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일반
코스피 ‘키맨’ 삼성전자, 초격차 너머 ‘초월성장’
- [K증시, 머니무브의 시대]②
반도체 사이클 깨고 함박웃음
AI 두뇌보다 귀한 몸 된 HBM
“주문형 반도체 모델 유지해야”
[이코노미스트 정길준 기자]
삼성전자가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타고 메모리 초격차를 넘어 ‘초월성장’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고대역폭 메모리(HBM)·차세대 기업용 SSD(eSSD)·2나노 파운드리·AI 패키징을 아우르는 풀라인업 전략을 앞세워 국내 증시는 물론 글로벌 AI 지형을 흔드는 ‘키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HBM4 솔드 아웃으로 입증한 리더십
최근 삼성전자를 두고 시장에서는 ‘어디까지 커질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논란의 출발점은 세계 최대 투자은행(IB)의 보고서였다. 골드만삭스는 삼성전자의 2028년 영업이익 전망치를 3445억달러(약 494조원)로 예측했다. 일본 영업이익 상위 100개 기업과 비교한 그래픽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퍼지기도 했는데, 이를 본 일본 누리꾼들은 “AI로 인한 변화가 너무 크다”거나 “미국 기업이었다면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와 어깨를 나란히 했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원화와 엔화의 단위 오류 아니냐는 의심까지 낳았다.
국내 증권가는 삼성전자의 목표 주가를 일제히 상향 조정했다. 삼성전자의 올해 2분기와 3분기 영업이익을 각각 100조원대로 내다본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HBM4(6세대)와 eSSD 시장 점유율 상승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부문의 수익성 개선과 같은 주가 모멘텀이 유효하다”며 반도체 업종 최선호주로 꼽았다.
이처럼 삼성전자의 주력 사업인 반도체가 전 세계적인 AI 열풍으로 전에 없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국내 AI 석학도 더는 반도체 시장에 기존의 ‘사이클’은 없다고 확언했다. 유회준 카이스트 인공지능반도체대학원장은 [이코노미스트]와의 통화에서 “예전에는 D램의 가격이 상승하면 생산량을 늘려서 가격이 하락하고 물량을 줄이는 사이클이 반복됐지만, 현재는 이를 모두 능가하는 AI 투자가 나타나며 과거의 사이클이 깨지고 있다. 이 현상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미 삼성전자는 AI 메모리 리더십을 실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133조9000억원, 영업이익 57조2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분기 실적을 썼다. 메모리 가격 급등과 AI 서버 투자 확대에 힘입어 반도체(DS) 부문 영업이익만 53조7000억원에 달했다.
DS 부문의 앞날에는 구름 한 점 없다. HBM을 찍어내는 족족 팔려나가 공급이 수요에 못 미치는 상황이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 부문 부사장은 지난 4월 30일 실적 발표회에서 “올해 HBM 매출은 전년 대비 3배 이상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최선단 공정으로 HBM4 성능을 끌어올린 결과 고객 수요가 집중되고 있어 회사가 준비한 캐파(생산 능력)는 모두 솔드 아웃(주문 완료)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AI 풀스택’ 플레이어 도약
AI 초기 국면에 삼성전자는 한차례 ‘실책’을 범했다. SK하이닉스가 HBM3(4세대)·HBM3E(5세대)로 선제적으로 고객을 확보하는 사이, 삼성전자는 성능·수율 이슈로 주요 고객사 확보에 애를 먹었다. 이후 경영진은 HBM 대응 지연을 인정하고 기술·품질을 전면 재점검했다. 그렇게 탄생한 HBM3E 12단 첫 샘플이 20개월 만에 엔비디아에 납품을 시작하며 먹구름이 걷혔다.
삼성전자는 이 아픔을 양분 삼아 HBM4에서는 SK하이닉스를 위협할 만큼 격차를 좁혔다. 개발 설계 단계부터 국제반도체표준협의기구(JEDEC) 기준을 상회하는 성능 목표를 설정하고, 1c D램(10나노급 6세대)과 파운드리 4나노와 같은 최선단 공정을 적용해 업계 최고 수준의 성능을 달성했다. 업계 표준인 8Gbps를 약 46% 웃도는 11.7Gbps의 동작 성능을 확보했다. 덕분에 HBM4 매출은 올해 3분기부터 전체 HBM 매출의 절반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탄력받은 삼성전자는 핀당 16Gbps 속도와 4.0TB/s의 대역폭을 지원하는 차세대 HBM4E(7세대) 제품의 첫 샘플도 지난 5월 29일 공급했다고 밝혔다.
AI 시대에 메모리의 위상은 확 달라졌다. ‘두뇌’에 해당하는 중앙처리장치(CPU)나 그래픽처리장치(GPU)보다 ‘보조 기억장치’로 인식됐던 메모리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연산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메모리가 데이터를 제때 공급하지 못하면 시스템 전체가 병목에 걸리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메모리 구조와 인터페이스, 패키징이 시스템 성능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로 떠올랐고, 자연스럽게 메모리 업체의 협상력과 수익성이 과거와는 다른 차원으로 올라섰다.
이런 변화의 과정에서 삼성전자는 단순 메모리 강자를 넘어 ‘AI 풀스택 플레이어’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메모리 가격 상승세를 타고 ▲HBM4 ▲고용량 DDR5 ▲eSSD 등 제품 판매를 확대해 수익성을 극대화할 방침이다. 여기에 비메모리 설계를 담당하는 시스템 LSI는 이미지센서·커스텀 SoC(시스템 온 칩) 등 고부가가치 제품과 신성장 동력에 집중하고, 파운드리는 2나노급 선단 공정을 축으로 AI·HPC(고성능 컴퓨팅)·자동차·항공우주 등으로 응용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한다. 삼성전자의 HBM4가 기술 우위에 선 것도 메모리·파운드리·패키징으로 이어지는 삼각 체제가 있기에 가능했다.
유 교수는 “메모리와 GPU 사이의 데이터 병목 해소가 핵심인데 이에 대한 해답이 메모리에서 나오기 때문에 AI 가속기의 가격이나 성능에서 메모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삼성전자가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시기’라고 진단했다. 그는 “종합 반도체 회사는 비메모리 부문을 육성해야 하는데, 현재 메모리 업황이 너무 좋아서 전환이 어려울 것”이라며 “지금은 메모리를 중심으로 주문형 반도체를 생산하는 모델이 적합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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