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럭셔리 브랜드를 만든 특별한 고객들 [이윤정의 언베일]
- 설립 초기부터 피드백 통해 브랜드 성장 이끌어
에르메스·제냐·로로피아나 명성 만든 ‘후원자’
[이윤정 작가·노블레스 전 편집장] 럭셔리 브랜드에 “고객이 누구냐”라고 묻는다면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력과 취향을 갖춘 이 시대의 오피니언 리더”라는 답이 돌아올 것이다.
시대에 따라 약간의 변화는 있었지만 이들이 럭셔리 브랜드의 고객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위와 같은 정의는 ‘판매 대상’으로서의 고객을 뜻한다.
몇몇 브랜드에는 설립 초기부터 역사를 함께 해온 특별한 고객이 존재한다. 브랜드에 영감을 주고 공감하며 브랜드가 성장하는 데 커다란 공을 세운 이들이다.
에르메스의 첫 번째 고객은 말
필자가 ‘에르메스’(Hermes)를 취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자주 들었던 표현 중 하나는 “우리의 첫 번째 고객은 말(馬)입니다”라는 것이었다. 궁금증은 에르메스의 역사를 살피면서 해소됐다.
1837년 티에리 에르메스에 의해 설립된 브랜드는 마구 공방에서 출발했다. 당시 에르메스의 고객은 ▲왕족과 귀족 등 마차 소유주 ▲기병 장교 ▲승마 애호가 등이었다.
실상 에르메스가 만든 제품의 소비자는 말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말이 에르메스의 기술력을 키운 주인공일까.
말은 매우 예민한 동물이다. 가죽이 조금만 거칠어도 상처가 나고 얹힌 무게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움직임이 저하되곤 한다.
▲안장 ▲굴레 ▲마차용 하네스 등 몸에 닿는 모든 것이 불편하면 경기력이 저하될 정도다. 에르메스는 처음부터 최고급 가죽을 선별하고 정밀한 재단을 통해 완벽하게 손으로 봉제된 편안한 제품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원칙은 다양한 제품에 반영됐다. 버킨이나 켈리 백에 적용된 새들 스티치(saddle stitch)도 원래는 승마용 장비 제작 기술에서 유래한 것이다.
역사를 알고 나면 에르메스의 로고에 담긴 말과 마차의 의미가 저절로 와 닿는다. 에르메스는 말과 관련된 용품을 제작하는 일 외에도 지속적으로 ‘소 에르메스’(Saut Hermes)라는 국제 승마 대회를 후원 중이다.
몇 년 전 파리 그랑 팔레에서 열린 소 에르메스 경기를 관람했다. 당시 비단결 같은 갈기를 지닌 아름다운 말의 자태뿐 아니라 경기 후 애프터 파티에 모인 VIP(귀빈)들이 들고 온 수많은 버킨과 켈리 백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웨이팅 리스트가 몇 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전 세계에서 다채로운 버킨이 한자리에 모인 모습이 선명히 떠오른다.
남성복의 대명사인 ‘제냐’(Zegna)의 초창기 고객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다. 제냐의 최초 고객은 ‘재단사’(tailor)였다.
제냐는 1910년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역의 트리베로에서 에르메네 질도 제냐가 작은 울 공장을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창립자의 목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원단을 만드는 일’이었다.
실제로 제냐는 초창기 수십 년 동안 고급 원단 업체로 유명세를 떨쳤다. 일반 소비자도 원단을 까다롭게 고르지만 재단사의 세심함은 그 이상이다. 그들은 ▲원사의 품질 ▲직조 밀도 ▲원단 탄성 ▲재단의 용이성 ▲내구성 등을 꼼꼼하게 살핀다.
▲영국 ▲이탈리아 ▲미국 등의 고급 재단사(테일러)는 고객에게 “제냐의 원단으로 슈트를 만들었다”는 점을 판매 전략으로 삼았다. 국내의 유명 테일러도 위 멘트를 자주 사용했다. 그만큼 남성의 슈트에서 원단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제냐는 일관된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필리에라’(Filiera)라는 시스템을 갖췄다. ‘필리에라’는 원자재 조달부터 직물 생산, 완제품 디자인 및 유통과 판매에 이르기까지 전 밸류 체인을 수직 통합하는 구조다.
