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탈서울 시작된 'K스타트업 창업' 생태계...다음 과제는 민간 [최화준의 스타트업 인사이트]
- 글로벌 1000대 창업 도시에 국내 16곳 진입
민간 중심 생태계 전환 과제로 남아
2025년 스타트업 지놈에서 발표한 평가에서 서울은 8위, 올해 스타트업블링크 보고서에서는 20위를 차지했다. 서울시의 창업 생태계는 글로벌 20위권 이내로 창업 선도국의 도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하지만 글로벌 창업 도시 100위 안에 다른 지역 도시들은 보이지 않았다. 글로벌 창업 도시 서울은 국내 창업 생태계의 자랑이자 고질적인 문제인 생태계의 불균형을 보여주는 온상이었다.
하지만 최근 공개된 스타트업블링크 보고서는 국내 창업 생태계의 서울 집중화가 완화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국은 지난 한 해 동안 20.6%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며 글로벌 국가 순위에서 지난해보다 한 계단 상승한 19위로 우뚝 올라섰다. 이는 5년 만에 거둔 최고 순위이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이번 상승의 주역이 서울이 아닌 지역 도시들이라는 점이다. 지역 광역시들은 무서운 성장세를 보여주었다. 여러 광역시들은 100%가 넘는 성장세를 보였는데, 대구시는 무려 254.9%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 결과 모든 광역시들이 500위권 안팎에 위치하는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이에 더해 올해는 지역 중소 도시들인 천안·춘천·전주·원주·세종·아산 등 6개 도시가 세계 1000대 스타트업 도시에 새로 진입하면서 국내 1000대 창업 도시 수는 16개로 작년 9개에 비해 대폭 늘어났다. 이번 보고서에서 돋보이는 국내 창업 생태계의 큰 변화는 단연 탈중앙화다.
대구·대전 등 비수도권 지표 상승
특히 대전시의 약진이 도드라진다. 대전은 올해 처음으로 글로벌 창업 도시 300위권에 진입하면서 서울과의 점수 격차를 27배로 줄였다. 이는 지난해 44배에 달했던 격차에 비하면 크게 줄어든 수치이다. 지난 몇 년간 대전은 지역 창업 생태계를 활성화하고자 지역의 대학과 정부, 공공 기관이 합심해 꾸준하게 다양한 시도를 해 온 결과 마침내 괄목한 만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에 반해 서울은 창업 생태계가 성숙 단계에 진입했다. 여전히 글로벌 20위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국내 10대 도시 중 가장 낮은 7.4%의 성장률을 보였다. 서울은 스타트업 지원 부문에서 세계 4위, 아시아·태평양 지역 1위로 높은 순위를 유지했지만 다른 평가 영역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이를 공공이 주도하는 창업 생태계 육성이 한계에 다다른 신호라고 해석한다.
지역 도시들의 고속 성장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는 미지수이다. 창업 생태계 전문가들은 이번 지역 도시들의 가파른 성장세가 공공 영역의 뒷받침 덕분이었다고 분석하면서 공공 부문에 의존하는 성장 방정식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더했다. 결국 국내 창업 생태계는 언제까지 공공 지원에 기대어 성장할 것인가 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창업 생태계의 균형 있는 발전은 한국이 글로벌 스타트업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과업이다. 실제로 이번 스타트업블링크 보고서에서 한국은 공적 지원을 제외한 영역에서 낮은 평가를 받았다. 예를 들어 ‘혁신가 비즈니스 환경 지수’에서 한국은 32위에 그쳤다. 이는 규제와 같은 시장 환경이 창업 생태계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문화적 인식 변화’ 역시 변화가 시급한 과제로 꼽혔다. 보고서는 한국의 뛰어난 청년 인재들이 창업보다는 안정된 대기업 경력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으며 기업가 정신이 부족함을 지적했다. 이는 궁극적으로 공공 영역의 지원보다는 문화적 전환이 동반되어야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지난해 국내 창업 도시들을 방문했던 스타트업블링크 CEO 엘리 데이비드 로카(Eli David Rokah) 역시 국내 생태계를 비슷한 맥락에서 진단했다. 그는 정부의 지나친 개입은 장기적으로 창업 생태계 기반을 취약하게 만들어 한국 스타트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 도시 고성장 공공 지원 덕분…이젠 대안 모색해야
지난 5월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지역 창업 생태계 육성 청사진을 공개했는데 그 중심에는 지역 창업 도시가 있다. 구체적으로 과학특성화 대학이 있는 도시를 중심으로 2030년까지 세계 100위권 창업 도시 5곳 이상을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중소벤처기업부는 대구·대전·광주·울산의 지방 정부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이는 분명 창업 생태계의 서울 및 수도권 집중화를 해결하기 위한 의미 있는 발걸음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정책에서 민간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남겨두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정부가 판을 직접 짜는 대신에 민간 자본과 활동 집단이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활동하도록 환경과 창업에 친화적인 문화를 조성하는 데 돕는 역할을 자처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아무리 훌륭한 제도를 제안하고 인프라를 구축해 놓아도 낡은 규제와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문화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인재들은 결국 안정된 길을 택할 뿐이다. 정부가 혁신의 마중물 역할에 충실하고 남은 공간을 민간의 창의성으로 채워나갈 때, 지역 창업 생태계는 지속 가능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게 될 것이다.
필자는 전남대 경영대학 교수로 창업생태계와 창업실패를 연구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과 창업생태계 현장을 모두 경험하고 연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창업생태계를 가까이 하면서 창업자들과 유연하고 창의적인 시각을 공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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