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중동 사태와 월세, 그리고 서울의 선택[김현아의 시티라이프]
- [지방선거와 도시]④
주거 규제 권한은 여당이, 서울시 공급 정책 권한은 야당 시장이 각각 쥐고 있어
전세와 월세 세입자 각각의 불안에 어떤 해법 내놓을 지가 관건
[김현아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초빙교수·정책평가연구원 연구위원] 2026년 3월 초, 중동 사태가 본격화된 날 한국 금융시장은 세 방향에서 동시에 흔들렸다. 코스피는 급락했고 원·달러 환율은 치솟았고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NH금융연구소는 중동 사태가 1년 이상 지속되면 한국 성장률이 0%대까지 추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 여파는 장바구니 물가부터 빠르게 일상을 파고들고 있다. 불가항력적 위기가 닥칠 때 사람들의 정치 심리는 독특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정치심리학에서는 이를 ‘위협-보수화 가설’로 설명한다. 존재론적 불안과 통제 불가능한 외부 위협에 노출된 개인은 변화보다 안정을, 새로운 대안보다 현재의 질서를 선택하려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초기 전 세계 집권 정부의 지지율이 일제히 뛰어오른 현상이 그 전형적 사례였다. 불확실한 세상일수록 사람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지도자”에게로 몸을 기댄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집권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여론이 야당보다 높게 나오는 것도 이 가설의 한국판 버전으로 읽힌다. 그렇다면 6월의 서울시장 선거는 이 흐름 위에서 어떻게 결정될까. 서울의 구조는 단순하지 않다. 중앙정부의 주거 규제 권한은 여당이, 서울시의 공급 정책 권한은 야당 시장이 각각 쥐고 있어, 서울 유권자에게 이번 선거는 사실상 두 겹의 심판이 되기 때문이다.
같은 주거 불안, 서로 다른 책임자
서울시민이 느끼는 주거 불안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이 불안이 얼마나 강력하게 선거를 뒤흔들어 왔는지는 역사가 두 번의 선명한 장면으로 기억한다. 1987년 대선에서 서울 유권자는 전셋값 폭등의 고통을 집권 세력에 대한 낮은 지지로 표출했다. 결국 노태우 후보가 당선됐지만 서울에서는 35%에 그치며 야당 후보에게 1위를 내줬다. 대선 공약으로 내건 5년간 200만 호 공급은 주거 불안을 겨냥한 응답이었고 당선 후 분당·일산 등 1기 신도시 건설로 현실화됐다. 1987년이 ‘공급이 없어서’ 폭발했다면 2021년은 ‘공급을 막아서’ 폭발했다.
박원순 시장 재임 10여 년 동안 서울 시내 재개발·재건축 수백 곳이 해제되거나 사업이 사실상 중단됐고, 공급이 막힌 자리에서 매매가격과 전·월세 임대료가 동시에 폭등했다. 주거 사다리를 잃어버린 시민들의 분노가 선거표로 전환된 것이다. 두 사건이 공유하는 문법은 하나다. 주거 불안은 서서히 그러나 반드시 정치 불안으로 변환되고 임계점을 넘는 순간 선거가 그 분출구가 된다.
그렇다면 2026년의 서울은 어떨까. 아파트 월세 지수는 2026년 1월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고 전세 매물은 전년 대비 28.4% 감소했다. 원룸 평균 월세는 80만 원대까지 올랐다. 주거 불안의 조건은 충분히 무르익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불안의 책임자가 한 곳이 아니라 두 곳으로 나뉜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다르다.
▲임대차보호법 ▲종합부동산세 ▲전세대출 규제 ▲분양가 상한제 등 수도권 주거시장을 움직이는 핵심 정책 권한은 이재명 정부와 집권 민주당에 있다. 반면 ▲서울 내 재개발·재건축 허용 ▲역세권 청년주택 공급 등 실질적인 공급 정책은 국민의힘 소속 현 서울시장의 손에 있다. 같은 서울의 주거 문제이지만, 규제의 열쇠는 여당이, 공급의 열쇠는 야당 시장이 각각 쥐고 있는 것이다.
중동 공포와 월세 공포, 어느 쪽이 더 깊이 파고드는가
여기에 중동 사태가 끼어들면서 방정식은 한층 복잡해진다. 중동 사태라는 외부 충격은 주거 불안을 완화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유가 급등은 물가 전반을 끌어올리고 환율 불안은 시중금리 인상 압박으로 이어진다. 임대인에 대한 금융비용 압박과 보유세 부담이 가중될 경우 이는 월세 인상으로 세입자에게 전가될 것이다. 앞으로도 중동 사태의 상흔은 세입자의 일상을 계속 파고들 것이다. 이 복합 압박이 표심에 남기는 균열도 계층마다 방향이 다르다.
월세 청년·무주택 세입자에게 지금은 두 개의 공포가 동시에 진행 중이다. 중동 사태가 발발하기 전인 올 1월, 한국은행은 이미 15~29세 청년층의 가처분소득 대비 주거비 비율이 전체 연령 평균의 세 배를 넘는다고 경고했다. 중동 사태는 이 구조적 취약성에 물가와 금리라는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다. 이들의 분노는 투표 불참의 형태로 표출될 수도 있다. 부동산 자산 보유자에게는 중동 사태가 자산 방어 심리를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이재명 정부의 다주택 규제와 과세 기조가 이미 이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터에, 금리 인상 우려와 보유세 부담이 겹치면 ‘집권 여당 심판’의 동기가 더 강해진다. 코스피 급락으로 금융 손실을 입은 2030 자산 보유층은 또 다르다. 중동 사태 국면에서 정부가 위기 관리의 유능함을 입증하면 결집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세 흐름이 어느 쪽도 압도하지 못한 채 맞부딪히면서 판세는 계속 요동치고 있다. 2026년 2월 오차범위 내 초박빙이었던 구도는 중동 사태 이후 민주당 후보 쪽으로 기울고 있으나, 경선이 마무리되지 않은 만큼 어느 방향도 단정하기 이르다. 두 개의 심판대 사이에서 서울의 표심은 아직 움직이고 있다. 6월까지 남은 시간, 두 개의 균형추가 선거판을 계속 움직일 것이다.
중동 사태의 전개 방향과 수도권 임대차 시장의 흐름. 전자가 커질수록 위협-보수화 심리가 집권 여당(민주당)에 유리한 흐름을 만들것이고 후자가 깊어질수록 주거 불안의 심판이 현 정부를 압박할 것이다. 부디 중동 사태의 여파가 서민의 밥상과 월세 고지서에 더 이상 깊은 상처를 남기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후보들의 공약 안에 전세와 월세 세입자 각각의 불안에 어떤 해법을 내놓을 것인지, 임대인과 임차인이 함께 지속 가능한 수도권 임대차의 규칙을 어떻게 다시 쓸 것인지에 대한 답이 담겨 있기를 기대한다. 투표장은 그들의 설득력을 가늠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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