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불황 늪에 빠진 건설업 일본에서 배워라 [스페셜리스트 뷰]
- 신축에서 리뉴얼로…일본 건설업의 구조 전환
공공투자·도시재생·리츠…일본 건설업 성장의 버팀목
[강원구 NICE신용평가 평가정책본부 평가기준실 수석연구원] 우리나라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진입한 가운데 저출산고령화도 빠르게 진행되면서, 내수 수요에 기반한 산업에서는 낮은 성장성에 대응하기 위한 돌파구 마련과 산업구조의 변화가 절실해지고 있다. 건설산업은 대표적인 내수 의존 산업에 해당하며 최근에는 민간 주택경기 침체 등으로 부진한 업황이 지속되고 있어, 건설업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더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나라 건설산업의 미래 모습 그리고 건설회사 신용도 전망과 관련해 일본의 사례는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이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보다 앞서 유사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먼저 저성장 및 고령화와 오랜 내수시장 침체를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일본 건설산업은 장기간에 걸친 침체와 구조조정을 겪었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 이후의 모습을 보면 오랜 침체국면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 추세에 적응하면서 돌파구를 찾고 있는 모습이다.
성숙기 진입한 일본 건설업
일본의 건설산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 재건과 이후의 고도 경제성장을 뒷받침한 핵심 산업 중 하나였다.
일본의 건설투자 추이를 보면, 경기 호황에 힘입어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많이 증가하였으나, 과도한 자산 가격 상승과 일본은행의 급격한 금리 인상, 그리고 금융기관의 부실 처리 이연 등에 기인한 ‘버블경제의 붕괴’ 이후 내수가 위축되는 가운데 정부의 공공투자도 감소하면서 큰 폭의 감소세를 보였다.
이후 디플레이션과 장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시행한 대규모 금융완화 및 확장적 재정정책 등에 힘입어 2010년대 초중반 기간 건설투자가 부진하였던 과거 대비 일부 회복세를 나타냈다.
2010년 중반 이후로는 뚜렷한 성장세 없이 시장 규모가 유지되고 있는 등 전형적인 성숙기 산업의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최근까지 연도별 건설투자의 변동은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수요의 안정성은 비교적 양호한 것으로 판단된다.
인구 감소 및 고령화 등 제약 요인에 따라 구조적 성장은 둔화했으나, 일본 건설시장의 실질 기준 시장 규모가 큰 폭의 감소 없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주택경기변동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 등에 따라 연도별 건설투자의 증감이 큰 한국과 비교할 시 일본은 상대적으로 변동성이 낮은 모습이다. 최근 수년간 일본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수요 여건이 지속되고 있는 배경은 다음과 같다.
건축 공종 구성의 변화: 리뉴얼 시장의 성장
우선 건축부문 공사 종류 구성의 구조 변화는 일본 건설시장의 중장기 흐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다. 수요 측면에서 살펴보면 인구 감소 등에 따라 양적 측면의 신규 주택수요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구조적으로 둔화하고 있다. 신설 주택 착공호수는 시계열적으로 뚜렷한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으며, 지방의 인구 감소 지역을 중심으로 상업용 건물의 신규 건설 수요 역시 감소하는 추세이다.
그러나 건축물 개보수 및 리뉴얼 부문은 ▲자산효율성 제고 ▲에너지 절감 ▲내진 보강 ▲용도 전환 등 질적 개선 수요를 기반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11~2024년 기간 동안 건설기업들의 ‘건축물 개보수 및 리뉴얼 사업’의 수주액은 연평균 3.8% 수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건축 시장이 신규 공급 위주에서 기존 자산의 유지·관리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 변화는 일본 건축물의 연령 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일본에서는 1970~1990년대 고도 경제성장기에 대규모 주택과 상업·업무시설 건설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현재 일본 내 건축물은 상당 수준 노후화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낡은 건물들에 대한 개보수 및 리뉴얼 수요의 증가가 신규 건설 수요의 감소를 보완하고 있다.
