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 열풍에 빅테크 공습까지…흔들리는 K웹툰
‘700억 수혈’ 창작 생태계 키워 위기 정면 돌파
김용수 웹툰 엔터테인먼트 프레지던트. [사진 네이버웹툰] [이코노미스트 정길준 기자] kjkj@edaily.co.kr
나스닥 시장에서 혹한기를 견디고 있는 웹툰엔터테인먼트(네이버웹툰 모회사)가 김용수 프레지던트를 구원투수로 긴급 투입했다. ‘작가 없이는 플랫폼도 없다’는 절박한 인식으로 창작 생태계를 육성하는 ‘플라이휠’ 모델을 전면에 내세워 멈췄던 ‘포스트 디즈니’로의 비상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포석이다.
작가가 커야 웹툰도 산다
김 신임 프레지던트는 취임 후 첫 공식 석상에서 웹툰엔터의 중장기 핵심 전략으로 플라이휠의 확장을 제시했다. 플라이휠은 창작자가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면 이용자가 유입되고, 여기서 발생한 수익이 다시 창작자에게 돌아가 생태계를 키우는 선순환 구조를 뜻한다.
김 프레지던트는 지난 17일 서울 역삼동 네이버 스퀘어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건강한 창작 생태계는 회사의 장기적인 성장에 꼭 필요한 근본 요소”라며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창작 생태계에 대한 투자를 이어갈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런 자신감의 배경에는 창작자에게 아끼지 않고 투자해 일궈낸 마르지 않는 ‘지식재산권(IP) 유전’이 있다. 웹툰엔터가 2021년부터 2025년까지 5년간 창작자에게 배분한 수익은 총 4조1500억원에 달한다. 업계 전반에 신작 축소 바람이 불고 있지만 ▲공모전 ▲투고 프로그램 ▲스튜디오 협업을 바탕으로 신규 작품 발굴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특히 글로벌 시장 확장을 위해 현지 작가 발굴과 마케팅을 병행하며 웹툰을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카테고리로 격상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창작자의 수익을 갉아먹는 불법 유통에 대한 기술적 방어막도 한층 두터워졌다. 자체 개발한 불법 복제 추적 기술 ‘툰레이더’의 성과는 독보적이다. 최신 회차가 게시된 당일 즉시 불법 사이트로 복제되는 작품 수는 지난해 11월 기준 약 80% 급감했다. 한국과 글로벌 시장의 연재 시차를 없앤 ‘동시 연재’ 시스템은 작품 결제액을 최대 200% 이상 끌어올리며 불법 사이트 이용자를 정식 서비스로 흡수하는 강력한 유인책이 되고 있다.
김 프레지던트는 올해 3대 사업 방향으로 ▲사용자 제작 콘텐츠(UGC) 강화 ▲비디오 포맷 확장 및 메가 IP 육성 ▲디지털 캐릭터 및 소셜 기능 고도화를 꼽았다. 아마추어 플랫폼 ‘캔버스’를 개편해 창작자 저변을 넓히고, ‘컷츠’와 ‘비디오 에피소드’ 등 숏폼 애니메이션으로 콘텐츠 소비 방식을 다변화할 계획이다.
네이버웹툰 원작으로 제작해 흥행에 성공한 영화 ‘좀비딸’. [사진 네이버웹툰]
나스닥 쉽지 않네
하지만 따뜻한 봄날의 비전을 얘기하기엔 나스닥의 겨울바람이 여전히 시리다. 웹툰엔터는 지난 2024년 6월 네이버 계열사 최초의 ‘나스닥 상장’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약 10% 급등하며 기업가치 4조원을 인정받았고,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까지 상장 기념행사에 참석하며 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지금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상장 당시 23달러에 육박했던 주가는 현재 8~9달러까지 밀려나며 고점 대비 60% 이상 폭락했다. 틱톡과 유튜브 쇼츠 등 숏폼 영상이 모바일 콘텐츠 주도권을 장악하며 이용자 체류 시간이 분산된 영향이 크다. 여기에 애플과 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거대 자본을 앞세워 웹툰 시장에 뛰어들며 경쟁 강도가 극에 달했다.
수익성 지표도 악화하고 있다. 2025년 연간 순손실은 3억7340만달러(약 5500억원)로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불었다. 지난 2021년 야심 차게 사들인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 등 성장 동력들이 제값을 못하면서 발생한 영업권 손상 차손이 결정타였다. 매출 감소와 마케팅 비용 증가로 조정 EBITDA(이자·세금·감가상각·무형자산 상각 전 이익) 마진은 5.0%에서 1.5%로 뚝 떨어졌다. 본토인 한국의 연간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2400만명으로 전년 대비 11.1% 줄었다.
글로벌 증권사들은 웹툰엔터의 성장세 둔화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MAU 증가세 정체에 더해 마케팅 비용 상승 대비 더딘 수익성 개선을 지적하며 보수적인 보고서를 내놨다. 골드만삭스와 HSBC 모두 실적 발표 이후 투자 의견을 나란히 ‘매수’에서 ‘중립’과 ‘보유’로 한 단계 낮췄다. 골드만삭스는 웹툰엔터의 목표 주가를 15달러에서 10달러로 33% 낮추기도 했다.
글로벌 IP 확장 성공 사례로 꼽은 웹툰 ‘신의 탑’. [사진 네이버웹툰] ‘700억 투자’로 그리는 반등의 설계도
그런데도 김 프레지던트는 주가 하락과 성장 정체라는 파고를 넘기 위해 ‘수익성’보다 ‘성장성’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지금은 마케팅 투자를 조정해 수익을 올리는 것보다 글로벌 시장에서 웹툰을 메인스트림 문화로 인정받게 하는 확장이 더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올해 창작 생태계 육성에 700억원을 투입하는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혔다.
애플과 아마존 등 빅테크의 공습에 대해서도 명쾌한 해답을 내놨다. 김 프레지던트는 일본 시장의 사례를 들며 “일본에는 웹툰 플랫폼이 100개가 넘지만 네이버 계열 라인망가가 독보적 리더십을 지키는 비결은 ‘독점 작품’에 있다”고 분석했다. 단순히 작품을 가져와서 파는 형태의 빅테크 플랫폼과 달리 창작자가 플랫폼의 지원을 받아 성장하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독점 IP를 확보하는 선순환 생태계가 웹툰엔터만의 강력한 무기라고 설명했다.
수익 모델의 다변화 역시 핵심 과제다. 기존 유료 콘텐츠(유료 회차 결제)에 치중된 매출 구조를 광고와 IP 사업(영상화·게임·굿즈 등)으로 대폭 확장한다. 그는 “IP가 플랫폼 밖으로 나가 애니메이션·게임·책이 되며 확장될 때 비로소 하나의 산업이 완성된다”며 ‘신의 탑’의 성공 사례를 언급했다. ‘신의 탑’은 2010년 연재를 시작해 누적 조회수 53억회를 넘어섰고 게임과 애니메이션 등으로 확장하며 글로벌 IP로 자리매김했다.
미국 디즈니와의 파트너십을 주도했던 김 프레지던트는 “미국 젊은 층에게 웹툰은 매우 ‘쿨’한 포맷으로 각인되고 있다”며 현지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주가 하락에 대한 걱정을 인지하고 있다”며 “본질에 집중하면서 어떻게 성장해 나갈지에 대한 플랜은 분명히 가지고 있다”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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