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제
‘힘의 시대의 귀환’…韓, ‘자강’으로 신세계 설계하라
- 16일 이데일리 전략포럼 개최
‘골목대장’ 힘의 논리 정상화…생존 위해 스스로 강해져야
지정학·공급망·AI 3대 복합위기
위기 속 기회…글로벌 위상에 걸맞은 인프라 구축해야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글로벌 복합위기 속에서 대한민국이 생존하고 도약하기 위해서는 외부 도움에 의존하지 않는 ‘자강(自强)’과 역량에 기반한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
곽재선 KG·이데일리 회장은 16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힘의 시대, 문명의 재편 : 누가 신세계를 설계하는가’를 주제로 열린 제17회 이데일리 전략포럼 개회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곽재선 회장은 현재의 국제 정세를 어릴 적 골목대장의 세계에 비유하며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대가 돌아왔다고 했다. 그는 “최근 국제 정세를 지켜보고 기업 경영에 직접 영향을 받으면서 어릴 적 골목대장을 떠올렸다”며 “조그만 아이들의 세계에서도 힘이 세계의 질서였듯, 세상이 바뀌고 시간이 흘렀지만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힘의 논리”라고 진단했다.
곽 회장은 힘이 지배하는 시대가 결코 특별하거나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또 “힘의 시대가 곧 위기는 아니다”라며 “힘을 내세운 세계질서를 지극히 당연하고 정상적인 상황으로 받아들여야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세계 지도자가 바뀐다고 해서 평등한 시대가 오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더 날을 세운 리더가 나타날 수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곽재선 회장은 “우리는 당면한 시간을 힘의 시대보다 ‘자강의 시대’라고 부르고 싶다”며 “외부 도움을 바라지 않고 스스로 강해져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라고 덧붙였다.
정부 역시 이 같은 국제 질서의 거대한 변화를 엄중하게 인식하고 국익 극대화를 위한 총력 대응을 다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포럼에 보낸 축사를 통해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를 펼쳐 글로벌 복합위기를 국익 극대화의 기회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번 축사는 이재명 대통령의 유럽 순방으로 인해 이규연 청와대 홍보소통수석이 대독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금 세계는 거대한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다”며 “지정학적 위기, 공급망 재편과 함께 기술 패권 경쟁이 동시에 몰려오는 복합위기 가운데 인공지능(AI) 혁명은 경쟁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고 짚었다. 이어 “새롭게 재편되는 국제질서에 대한 우리의 대응 여하에 따라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라며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변화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모든 역량을 집중하여 총력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대국의 취약성 확대…“중견국 시대 온다”
포럼의 주요 연사로 나선 외교·안보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 존 햄리(John Hamre)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전 회장 역시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대에 한국이 역량에 기반한 ‘전략적 자율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존 햄리 전 회장은 ‘제2차 대분기: 패권의 격돌과 글로벌 질서의 재편’을 주제로 강연하며 곽재선 회장이 언급한 ‘자강’의 필요성에 동의했다. 햄리 전 회장은 현재의 세계 질서를 다극체제로 진단하며, 구약성경 다니엘서에 등장하는 거대한 조각상의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머리는 금, 몸과 팔은 동, 다리는 철로 되어 있지만 가장 중요한 발이 토기(점토)로 되어 있어 기반이 매우 취약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현재 지구상의 모든 강대국이 이처럼 ‘점토로 된 발’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약화하고 중국은 부동산 버블 붕괴와 내수 약화, 인구 감소라는 인구구조적 한계, 부패 가능성에 발목을 잡혔다고 평가했다. 미국은 강력한 국가이지만 내부적으로 혼란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대통령이 존재하며 국가적 신념이 상실됐다고 평가했다. 또 유럽연합(EU)은 관료주의적 규제로 혁신을 하기에 취약하고 인도는 오염과 부패에 발목이 잡혀 이를 극복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저출생·주거문제…한국에 남겨진 과제
햄리 전 회장은 “이처럼 모든 강대국이 취약한 상태지만, 이들이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기 위한 의지나 에너지를 쓰려고 하지 않는다”며 앞으로의 시대가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중견·중진국들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들 중견국은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는 니즈와 역량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질서나 관료주의에 발목이 묶여 있지 않아 새로운 협력 관계를 창출할 수 있는 주체라는 분석이다.
그는 “한국이 이러한 새로운 질서에서 수혜를 보기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있다”면서도 해결해야 할 치명적인 과제도 존재한다고 했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 모든 사람이 서울에 살기를 원하면서 발생하는 높은 주거 비용 문제 역시 인구학적 위기를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인프라 구축도 시급한 과제다. 햄리 전 회장은 “한국은 전 세계 9~10위권의 경제 대국임에도 대외적으로 그만큼의 위상을 느끼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며 “외교부의 규모를 보면 네덜란드보다 2.5배 큰 경제 규모를 가졌음에도 외교 인프라의 크기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인접국 및 전 세계와 상호작용하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외교적·제도적 인프라를 구축해야만, 새롭게 재편되는 문명의 시대에 신세계를 설계하는 주역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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