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소멸하는 지방...대전 살린 '성심당'을 보라 [허태윤의 브랜드스토리]
- 성심당·가미야마…‘로컬’이 만든 생존 공식
정체성·민간·거버넌스…지방을 살리는 3가지 조건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의 지방자치단체장 공약 이행 평가에 따르면 전국 기초단체장의 공약 이행률은 70%를 넘었지만, 정작 재정 확보율은 절반 수준에 그쳤다. 약속은 넘쳐났지만 이를 지속할 돈은 부족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선거철만 되면 공약은 더욱 화려해진다. 현금성 지원, 대형 개발 사업, 지역 브랜드를 내세운 전시성 프로젝트까지 쏟아진다. 그러나 정작 4년 뒤 그 지역에 무엇이 남는지에 대한 답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성심당이 보여준 로컬 브랜딩의 힘
지방소멸은 이제 통계의 문제가 아니다. 청년은 떠나고 아이는 줄어들며 학교와 상권은 문을 닫는다. 그동안 지방이 내놓은 해법은 대체로 두 가지였다. 하나는 현금 지원으로 사람을 붙잡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산업단지와 대형 시설을 조성해 외부 인구를 끌어오는 방식이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지원금이 끝나면 인구는 다시 빠져나갔고, 산업단지는 공실 문제에 시달렸으며, 거대 시설은 낮은 가동률 속에 유지비 부담만 남기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 지점에서 세계 여러 지역이 공통적으로 도달한 해법이 있다. 바로 ‘로컬 브랜딩(Local Branding)’이다. 이는 단순히 캐릭터를 만들고 슬로건을 붙이는 홍보 전략이 아니다. 지역 고유의 문화와 자원, 생활 방식을 ‘대체 불가능한 가치’로 재해석해 사람을 끌어들이는 장기 전략이다. 결국 사람은 돈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경험과 정체성에 반응한다.
국내에서 가장 상징적인 사례는 대전의 성심당이다. 성심당은 단순한 빵집이 아니다. 전국에서 하루 평균 수만 명이 빵을 사기 위해 대전을 찾는다. 이 유동인구는 주변 상권과 관광 소비를 동시에 일으킨다. 실제 성심당은 지난해 1200억원이 넘는 매출과 3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대형 프랜차이즈를 뛰어넘는 수익성을 보여줬다. 핵심은 규모가 아니라 희소성이다. 사람들은 어디서나 살 수 있는 빵이 아니라 ‘대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빵’을 소비하기 위해 이동한다. 지역 정체성이 하나의 경제 생태계를 만든 셈이다.
일본은 한국보다 먼저 지방소멸을 겪으며 이런 실험을 시작했다. 도쿠시마현의 산골 마을 가미야마초는 대표 사례다. 인구 감소에 시달리던 이 마을은 무리하게 인구를 늘리려 하지 않았다. 대신 ‘창조적 과소’라는 개념을 내세웠다. 숫자보다 사람의 질을 바꾸겠다는 전략이었다. 주민들이 만든 비영리단체 그린밸리는 빈집을 정비해 외지인에게 연결했고, 필요한 인재를 직접 지목해 마을로 초청했다. “우리 마을엔 빵집이 없으니 제빵사를 찾는다”는 식이었다.
이들은 보조금 경쟁에도 뛰어들지 않았다. “보조금을 보고 오는 기업은 보조금이 끝나면 떠난다”는 철학 때문이었다. 대신 광섬유망 구축 이후 IT 기업 위성 사무실을 유치하고, 오래된 양조장을 리모델링해 창작 공간으로 활용했다. 그 결과 인구는 줄었지만 젊은 이주민과 아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지역의 미래를 바꾼 것은 거대한 개발 사업이 아니라 지역 정체성과 이를 운영할 민간 조직이었다.
시마네현 아마초의 사례도 비슷하다. 본토에서 배로 세 시간을 가야 하는 외딴섬이었던 아마초는 “섬에서 보물찾기를 하지 않겠는가”라는 독특한 메시지를 내걸었다. 외부 청년들이 섬에 들어와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수산물 냉동 기술, 해삼 수출 사업, 섬 유학 프로그램 등이 등장했다. 폐교 직전이던 학교는 다시 학생들로 채워졌고, 이주민 비중도 크게 늘었다.
대체불가능한 지역 매력 찾아라
유럽의 해법은 또 다르다. 이탈리아 산촌 산토 스테파노 디 세사니오는 빈집을 허물지 않았다. 대신 마을 전체를 호텔처럼 활용하는 ‘알베르고 디푸조(분산형 호텔)’ 모델을 도입했다. 낡은 석벽과 오래된 골목 자체를 관광 자산으로 만든 것이다. 새 건물을 짓지 않고도 마을의 매력을 경제로 연결한 사례다. 한국에서도 문경 등이 이 모델 도입을 추진 중이다.
이 사례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세 가지다. 첫째는 지역만의 정체성이다. 둘째는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로컬 크리에이터의 존재다. 셋째는 행정이 전면에 나서기보다 민간의 창의성을 지원하는 유연한 거버넌스다. 결국 지역을 살리는 힘은 예산 규모보다 ‘왜 사람들이 그곳을 찾는가’에 대한 답에서 나온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유권자가 던져야 할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무엇을 얼마 지원해줄 것인가”가 아니라 “이 도시를 어떻게 다른 도시와 다르게 만들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지방의 미래는 거대한 토목 사업이나 단기 지원금에 있지 않다. 그 지역만이 가진 대체 불가능한 경험과 정체성을 발견하고 키워내는 데 있다.
빵집 하나가 도시를 먹여 살리는 시대다. 중요한 것은 빵값이 아니다. 사람들이 왜 그 빵을 사기 위해 KTX를 타고 내려가는가, 바로 그 이유를 만드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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