이는 국내 건설업계가 여전히 주택 중심의 사업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신축 공급 위주의 성장 전략이 점차 제약받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노후화된 건축물을 완전히 철거한 후 재개발하는 방식이 선호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재개발 방식은 사업성이 매우 높은 프로젝트, 즉 대도시 핵심지역의 상업·업무시설 건설 프로젝트나 기존 용적률이 낮은 고가 주거시설의 재건축 프로젝트에만 적용할 수 있다.
반면 기존 건축물의 개보수 및 리뉴얼 방식은 더 광범위하게 도시재생에 활용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도 개보수 및 리뉴얼 건설 수요에 대한 탐색과 연구가 진행될 필요가 있다.
공공부문 투자 확대·민간사업 활성화 위한 제도 정비
일본 정부의 공공투자 확대와 민간사업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 구축은 일본 건설산업의 수요를 형성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이다.
일본 정부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국토강인화정책’을 추진하며 ▲노후 인프라 교체 ▲방재 인프라 확충 ▲재해 대응 시설 건설 등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 기조 하에서 공공·민간 공사가 안정적으로 발주되고 있으며, 이는 건설업 실적의 변동성을 완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일본 정부는 도시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장기 비전을 제시하는 한편, 각종 규제 완화와 제도 정비를 통해 민간개발사업의 활성화를 정책적으로 뒷받침했다.
2002년 제정된 ‘도시재생특별조치법’과 2014년 개정을 통해 도입된 ‘입지적정화계획’ 등은 대도시에서는 핵심 거점의 고도화를, 그리고 지방에서는 도시 구조의 효율적 재편을 유도하는 제도적 기반으로 작용했다. 즉, 고령화와 인구 감소라는 구조적 변화에 대응해 산업과 인재의 도심 집적을 촉진하고, 이를 통해 도시 구조를 재편함으로써 대도시 중심의 대규모 복합 재개발이 가능하게 했다.
특히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바탕으로 핵심지역을 중심으로 한 도심 재개발 사업(업무시설을 포함한 대규모 복합 시설 개발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이는 상당 수준의 건설투자를 유발하는 요인이다.
도쿄에서는 국제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50여개 이상의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추진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오사카와 나고야 등 주요 대도시에서도 도쿄 대비 규모는 작지만, 복합 시설 중심의 재개발사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초대형 복합개발 프로젝트는 대형 업무시설 공급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으며, 재개발은 노후 도심을 재생하는 동시에 신규 대형 오피스를 공급하는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추진되는 대형 오피스 개발 프로젝트들은 ▲교통 인프라와 호텔 ▲상업시설 ▲문화시설 등을 결합한 복합개발 형태로 추진되는 사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도심 핵심 업무시설의 개발 흐름 역시 이러한 복합개발 추세와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도쿄 23개 핵심 구의 대형 오피스(연면적 1만㎡ 이상) 공급 추이를 살펴보면, 업무시설 공급이 장기간에 걸쳐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2005~2024년 기간 동안 연평균 공급량은 약 99만㎡ 수준이었으며, 2025~2029년에도 연평균 약 92만㎡의 공급이 예상되어 상당 규모의 공급이 지속될 예정이다.
특히 도쿄 5대 핵심 구에서 공급되는 대형 오피스 면적은 전체 도쿄 지역 공급의 약 85% 내외를 차지하고 있으며, 연면적 10만㎡ 이상의 초대형 업무용 건물 공급 비중이 확대되면서 오피스의 대형화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 향후로도 기업의 오피스 수요는 입지와 시설 경쟁력이 우수한 빌딩 중심으로 집중될 가능성이 높으며, 이에 따라 노후 빌딩의 재개발 및 리모델링 수요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부동산 개발 자금순환 구조: 세계 2위 일본 리츠 시장
마지막으로 리츠로 대표되는 자본시장 인프라가 장기 개발 프로젝트를 위한 기반이 되고 있다. 일본 리츠는 2000년 11월 투자신탁법 개정을 통해 도입되었으며, 2001년 9월 일본의 디벨로퍼가 스폰서로 참여한 최초의 리츠 2개가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장이 형성됐다.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2008~2011년 일시적인 조정기를 겪기도 했으나 시장 규모는 꾸준히 확대됐다. 2026년 3월 말 기준 일본에는 총 58개의 J-REIT가 상장되어 있으며, 시가총액은 16조919억엔(약 155조4638억원), 운용자산규모(취득가액 기준)는 24조4730억엔(236조4336억5300만원)에 달한다.
