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주다움은 살리고 부담은 줄이고…소비자 조사 끝에 찾은 숫자
주류 소비 10분기 연속 감소…순한 술이 생존 전략 되다
[이코노미스트 이지완 기자] 서민들의 술 소주가 순해지고 있다. 기업들이 갈수록 줄어드는 주류 소비량과 저도주 선호 기조에 본격적으로 대응하면서다. 올해 들어 16도 소주의 벽이 완전히 허물어진 모양새다.
기업들은 주력 제품의 알코올 도수를 15.7도로 맞춘 ‘순한맛 소주’를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알코올 도수를 낮추는 이유에 대해 “소비자 선호도를 반영한 결과”라고 입을 모은다.
무너진 16도의 벽
하이트진로는 6월 중순부터 참이슬 후레쉬의 알코올 도수를 기존 16도에서 15.7도로 낮춰 판매한다. 참이슬 후레쉬는 지난 2006년 19.8도로 출시된 제품이다. 하이트진로는 짧게는 1년, 길게는 5년 주기로 주질 리뉴얼을 진행해 왔다. 참이슬 후레쉬가 15도대로 진입한 것은 출시 이후 약 20년 만이다.
지난 2월에는 하이트진로의 또 다른 인기 소주인 진로이즈백도 15.7도로 리뉴얼됐다. 2019년 16.5도로 출발한 진로이즈백 역시 약 7년 만에 15도대 소주가 됐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주류의 저도화 트렌드가 이어지고 있다”며 “현재 소비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수준의 알코올 도수를 찾기 위해 지속적으로 연구를 진행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참이슬만의 소주다움과 깨끗한 맛을 유지하면서도 부담은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소비자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가장 선호도가 높은 주질을 선택했다”고 덧붙였다.
롯데칠성음료도 지난 1월 제로 슈거 소주 새로의 알코올 도수를 16도에서 15.7도로 낮췄다. 롯데칠성음료 역시 소비자 선호 변화가 리뉴얼의 배경이라고 설명한다.
롯데칠성음료 관계자는 “지속적으로 소주 도수와 맛에 대한 소비자 반응을 분석해 왔다”며 “부드러운 소주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면서 알코올 도수를 조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최근 15.7도가 사실상 소주 시장의 새로운 기준점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단순히 도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이 소주 특유의 맛은 유지하면서도 부담은 덜 느끼는 지점을 찾은 결과라는 설명이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16도 아래로 내려가면 소주 특유의 맛이 약해졌다고 느끼는 소비자들이 있고, 반대로 도수가 높으면 부담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며 “여러 차례 소비자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15도 후반대가 가장 균형 잡힌 구간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가 리뉴얼된 새로와 진로이즈백을 직접 시음해 본 결과 체감 변화는 크지 않았다. 기존 제품보다 목 넘김이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일반 소비자가 쉽게 구분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소주 특유의 맛은 유지하면서 부담감만 소폭 낮추는 방향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보였다.
일각에서는 기업들이 수익성 확보를 위해 의도적으로 알코올 도수를 낮추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알코올의 핵심 원료인 주정 사용량이 줄어들면 생산 단가를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업계는 원가 절감 효과는 미미하다고 설명한다.
한국주류산업협회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저도주를 선호하기 때문에 기업들도 이에 맞춰 제품을 바꾸고 있다”며 “도수를 0.2~0.3도 낮춘다고 해서 원가 절감 효과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주정 사용량은 줄어들 수 있지만 맛과 향을 유지하기 위한 추가 공정과 원료가 필요하다”며 “0.2도 정도 도수를 낮출 경우 절감되는 원가는 1원도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부어라 마셔라’ 사라졌다
기업들이 알코올 도수 15도대의 순한맛 소주를 적극적으로 선보이는 것은 주류 소비량이 예년 같지 않아서다. 코로나19 이후 주류 소비 문화가 급변하면서 ‘부어라 마셔라’하는 분위기가 사라졌다. 여기에 헬시플레저와 같은 건강 트렌드가 급부상하면서 과도한 주류 소비를 지양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직장인 홍모씨(39)는 “코로나 팬데믹 전까지는 회식도 많았고 새벽까지 영업을 하는 식당도 많았다”며 “요즘에는 회식 자리에서 술을 권하는 분위기가 아니고 늦게까지 영업을 하는 식당도 많지 않다. 건강상의 이유로 술을 먹지 않는 직원들도 많아 점심 회식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모씨(28·여)는 “학교 인근 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항상 손님이 많지 않다”며 “선배들은 새벽 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놀았다고 하는데 요즘은 그런 분위기가 아닌 것 같다. 술을 마시러 오는 손님들을 보면 소맥(소주+맥주)보다 하이볼 같은 독하지 않은 술을 많이 찾는다”고 설명했다.
주류 소비가 줄고 있다는 것은 관련 통계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 1분기(1~3월) 월평균 주류 실질 소비지출은 전년 동기 대비 9% 줄어든 1만3000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9년 분기 통계 재집계를 시작한 이래 가장 큰 폭의 하락세다. 관련 지출의 경우는 지난 2023년 4분기부터 10분기 연속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주류 소비 감소 분위기는 관련 업종 점포의 운영 추이를 통해서도 확인 가능하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1분기 호프 및 간이주점의 점포수는 1만3924개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6.8% 감소한 것이다.
국내 주류기업의 한 관계자는 “최근 주류 소비 흐름은 많이 마시고 취하는 것이 아니라 편안하게 적당히 마시며 즐기는 것”이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소비자들이 주류를 외면하지 않게 더욱 부드럽고 깔끔하면서 소주 특유의 맛을 잃지 않기 위한 시도들을 계속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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