다. 특히 12월 27일 하루 만에 3% 가까이 급등하며 시장에 ‘5000선 안착’ 기대를 키웠다.
올해 1월 들어 상승세는 더욱 가팔라졌다. 1월 15일 종가 기준 4800선을 돌파한 데 이어 26일 장중 5000선을 웃돌며 코스피가 사상 처음 ‘5000 시대’에 진입했다. 불과 3개월 만에 지수가 약 950포인트 이상 급등한 것으로, 단순 반등을 넘어 외국인 자금 복귀와 반도체·AI 대형주 중심의 구조적 자금 재편이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리고 1월 27일, 코스피는 마침내 종가 기준 사상 처음 5000선을 넘어섰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135.26포인트(2.73%) 오른 5084.85로 장을 마치며 종가 기준 최고치를 새로 썼다. 지난 22일 장중 처음 5000선을 돌파한 이후, 종가 기준 ‘오천피’ 시대가 본격화된 것이다.
상승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9일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1.4% 오른 5243.42에 출발하며 장중 5200선을 넘어섰다. 코스피가 5200선을 돌파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종가 기준 5000선 안착 이후 불과 2거래일 만에 또다시 새 기록을 경신한 셈이다. 전날 5100선을 넘어선 지 하루 만에 추가 상승이 이어지며 ‘속도전’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이번 랠리를 견인한 첫 번째 동력은 외국인 수급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한국 시장은 글로벌 투자자 입장에서 변방시장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외국인 매수세가 뚜렷하게 강화되며 시장 분위기가 급반전했다.
특히 반도체와 AI 밸류체인을 중심으로 대형주에 대한 투자 수요가 급증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표주가 실적 개선 기대를 바탕으로 상승 흐름을 주도했고, AI 인프라 투자 확대에 따른 수혜 기대가 코스피 전체를 밀어올리는 구조가 형성됐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시장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에 위치해 있고, AI 투자 사이클이 본격화될수록 외국인 입장에서도 비중 확대가 불가피한 구간”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변수는 글로벌 매크로 환경이 꼽힌다. 주요국 통화정책이 긴축의 끝자락에 도달하면서 금리 인하 전환 기대가 위험자산 선호를 자극했다. 금리 하락은 주식시장 밸류에이션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할인율이 낮아질수록 기업의 미래 현금흐름 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글로벌 증시 전반에서 성장주 중심의 랠리가 나타난 배경에도 이러한 기대가 깔려 있다.
코스피 역시 금리 피크아웃 이후 리레이팅 흐름이 반영되며 지수 상단이 열린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상승이 경기민감주 순환이 아니라, 기술·성장 대형주 중심으로 진행된 것이 특징이다.
이번 상승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단연 정부 정책이다. 최근 정부는 자본시장 활성화와 기업가치 제고를 핵심 과제로 내세우며 세제 지원, 주주환원 강화, 시장 구조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기조가 강화되면서 한국 시장의 만성적 저평가 요인,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기대가 커진 것도 투자심리 회복에 영향을 줬다.
증권가에서는 “외국인 자금이 한국 시장을 다시 보기 시작한 배경에는 반도체뿐 아니라 기업 거버넌스 개선과 정책적 드라이브가 함께 작용했다”고 분석한다.
관건은 실적 지속성·환율·정책 동력
다만 코스피 5000을 바라보는 시각이 마냥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지수가 사상 최고치 구간에 들어서면서 밸류에이션 부담도 동시에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PER과 PBR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실적이 이를 따라가지 못할 경우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경고도 나온다. 특히 단기간 급등 과정에서 개인 투자자의 추격 매수까지 겹치며 과열 신호가 일부 포착되고 있다.
향후 코스피 흐름을 좌우할 변수는 기업 실적, 환율, 정책 동력으로 압축된다. 반도체와 AI 업황 회복 기대가 실제 실적 개선으로 이어질 경우 지수 상단은 한층 열릴 수 있다. 반면 원·달러 환율 변동성이 확대되면 외국인 자금 유입이 둔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부의 기업가치 제고와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구조적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도 코스피 5000 이후 흐름을 결정할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코스피 5000 돌파는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글로벌 유동성 환경 변화와 외국인 자금 복귀, 반도체·AI 실적 기대, 정부 정책이 맞물리며 한국 증시가 다시 한 번 재평가 국면에 들어섰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다만 단기 급등에 따른 과열 부담이 적지 않은 만큼, 향후 시장 방향은 실적 지속성과 정책 동력, 글로벌 변수에 의해 좌우될 전망이다.
또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과정에서 순환매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도, 단기 과열 부담에 대한 경계도 동시에 나오고 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반도체 상승 탄력이 둔화되는 가운데서도 그간 소외됐던 업종으로 매수세가 확산되는 순환매 흐름이 나타나며 지수의 최고치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며 “상승 파동이 강하게 전개될 경우 5600선 진입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현재 흐름이 중기 상승세의 마지막 국면일 수 있다”며 “5000~5450선까지 추가 상승 여력은 남아 있지만 이후에는 조정 국면 진입이 불가피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최재원 키움증권 연구원은 코스피 상승 속도가 역사적으로도 이례적인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코스피는 1월 21일까지 16.5% 상승해 2000년 이후 월간 기준 역대 4번째로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며 “메모리 반도체 업황 개선에 따른 이익 전망치 상향과 투자자 예탁금 증가가 맞물리며 상승 경로는 중기적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다만 최 연구원은 “각종 지표가 과열 수준에 진입한 만큼 단기적인 속도 조절 가능성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며 “추가 랠리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현재의 과열 부담을 일정 부분 해소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지현 다올투자증권 연구원 역시 “코스피 5000은 달성 가능한 목표지만, 연이은 상승에 따른 단기 과열 해소가 선행돼야 한다”며 “5000포인트 도달 이후 숨고르기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을 감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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