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美 '디지털자산 법제화' 완성했는데...韓은 '제자리 걸음' [김기동의 이슈&로(LAW)]
- 美 클래리티법 상원 문턱 넘으며 제도화 본격화…은행·월가·스테이블코인 시장 재편
“지금 입법하지 않으면 분쟁이 먼저 법 만든다”…한국은 여전히 규제 공백
2021년 케빈 워시가 CNBC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2009년 1월 세상에 나온 비트코인과 함께 자란 세대에게는 가치저장수단으로서 ‘현물 금(gold)’보다 ‘디지털 골드(digital gold)’인 비트코인을 더 선호한다는 뜻이다. 그 워시가 지난 5월 15일 ‘세계 경제 대통령’이라고 불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세계 금융의 흐름이 크립토 친화적으로 급변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다.
올해 초 이란 사태는 디지털자산이 현실 세계에서 수용되고 있다는 점을 다른 각도에서 확인시켰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달러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을 무기 조달과 원유 결제에 활용했다. 국제 송금망 스위프트(SWIFT)를 우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재를 받는 권력에게 스테이블코인은 빠르고 실용적인 자금 이동 수단이었다. 반면 50%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정부를 불신하는 이란 시민들은 예금을 비트코인으로 바꿨다.
미국에서 디지털자산은 더 이상 일부 투자자의 투기적 실험이 아니다. 제도권 금융산업이 주목하는 새로운 금융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JP모건은 지난해 말 이더리움 블록체인 위에 토큰화 머니마켓펀드(MONY)를 출시한 데 이어, 올해 두 번째 토큰화 펀드(JLTXX)를 추가 출시하고 예금 토큰 JPM Coin을 복수의 블록체인으로 확장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비트코인 인컴 ETF를 출시했고, 모건스탠리는 E*Trade 플랫폼을 통한 암호화폐 거래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블랙록의 디지털자산 플랫폼은 향후 5년 내 연간 5억달러의 수익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22년 11월 세계 3위 가상자산 거래소 FTX는 열흘 만에 무너졌다. 고객 자산 80억달러가 증발했다. FTX 붕괴는 단순한 사기 사건이 아니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디지털자산이 ‘증권’인지 ‘상품’인지 관할권을 다투느라 누구도 시장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다. 집행으로 규제를 대신하던 시대의 민낯이었다.
美 클래리티법 등장…“디지털자산도 법의 틀 안으로”
3년 반이 지난 2026년 5월 14일, ‘클래리티법(CLARITY Act·디지털자산 명확화법)’이 15대 9로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를 통과했다. 세계 최대 자본시장이 디지털자산에 대한 포괄적 성문 규제의 틀을 세우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클래리티법 상원 수정안은 그간 SEC와 CFTC가 관할권을 다투며 공백으로 남아 있던 디지털자산 규제 체계를 포괄적으로 법제화한 것이다. 핵심은 자산 분류 체계의 재설계다. 대부분의 디지털자산을 ‘네트워크 토큰’으로 수렴시키되, 기업가적·경영적 노력에 가치를 의존하는 경우를 ‘부수적 자산’으로 구분한다. 네트워크 토큰은 ‘디지털상품(비증권)’으로 분류돼 CFTC가 감독하고, 부수적 자산은 ‘증권’으로 취급되지 않으면서도 SEC의 공시 감독을 받는 중간적 지위를 갖는다.
네트워크 토큰은 기업가적·경영적 노력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을 SEC로부터 확인받게 되면 증권 규제에서 벗어나 CFTC 관할 디지털상품으로 전환된다. 탈중앙화할수록 규제 부담이 줄어드는 구조다. CLARITY Act가 바꾸는 것은 단순한 규제 체계가 아니다. 자산의 성격을 사전에 소명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한 만큼, 과거처럼 집행을 통해 사후적으로 법 위반 여부가 결정되는 불확실성이 줄어든다.
이와 함께 기존 증권법상 등록 절차 대신 간소화된 등록 면제 제도인 ‘규제 크립토(Regulation Crypto)’가 신설됐다. 최대 4년간 연간 5000만 달러 또는 유통 중인 부수적 자산 총 달러 가치의 10% 가운데 더 큰 금액을, 누적 2억 달러 한도 내에서 간소화된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했다. 대신 초기·반기 공시 의무와 내부자 처분 제한을 부과했다.
불법 금융 방지와 소비자 보호도 정면으로 다룬다. 디지털상품 브로커·딜러·거래소에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과하고, 암호화폐 ATM 규제 공백을 해소한다. 파산법을 개정해 등록 중개인이 보관한 디지털자산을 ‘고객 재산’으로 분류하고, 파산 절차에서 다른 상품 및 증권과 동일하게 취급하도록 했다.
탈중앙화금융(DeFi) 영역에서는 프로토콜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주체에게만 중개인 및 자금세탁 규제를 적용하고, 네트워크 트랜잭션 수집·노드 운영 등은 규제 대상에서 명시적으로 제외했다. 국법은행·주립은행·금융지주회사 등이 건전성 규제 틀 안에서 디지털자산 수탁·매매·대출·결제·파생상품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명시적 법적 근거도 마련했다.
법률 제정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스테이블코인 수익 배분과 공직자 이해충돌 문제가 뇌관이다. 상원 본회의 통과에는 60표가 필요하고 민주당의 추가 지지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방향만큼은 분명하다. ‘디지털자산 시장 관여자들의 책임 법제화’다. 암호화폐에 특혜를 주자는 것이 아니다.
일본까지 뛰는데…한국은 여전히 ‘규제 공백’
클래리티법이 상원 본회의를 통과해 입법화되면 파급력은 미국에 그치지 않는다. 월가의 대형 기관들이 디지털자산 시장에 본격 진입하고,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수익 배분 규칙이 정비되면서 국경을 넘는 결제 인프라가 재편된다. 유럽연합(EU)의 미카(MiCA) 규제와 함께 글로벌 디지털자산 규율의 양대 축이 형성되는 것이다.
미국만이 아니다. 신중함의 대명사였던 일본도 이미 달리고 있다. 2020년 금융상품거래법 개정으로 토큰증권의 법적 기반을 마련했고, 엔화 스테이블코인이 정식 인가를 받았으며 국채 토큰화 컨소시엄까지 출범시켰다. 인공지능(AI) 에이전트가 스테이블코인으로 자율 결제하는 서비스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해외에서 계속 출시되고 있다.
한국은 이러한 글로벌 금융의 흐름을 제대로 따라가고 있는가. 연간 160조원 규모의 가상자산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현실은 국내 규제가 가상자산 ETF·파생상품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허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인의 가상자산 투자도 사실상 금지돼 있고,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은 검토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가상자산 시장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기본 질서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미국이 디지털자산의 ‘헌법’을 쓰는 동안 한국은 2단계 입법 논의조차 아직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도 ‘디지털자산의 법제화’를 서둘러야 할 때다. 법적 공백은 혁신을 막고 사고를 부른다. 지금 입법하지 않으면 분쟁이 먼저 법을 만든다. 그것은 훨씬 비싼 대가다.
김기동 법무법인 로백스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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