일본 리츠 시장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규모 수준이며, 우리나라 상장 리츠 시가총액 9조7778억원(2026년 3월 말 기준, 약 1조275억엔)과 비교할 때 상당히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일본 리츠는 직접적인 개발 참여는 제한적인 대신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기반으로 한 자산운용에 특화되어 있으며, 완공된 ▲오피스 ▲주거 ▲리테일 등 부동산 자산의 주요 매입 주체로 기능하면서 디벨로퍼에게 자산매각을 통한 자금회수 경로를 제공한다. 즉 디벨로퍼의 자금회수 구조를 다변화하고 개발 자금의 회전율을 높임으로써 신규 개발을 촉진하는 요인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구조는 다수의 중소 시행사가 높은 레버리지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개발 방식과 달리,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 개발사업을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세제지원 확대 ▲자산 및 상품의 다변화 ▲공모시장 활성화 등 리츠 시장의 성장 방안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도 사업포트폴리오 재편·자금조달 구조 개선 필요
일본 건설업계 역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구조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 장기 시계열 추이를 보면 주택과 비주택을 막론하고 신축건물의 착공 면적은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어 신규 시장의 성장 여력은 제한되는 모습이다.
또한 고령화로 인한 건설 전문인력 부족이 심화하면서 인건비 상승 등 생산성 저하 문제도 대두되고 있다. 최근 건자재 가격 상승 등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기업도산도 다소 증가하고 있어 기업 규모별 양극화 역시 심화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도 일본 건설업계의 발전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일정 수준 참고할 만한 시사점도 적지 않다. 일본 건설업계는 우리보다 먼저 인구 고령화와 저성장이라는 구조적 변화를 경험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민관협력 기반의 대응과 사업 영역 확장 등이 결합하면서 건설투자 규모와 기업 실적 측면에서 예상보다 양호한 수준을 유지해 왔다.
국내 건설업계 역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화 ▲지방을 중심으로 한 미분양 증가 ▲미래 성장동력 부족 등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 있으나, 이러한 위기를 계기로 사업 포트폴리오의 재편과 자금조달 구조의 개선 등을 추진한다면 중장기적인 성장 기회를 다시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NICE신용평가 평가정책본부에서 평가기준의 수립 및 관리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2011년 NICE신용평가에 입사하여 기업평가본부와 투자평가본부를 거치면서 전자·디스플레이·전선·화학섬유·유통 등에 대한 산업분석과 부동산PF사업성평가, 인수금융 상환가능성평가 등을 비롯한 다양한 실무경험을 쌓아왔다.
◇실질 건설투자 증감율(단위:%)
----------------------------------------------------------------------------------------------
FY16 FY17 FY18 FY19 FY20 FY21 FY22 FY23 FY24 FY25
----------------------------------------------------------------------------------------------
한국 10.3 7.6 -4.2 -1.3 1.7 -2.0 -3.5 -0.5 -3.3 -9.8
일본 3.4 2.4 -2.4 -1.5 0.8 -1.0 -2.0 2.6 -1.6 0.6
------------------------------------------------------------------------------------------------
자료: NICE신용평가
◇일본 건축투자 부문별 비중 추이(단위:%)
----------------------------------------------------------------------------------------------
FY16 FY17 FY18 FY19 FY20 FY21 FY22 FY23 FY24 FY25
----------------------------------------------------------------------------------------------
주택 45.0 43.0 42.6 41.7 41.0 40.4 40.1 35.7 35.1 34.1
비주택 35.8 38.4 38.0 38.7 32.6 31.9 32.4 32.1 32.4 34.0
건축보수 19.2 18.6 19.3 19.6 26.5 27.7 27.4 32.2 32.5 31.9
------------------------------------------------------------------------------------------------
자료: NICE신용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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