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일반
‘블루 박스’ 벗어난 이케아… 서울 도심 깃발 꽂고 실속 잃었다
- 6000억원 매출 뒤 ‘초라한 이익’
박리다매가 불러온 재무적 족쇄
가구 디자인 버리고 AI 물류 투자 올인
‘가까운 이케아’ 얻었지만 ‘수익성' 잃어
[이코노미스트 권지예 기자]
글로벌 가구 공룡 이케아(IKEA)가 도심 진출의 야심작으로 선보인 강동점이 오픈 1주년을 맞았다. 서울 시내 첫 대형 매장이자 글로벌 신전략의 한국판 시험대로 주목받았던 강동점은 서울 동부권 고객을 무서운 속도로 흡수하며 외형 성장을 견인했다. 하지만 오픈 1년이 지난 지금, 이케아에 대한 환호보다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블루 박스’를 벗어난 대가
이케아 강동점이 지난 1년간 증명한 가장 뼈아픈 사실은 도심형 모델의 저효율 구조다. 이케아 코리아의 2025회계연도(FY25) 매출은 약 6393억원으로 전년 대비 반등에 성공했지만, 영업이익은 약 109억원으로 전년 대비 41.6%나 급감했다.
현시점의 성적표는 이케아가 직면한 ‘박리다매의 늪’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케아의 최대 운영사인 잉카 그룹은 최근 실적 발표를 통해 “단기 수익성보다 판매량 확보가 우선”이라며 의도적인 가격 인하 정책을 공식 선언한 바 있다. 실제로 글로벌 이케아의 전체 매출액은 전년 대비 약 1.0% 감소했으나 실질 판매 수량은 오히려 2.6% 증가하며 ‘마진을 깎아 시장 점유율을 방어하는’ 전형적인 박리다매 양상을 띠고 있다.
국내 가구업계를 이끄는 한샘이나 현대리바트 등 국내 주요 경쟁사들이 고부가가치 프리미엄 가구와 맞춤형 서비스로 수익성 제고에 집중할 때 이케아는 도리어 스스로 가격을 낮추며 ‘가구계의 다이소’라는 저가형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었다.
고물가와 주택 경기 침체라는 최악의 시장 환경 속에서 수천개 품목의 가격을 인하해 점유율을 방어한 점은 유의미한 성과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영업이익률 1%대 현재의 기형적인 수익 구조는 결코 지속 가능할 수 없다는 게 업계 내 중론이다.
이케아 강동점 1주년의 기록이 도심형 매장의 고비용 구조와 브랜드 정체성의 혼란에 짓눌려 주저앉기 시작한 ‘쇠락의 서막’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업계에서는 이케아가 지난 수십 년간 고수한 교외형 대형 창고를 의미하는 ‘블루 박스’ 모델을 버린 대가라고 입을 모은다. 기존 이케아는 지가가 저렴한 외곽 부지에 매장을 직접 소유하며 물류와 판매를 동시에 해결해 왔다. 그러나 강동점은 서울 도심의 고가 임대료와 복합 쇼핑몰 입점이라는 고비용 구조를 택했다.
지난 3월 20일 잉카 그룹은 글로벌 인력 800명을 감축하며 “조직이 너무 복잡해졌다”고 선언했다. 배경에는 도심 진출로 인해 비대해진 운영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강동점은 서울 시민에게 ‘가까운 이케아’를 선물했지만, 기업에는 ‘팔아도 남지 않는’ 재무적 족쇄를 채운 셈이다.
이케아 코리아 관계자는 “이케아는 대내외 환경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더 많은 사람들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홈퍼니싱 제품을 접할 수 있도록 2024회계연도 약 83억원을 투입해 990여개 제품의 가격을 낮췄고, 이듬해에도 약 40억원을 추가로 투입해 450여 개 제품의 가격을 인하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풀필먼트(주문처리) 역량 강화 등 운영 효율을 높이기 위한 투자도 병행하고 있다”며 “이 같은 노력으로 전년 대비 온·오프라인 방문객 수 7% 증가와 이커머스 매출 비중 13% 성장으로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가구보다 서비스, 소유보다 경험
더 큰 의문은 브랜드 정체성의 실종이다. 과거 이케아는 미로 같은 쇼룸을 탐험하는 ‘경험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현재 이케아의 투자 공시는 더 이상 가구 디자인 회사가 아님을 시사한다.
이케아 코리아가 2024년 기흥점에 도입했던 초기 단계의 자동화 설비(오토스토어) 투자를 넘어 2026년 현재 강동점 내부의 ‘AI 마이크로 풀필먼트 센터(MFC)’ 고도화에 집중돼 있다.
지난해 하반기 이케아가 단행한 미국 AI 물류 기업 로커스 인수 이후 예산 구조는 기형적으로 변했다. 잉카 그룹과 인터 이케아가 발표한 ‘2026 전략 자산 배분 보고서’를 보면 과거 전체 예산의 약 12~15%를 차지하던 ‘제품 디자인 및 R&D’ 비중이 2026년 현재 4.8%까지 쪼그라들었다. 이는 그룹의 “신제품 개발보다 기존 베스트셀러의 공급망 최적화가 수익성에 유리하다”는 판단에 따른 결과다.
반면 AI 배송 경로 최적화 및 매장 내 자동 픽업 로봇 도입 등 ‘물류 기술’ 관련 예산은 전체의 65%를 돌파했다. 잉카 그룹의 글로벌 인력 감축 역시 이같은 기술 도입으로 비용을 감축하려는 흐름과 맞물린다.
이를 바탕으로 이케아는 새로운 전략을 짰다. 올 초 이케아 본사는 새로운 글로벌 브랜드 방향성인 ‘이케아 2030: 라이프 서비스 플랫폼’을 발표했다. 눈에 띄는 점은 더 이상 이케아 스스로를 ‘가구 제조사’로 정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신 고객의 주거 생활 전반을 관리하는 서비스 기업으로의 전환을 공식화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이케아는 향후 5년 내 매출의 50% 이상을 가구 판매가 아닌 ▲배송 ▲설치 ▲구독 ▲중고 거래 서비스에서 창출하겠다는 파격적인 목표를 세웠다.
전략의 핵심은 ‘초단기 배송’과 ‘도심 밀착’이다. 강동점 1주년 성적표에서 나타난 비용 폭탄에도 불구하고 이케아가 도심 매장을 고집하는 이유는 이곳을 거점으로 삼아 ‘주문 후 2시간 내 도착’하는 구독형 가구 서비스를 완성하기 위해서인 듯 보인다.
다만 아직까지 현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디자인적 미학보다는 물류 효율성에 치중한 나머지 이케아의 정체성이던 민주적 디자인이 퇴색한 아쉬움이 포함돼 있다. 그룹은 “가구의 소유 시대는 끝났다”고 외치지만 정작 시장에서는 이케아가 제공하던 특유의 영감과 ‘조립의 재미’가 사라진 자리에 기계적인 배송 서비스만 남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가구업계 관계자는 “서울 도심에 깃발을 꽂기 위해 포기한 40% 이상의 영업이익과 브랜드의 신비감은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을 것”이라며 “도심형 실험이 이케아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하는 과정이 된 듯 보인다”고 말했다.
이케아 코리아 관계자는 “물류 서비스뿐 아니라 접근성과 편의성을 아우르는 고객 경험 전반을 함께 강화하고 있다”며 “온·오프라인을 연결하는 옴니채널 환경을 비롯해 물류 역량을 개선해 주문부터 배송까지 원활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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