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집 대신 에너지 짓는 건설사…“에너지 밸류체인 확보 사활” [에너지 전쟁, 중동 쇼크 그 이후]③
- 중동 쇼크·PF 위기·AI 전력 수요↑
원전·전력망·데이터센터까지 확장
[이코노미스트 이승훈 기자] 국내 건설업의 경쟁력 기준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한동안 건설사들의 실적과 기업가치를 좌우한 것은 주택 공급 능력이었지만, 최근에는 에너지 인프라 확보 역량이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동 지정학 리스크로 촉발된 ▲에너지 안보 이슈 ▲부동산 경기 둔화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담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급증이 맞물리면서 건설사들의 사업 구조가 주택 중심에서 에너지·인프라 중심으로 재편되는 모습이다.
에너지로 사업 구조 대전환
현대건설은 ‘에너지 전환 리더’를 선언하며 사업 구조를 전면적으로 바꾸고 있다. 이한우 현대건설 대표는 올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대형 원전과 ▲소형모듈원전(SMR) ▲해상풍력·태양광 ▲수소·암모니아 같은 에너지 생산 플랜트는 물론 ▲초고압직류송전(HVDC) 등 전력망 구축 ▲AI 데이터센터까지 아우르는 에너지 밸류체인 전반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현대건설은 ▲페르미 아메리카와 대형원전 4기 건설에 대한 기본설계 계약 ▲핀란드 신규 원전 건설을 위한 사전업무 계약 ▲美 텍사스 태양광 발전사업 ▲신안우이 해상풍력 등 에너지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또 사우디 송전선과 수도권 데이터센터 수주를 통해 에너지 생산·이동·소비 전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기존 주택 중심 건설사에서 벗어나 발전부터 송전, 소비까지 연결하는 ‘에너지 인프라 기업’으로의 전환을 본격화한 모습이다.
삼성물산은 단순 설계·조달·시공(EPC)을 넘어 전력 생산과 전력망 운영까지 아우르는 ‘에너지 솔루션 기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지난 3월 경북 김천에 국내 최초로 신재생에너지만을 활용한 오프그리드 기반 그린수소 생산시설을 준공하며 에너지 생산 기술력을 입증했고, 외부 전력망 없이 자체 생산 전력으로 수소를 생산·저장·공급하는 구조를 구현했다.
원전과 데이터센터 등 고부가가치 인프라 분야에서도 SMR 투자와 루마니아 프로젝트 기본설계(FEED) 참여, 액침냉각 기술을 기반으로 한 데이터센터 사업 확대 등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히타치 에너지와 협력해 유럽 전력망 시장 공략에 나선 점도 주목된다. 초고압직류송전(HVDC)에 이어 초고압교류송전(HVAC)까지 협력 범위를 확대하며 전력망 구축과 운영 영역까지 사업을 넓히고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물산이 발전과 저장을 넘어 송전과 운영까지 아우르는 ‘전력 시스템 플레이어’로 진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데이터센터 태스크포스팀(TFT)를 신설하고 설계·시공·전기·기계(MEP) 등 전 분야 전문 인력을 육성하는 한편, 국내외 시장 진입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다. 생성형 AI와 클라우드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전력 소비 인프라를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동시에 체코 두코바니 원전 사업과 원전 사업 본부 신설을 통해 에너지 생산 영역으로 확장하고, 해상풍력과 글로벌 재건 사업 참여를 통해 신재생 및 인프라 포트폴리오도 강화하고 있다.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전력 소비를 확보하는 동시에 원전과 재생에너지로 공급까지 연결하는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는 평가다.
‘에너지 디벨로퍼’로 진화
DL이앤씨는 기술 기반 에너지 사업을 중심으로 차별화된 전략을 펼치고 있다. 최근 미국 SMR 기업 엑스에너지와 약 1500억원 규모의 ‘SMR 표준 설계’ 계약을 체결하며 단순 시공을 넘어 설계 단계부터 글로벌 원전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구조를 확보했다.
특히 엑스에너지가 생산한 전력이 아마존웹서비스(AWS) 데이터센터에 공급될 예정이라는 점에서 DL이앤씨는 SMR 설계부터 시공, AI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으로 이어지는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와 함께 탄소 포집·저장(CCUS) 기술을 기반으로 글로벌 기업과 협력을 확대하고, 수소 플랜트 역시 시운전과 성능 검증까지 사업 범위를 넓히며 탈탄소 에너지 솔루션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GS건설은 에너지 생산부터 전력 판매, 데이터센터 운영까지 아우르는 통합형 사업 구조를 구축하며 ‘에너지 디벨로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인도 태양광 발전사업에 국내 건설사 최초로 디벨로퍼로 참여해 향후 25년간 전력을 직접 판매하는 구조를 확보한 데 이어, LG유플러스와 장기 전력구매계약(PPA)을 체결하며 발전과 수요처를 연결하는 모델을 구축했다.
또한 안양 데이터센터를 준공하고 자회사를 통해 운영까지 진출하며 시공 중심에서 벗어나 개발·운영까지 아우르는 밸류체인을 완성했다. 여기에 수처리 자회사 매각을 통해 확보한 자금을 에너지 및 친환경 사업에 재투자하고, 폐배터리 재활용 등 자원 순환 영역까지 확장하며 사업 구조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제 건설사는 단순 시공을 넘어 에너지를 생산하고 저장·이동·전환하며 최종 소비까지 연결하는 ‘에너지 디벨로퍼’로 진화하고 있다. 발전소와 송전망은 물론 ▲수소와 암모니아 ▲SMR ▲데이터센터까지 에너지 밸류체인을 하나로 묶는 흐름이다. 주택 중심 사업 구조만으로는 수익성과 성장성을 동시에 확보하기 어려워지면서, 장기 운영 수익과 기술 진입장벽을 갖춘 에너지 인프라가 새로운 먹거리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동 리스크와 AI 확산에 따른 에너지 수요 증가가 맞물리면서 에너지 인프라 확보 능력이 건설사의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며 “발전과 저장, 전력망, 데이터센터까지 이어지는 에너지 밸류체인을 확보한 기업이 향후 시장을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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