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노동자 보호 ‘소득 감소’ 역풍 피하려면 [긱워커 870만, 일터 기본법 파장은]④
-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수백만의 노동자 보호 필수
근로자·자영업자 경제적 차이 인정하고 설계해야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이하 일터 기본법)과 근로자 추정제의 핵심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 ▲플랫폼노동자 ▲프리랜서 등 기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던 노동자들을 근로자로 추정해 법적 보호의 우산 아래 포함하자는 것이다. 새벽배송 기사와 배달 라이더 그리고 보험설계사 등 수백만명의 노동자가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논의가 이뤄지는 것 자체는 환영할 일임이 분명하다. 다만 노동자 보호 수단으로 “근로자로 추정한다”라는 방식을 채택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성급한 접근의 위험성
근로기준법은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을 근로자로 정의한다. 경제학에서 임금이란 근로자가 자신의 시간을 기업에 판매하고 받는 대가다. 근로자는 노동시장에 자신의 시간을 공급하고, 기업은 그 시간을 구매한다. 임금을 받는다는 것은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지 않는 대신 기업의 지시에 따라 사용하는 데 동의하는 계약 행위다. 임금을 받으면 하기 싫고 쉬고 싶다고 일을 중단하거나 그 시간에 기업이 시키지 않은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반면 ▲특고 ▲플랫폼노동자 ▲프리랜서는 시간이 아니라 산출량(성과) 기준으로 보수를 받는다. 기업이 원하는 것은 일정 시간 동안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결과물이다. 기업은 이들의 시간 사용을 전면적으로 통제하지 않는다. 대신 작업량을 늘리거나 줄이는 위험을 상당 부분 이들이 스스로 떠안는다. 재화와 서비스 시장 상황이 나빠져 물량이 줄면, 이들의 수입은 곧바로 줄어든다. 이 구조는 임금근로자라기보다 위험을 함께 부담하는 계약 당사자, 즉 넓은 의미의 자영업자에 가깝다.
생산량에 근거해 보수를 지급하는 개수급(Piece Rate)과 생산에 투입한 시간에 근거해 보수를 지급하는 시간급(Time Rate)의 선택도 중요하다. 생산성이 높은 사람은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개수급을 선호한다. 본인이 더 일하면 그만큼 수입이 추가로 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생산성이 낮거나 안정성을 중시하는 사람은 경기 변동 위험을 기업에 넘기고 시간급 임금근로자가 되기를 원한다. 어떤 노동자가 자영업 또는 프리랜서를 택하고, 어떤 노동자가 임금 근로를 택하는지는 이런 자기 선택의 요소가 존재한다.
이 관점에서 ‘모든 일하는 사람’을 근로자로 추정하는 접근은 여러 문제가 있다. 첫째, 서로 다른 위험·보수 구조를 억지로 하나의 틀에 넣으면서 원래 상호 이득이었던 균형을 깨뜨린다. ▲특고 ▲플랫폼노동자 ▲프리랜서의 계약은 지금까지 기업과 종사자 모두에게 시간급과 개수급 중 더 유리한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줬다. 그런데 이들에게 일괄적으로 근로자 지위를 부여하면 생산량 감소에 따른 위험을 기업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당연히 기업은 이들 유형의 노동에 대한 수요를 줄이려 할 것이다. 이 경우 전체 일자리와 소득이 감소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둘째, 근로자 추정제는 분쟁의 입증책임을 근로자에서 사업주로 옮겨서 사업주가 “이 사람이 언제 근로자로 인정될지” 예측하기 어렵게 한다. 퇴직금·연장수당·4대 보험·형사처벌 위험까지 기업이 감당해야 한다면 프리랜서·플랫폼 인력 활용 자체를 줄이거나, 자동화·해외 아웃소싱(위탁)으로 대체하는 쪽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쪽은 보호 대상인 플랫폼·특고 종사자들이다.
셋째, “일하면 모두 근로자”라는 시그널은 고소득 프리랜서에게도 불리하다. 이들은 성과와 자율성을 중시하며, 개수급 구조 속에서 높은 보수를 얻어 온 집단이다. 이들에게까지 근로자 틀을 강제하면 오히려 선호하지 않는 고용 형태를 강요하고 일 방식 자체를 훼손할 수 있다.
핵심은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특고 ▲플랫폼노동자 ▲프리랜서는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다. 이들이 산재·성희롱·괴롭힘·일방적 계약 해지 등에 취약해서 보호가 필요하다는 대전제에는 사회적 합의가 형성돼 있다. 쟁점은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다.
첫째, 근로자 추정제는 전면 일괄 도입이 아니라 요건과 범위를 엄격히 한정해 단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상시성 ▲전속성 ▲사용자의 구체적 지휘·감독 ▲보수 구조 등 정량적 기준을 세밀히 설계해 사실상 임금근로자에 해당하는 집단을 보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일터 기본법은 계약 형태와 무관한 최소 권리 기준을 제시하는 기본법으로 역할을 한정해야 한다. ▲성희롱·괴롭힘 금지 ▲안전보건 ▲공정 계약·정보제공 의무 ▲부당한 계약 해지 제한 등은 고용 형태와 상관없이 모든 노동에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다.
셋째, 보호 강화는 재정지원 패키지와 함께 추진돼야 한다. ▲특고 ▲플랫폼 종사자에 대한 산재·고용보험 확대와 분쟁조정·법률구조 강화 등의 비용을 전적으로 기업에 떠넘기면 수요 축소와 소득 감소를 부를 뿐이다. 국고 지원과 단계적 분담 구조를 병행해야 한다. 그래야 보호는 늘리되 일자리 총량은 지키는 균형 유지가 가능하다.
일터 기본법은 “누가 노동자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디지털 플랫폼 시대의 답을 찾으려는 첫걸음이다. 다만 그 답이 보호의 이름으로 노동 수요와 소득을 갉아먹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근로자와 자영업자의 경제적 차이를 정면에서 인정하는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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