1968년부터 직접 남성복을 만들기 시작한 제냐는 그간 최고경영자(CEO)와 금융계 부호 등의 슈트로 명성을 떨쳤다.
영화 ‘거짓 혹은 진실’(Nothing but the Truth)에서 기자 레이첼 암스트롱은 정치 거물인 알버트 번사이드에게 “Nice Suit.”(정장이 멋지네요)라고 말한다. 알버트는 “That’s not a suit. It’s a Zegna.”(이건 그냥 정장이 아니라 제냐입니다)라고 답한다.
테일러를 위한 최고의 원단을 만들어온 제냐의 정체성을 잘 드러낸 대사다. 현재 제냐는 아티스틱 디렉터인 알레산드로 사토리의 지휘 아래 럭셔리 레저 웨어로도 영역을 확장하는 중이다.
원단에 진심인 로로피아나
원단을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브랜드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로로피아나’(Loro Piana)다.
로로피아나 가문은 이탈리아 북부에서 양모와 직물을 거래하는 상인이었다. 1924년 피에트로 로로 피아나가 현재의 회사를 설립한 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과 미국의 오트 쿠튀르 하우스에 최고급 울과 캐시미어 원단을 공급하며 명성을 쌓았다.
로로피아나는 40년 이상 몽골의 목축 공동체와 협력해 최고급 캐시미어를 확보했다. 로로피아나의 주요 소재로 유명한 ‘비큐나’(vicuna)는 캐시미어보다 훨씬 가늘고 부드러우며 생산량이 극히 적어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천연 섬유 중 하나다.
비큐나는 안데스 산맥에 사는 야생동물로 흔히 ‘신의 섬유’라고 불린다. 로로피아나는 1994년 페루 정부 및 안데스 지역 공동협의체와 협약을 맺고 살아있는 비큐나에서 채취한 섬유만을 사용하는 보호 프로그램을 시작할 정도로 비큐나에 진심이다.
탁월한 원단을 바탕으로 로로피아나가 의류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에 들어와서였다. 로로피아나가 ‘조용한 럭셔리’의 대표 주자로 부상한 계기도 원단의 우수함 때문이다.
수많은 제품을 경험한 상류층에게 결국 중요한 요소는 ‘편안한 착용감’이다. 로고나 디자인이 아니라 입었을 때의 촉감이 급을 나누는 것이다.
필자는 로로피아나를 잘 몰랐던 시기에 우연히 스카프를 구입한 적이 있다. 피부에 착 감기는 느낌이 좋아서 애용하는 제품이다. 부자들에게는 일상의 아이템이 될 수밖에 없는 요소다.
에르메스와 제냐 그리고 로로피아나의 고객은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브랜드의 성장에 기여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예민하고 직업 정신이 투철한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해온 과정이 오롯이 제품에 반영돼 현재의 인기를 만들었으니 첫 번째 고객은 후원자라 해도 무방하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별명은 타조, 남편은 바게트?... ‘담다미담’, 치명적인 웃수저 [김지혜의 ★튜브]](https://isp.edailystatic.com/data/isp/image/2026/06/24/isp20260624000274.400.0.png)
![생닭 버무린 손으로 키보드를?... 조회수 1715만 터진 뇌절 요리사 [김지혜의 ★튜브]](https://isp.edailystatic.com/data/isp/image/2026/05/25/isp20260525000055.400.0.png)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앞날 막막" "장 어디서" 한숨 가득한 홈플러스[르포]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일간스포츠
이데일리
이데일리
“N번방과 비교 안 돼”…‘김수현 사생활 협박’ 김세의, 공소장 적힌 발언 수위 보니 [왓IS]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1000조·GPU 300만장…SK, 'AI판 경부고속도로' 만든다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김병주 ‘개인보증’ 수용…홈플러스 운명, 다시 메리츠 손에[only 이데일리]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티움바이오 토스포서팁, TGF-β ‘임상 무덤’에서 살아남을까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