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기세 꺾인 ‘킹 달러’…엔화·금값 치솟고 원화 환율은 진정세
- 미·일 당국 ‘공조 개입’ 기대감에 엔화 가치 급등
지정학적 리스크에 금값 사상 첫 온스당 5000달러 돌파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미국 달러화의 독주 체제에 균열이 생기면서 글로벌 자산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글로벌 기축통화 역할을 했던 미 달러화가 약세로 돌아서면서 전통 안전 자산(투자 위험이 적고 가치가 안정적인 자산)으로 분류됐던 금이 치솟았고, 최근에는 일본 엔화가 강한 반등세를 보이고 있다. ‘달러 약세·엔화 강세·금 강세’라는 삼박자가 맞물리며 최근 급등했던 원·달러 환율도 안정을 찾는 모습이다.
최근 외환시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엔화의 반등이다. 지난 1월 26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153.88엔(약 1421.14원)까지 떨어지며 엔화 가치가 급등했다. 불과 일주일 전 158엔(약 1459.18원) 선을 넘나들던 것과 비교하면 가파른 상승세다.
엔화 강세를 이끈 결정적 요인은 미·일 당국의 공동 개입 가능성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산하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레이트 체크’(Rate Check)를 실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레이트 체크란 외환 당국이 시장의 환율 수준을 확인하며 개입 의사를 나타내는 행위를 말한다. 닛케이는 “과도한 엔저를 막기 위해 미·일 당국이 공조에 나섰다는 관측이 확산하면서 엔화를 다시 사들이는 환매수(가치가 떨어질 것으로 보고 팔았던 통화를 다시 사는 것) 움직임이 탄력을 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엔화 약세를 막기 위해 일본 당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관측이 시장에서 퍼졌고, 특히 이례적으로 미국의 지원까지 동반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고 전했다.
미국과 일본 외환 당국이 동시에 나선 배경에는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확대 저지와 일본의 수입 물가 상승 억제라는 목표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엔화 가치가 급락하면 일본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커지면서 미국 기업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일본 입장에서는 수입 물가가 오르면 내수 시장이 압박을 받게 된다. 이 때문에 양국이 ‘슈퍼 엔저’를 막기 위해 손을 잡은 것이다.
하지만 불안정한 국제 정세는 달러에 대한 신뢰 하락을 막지 못하고 있다. 반대 급부로 금값은 사상 최고 기록을 새로 쓰는 중이다. 금은 대표적인 안전 자산으로 분류되는데, 최근 반도체 업황 개선 등 원자재 수급과도 맞물리면서 가격이 고공 행진하는 상황이다. 1월 26일 국제 금 가격은 사상 처음으로 온스당 5000달러를 돌파했다.
중동 지역의 긴장 고조와 미국의 대외 정책 불확실성은 금에 대한 국제 수요를 뒷받침하고 있다. 미국이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를 예고하고 베네수엘라 사태에 개입하는 등 지정학적 위험(Geopolitical Risk)이 커지자 투자자들이 금으로 몰려들었다. 전문가들은 각국 중앙은행이 달러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금 보유량을 계속 늘리고 있는 만큼 당분간 금의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달러 약세 흐름에 원화 가치도 반등에 성공했다. 지난주 1470원대 중반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은 최근 1440~1450원대로 내려앉았다. 원화는 통상 엔화와 비슷한 흐름을 보이는 ‘동조화’(Coupling)가 강한데 엔화가 미·일 당국의 개입 기대감으로 강세를 보이자 원화 약세 압력도 자연스럽게 완화됐다.
향후 시장의 시선은 이번 주 예정된 미 연준의 통화정책 회의와 주요 기업 실적 발표로 향하고 있다.▲미 연준의 기준금리 동결 여부 ▲트럼프 행정부의 추가 관세 및 외환 정책 기조 ▲중동·우크라이나 등 지정학적 갈등 전개 양상
등이 달러화에 대한 신뢰 제고와 원화 환율의 방향성을 결정지을 변수로 꼽힌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1400원대 후반까지 치솟은 원화 환율에 당국과 기업·투자업계도 주의하던 상황이었는데, 환율이 진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다만 미국의 재정 적자 확대 우려와 정치적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만큼 환율 변동성 확대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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