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이슈
‘삼전닉스’ 성과급발 인플레 도화선, 중기·가계로 부담 전가되나
- 신현송 한은 총재 “임금·수요가 물가 끌어올리는 힘 더 강해져…2차 파급 경계”
IT 대기업 성과급 수십조원 대기…부동산·소비 자극 우려
중기, 고물가·고금리 직격탄…5월 말 대출 연체율 2020년 이후 최고치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반도체 슈퍼 사이클에 따른 대규모 성과급 지급이 우리나라 전체 임금 수준과 물가를 끌어올리는 ‘성과급발 인플레이션’ 사태를 몰고 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수십조원의 성과급이 일부 반도체 기업을 중심으로 풀리면서 물가를 끌어올리고, 실질 임금 인상 개선을 위해 다른 산업에서 임금을 올리면 또 다시 물가가 오르는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17일 한은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설명회에서 “소비자물가가 상당 기간 높은 수준의 상승세를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너지 공급망이 중동 전쟁 이전 수준으로 정상화하고 국제유가가 안정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은은 ‘물가안정 목표 운영상황 점검’ 보고서를 통해 올해 하반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3% 내외로 전망했다. 근원물가는 2%대 중후반 상승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신 총재는 “누적된 고유가 영향이 에너지 뿐 아니라 시차를 두고 여타 다른 품목으로 파급될 수 있다”고 했다. 과거 2022년 2월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에도 국제유가는 4개월만에 배럴당 118달러까지 치솟았다가 하락세로 전환했지만 유가 충격은 약 1년 6개월의 시차를 두고 다른 상품으로 확산했다. 국제유가·공업제품·전기·가스·수도·외식제외 서비스 가격 상승률 간 상관계수는 약 14~18개월 시차를 두고 정점을 찍었다. 신 총재는 이런 상황을 고려해 “최근 고환율 역시 유가 상승세를 증폭시키는 이중 효과를 내고 있다”며 “물가의 2차 파급효과와 기대인플레이션 자극을 경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목할 점은 고유가 이외에 반도체 기업의 대규모 성과급이 물가 상승을 자극할 수 있는 새로운 요인으로 지목됐다는 점이다. 신 총재는 “5월 통화정책방향 회의 당시보다 임금과 수요가 물가를 끌어올리는 힘이 더 강하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대기업 성과급, 전 산업 임금 상방 압력으로 작용
한은에 따르면 업계 상위 10% 수준의 성과급을 지급하는 사업체 비중이 커지면 5개월 뒤 소비자물가가 0.05%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분기 명목임금 상승률 3.4% 가운데 정보통신(IT) 부문 성과급 기여도가 1.3%포인트로 나타났다. SK하이닉스의 ‘영업익 N% 성과급’으로 촉발된 노사 합의가 삼성전자로 이어졌는데 두 기업의 성과급 지급이 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는 불씨로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연간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으로 지급키로 한 SK하이닉스는 올해 영업이익이 260조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0%를 적용하면 성과급 재원은 26조원, 여기에 소득세를 제외하면 실수령 총액은 15조6000억원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 역시 반도체 부문 특별경영성과급으로 연간 영업이익의 10.5%를 지급하기로 했다. 올해 삼성전자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는 약 360조원 수준이다. 소득세를 제외하고 임직원이 받게 될 실수령액은 약 23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성과급이 자사주로 지급되고 그 중 30% 가량만 매각이 가능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8조원이 시장에 풀릴 수 있다. 두 기업에서 풀리는 성과급만 34조원에 이른다는 계산이다.
여기에 회사 복지 중 하나인 저금리 사내 주택대출이 최대 50조원에 달할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는 단발성 자금이 80조원에 이른다. 이는 소비자물가는 물론 부동산 시장도 함께 달아오르게 만들 수 있는 규모다.
한은은 보고서를 통해 “최근 일부 IT 부문 대기업의 큰 성과급 지급은 전반적인 임금 상승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 경우 물가 상방 압력도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보통 명절 상여금이나 일회성 성과급이 조금 늘어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빚을 갚거나 저축을 늘린다”며 “그런데 수억원의 성과급이 한꺼번에 풀리면 대출상환이나 저축을 뛰어넘어 부동산 매수 등 대규모 소비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IT기업에 자극받은 다른 산업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 해당 기업은 제품 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고 이는 소비 확대로 이어져 인플레이션으로 연결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실제 현대차노조는 당기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요구하고 있다. 기아·HD현대중공업·LG유플러스는 영업이익의 30%,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영업이익의 20%를 성과급으로 요구하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 기로 속 중소기업 연체율 역대 최고
문제는 상대적으로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비반도체, 특히 중소기업이 인플레이션 직격탄을 맞게 된다는 점이다. 물가가 오르면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올리는 방식으로 대응하는데 이는 시중은행의 금리를 끌어올리는 지렛대 역할을 한다. 대출을 안고 있는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 변동금리로 자금을 빌린 가계에서는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지게 된다. 물가만큼 임금이 오르지 않은 산업군 종사자들은 실질 임금이 깎이면서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다.
당장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시그널에 시중은행들이 금리 인상으로 반응하면서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도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5월 말 기준 원화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연체) 단순 평균값은 0.51%로 집계됐다. 지난 4월 말(0.46%)보다 0.05%포인트 상승했고, 지난해 말(0.37%)보다는 0.14%포인트 올랐다. 특히 중소기업 연체율이 지난달 말 평균 0.73%에 달했다. 이들 은행의 합산 수치를 확인할 수 있는 2020년 1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중소기업 연체율은 작년 말 0.50%였는데, 불과 5개월만에 0.23%포인트 높아진 셈이다. 같은 기간 대기업 연체율도 0.03%에서 0.09%로 0.06%포인트 높아지는 데 그쳤다.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기 충격이 중소기업으로 쏠렸다는 방증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의 경우 이자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변동금리 대출을 선호한다”며 “금리 인상시 바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신현송 한은 총재도 지난 12일 한은 창립 기념사에서 “금리 인상은 기업과 가계의 부채 상환 부담을 높일 수밖에 없다”고 언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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