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세계 두 번째로 비싼 우윳값에도…낙농가는 “팔수록 적자” [우윳값의 비밀]②
- 높은 사료비 비중·소규모 사육 환경에 생산비 ↑
최근 5년 낙농가 13.7% 폐업…“짤수록 빚더미”
[이코노미스트 강예슬 기자] 한국 우유 가격이 세계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으나 정작 우유의 원재료인 원유를 생산하는 낙농가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낙농업계는 소비자 가격 상승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제조·유통 단계의 과도한 마진 구조를 지목하며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상황이다.
국제 물가 비교 사이트 글로벌 프로덕트 프라이스닷컴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한국의 저지방 우유(지방 함량 1.5∼2.5%) 가격은 리터(ℓ)당 3.42달러로 집계됐다. 조사 대상 78개국 가운데 4.0달러로 1위인 가나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미국은 3.31달러로 3위, 중국은 2.06달러로 22위에 올랐다.
78개국 평균은 1.78달러였다. 한국 우유의 가격은 국제 평균 수준인 일본(1.79달러)의 두 배에 가깝다. 물가가 높다고 알려진 홍콩(3.17달러)보다도 비싸다. ‘믈레코비타’ 등 멸균 우유 브랜드로 익숙한 폴란드(0.87달러)와 비교하면 약 3.9배다.
작년 우유 생산비 원유 가격 초과…“역마진 구조 진입”
지난해 1인당 연간 흰 우유 소비량이 22.9㎏로 40여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할 만큼 우유 수요는 빠르게 줄어드는 추세다. 우유 소비가 급감하는 상황에서도 가격을 낮출 수 없는 이유는 높은 원유 생산비 구조 때문이다.
국내 낙농가는 젖소 사료의 상당 부분을 해외 수입에 의존한다.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작년 우유 100ℓ를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은 평균 10만1400원으로 나타났다. 사료비는 약 5만6500원으로 전체 생산비의 절반 이상(55.8%)을 차지했다. 국제 곡물 가격이나 환율이 오르면 생산비도 급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어려운 사육 환경도 생산비를 높이는 요인 중 하나다. 대규모로 방목해 소를 키우는 낙농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50두 미만 소규모 낙농가가 전체 농가의 41%에 달한다.
한국의 목장당 일평균 생산량은 0.9톤(t)으로 ▲미국(4.9t) ▲호주(5.5t) ▲일본(1.6t) 등 주요국에 비해 낮다. 생산 규모가 작다 보니 농가가 운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원유 단위당 남기는 마진율을 높여야 한다. 원윳값을 낮추기 어려운 이유다.
낙농진흥회 등에 따르면 지난 2024년 기준 한국의 원유 가격은 ℓ당 1246원으로 나타났다. ▲미국(약 629원) ▲폴란드(약 744원) 등 주요 낙농 국가보다 1.7∼2배가량 높다. 일본(약 1130원)과 비교해도 한국이 더 비싸다.
문제는 높은 원유 가격이 농가의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낙농육우협회(이하 협회)는 지난 6월 16일 “지난해 낙농가의 평균 우유 생산비가 ℓ당 1252원을 기록했다”며 “음용유용 원유 가격인 1249원을 초과해 사실상 ‘역마진 구조’에 진입했다”고 밝혔다.
협회 관계자는 “지난 2021년부터 2025년까지 농가 평균 생산비는 ℓ당 175원 올랐으나 원유 가격 인상 폭은 88원(51.5%)에 그쳤다”면서 “나머지 상승분인 83원은 농가가 빚으로 감당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협회에 따르면 최근 5년(2021~2025년) 동안 전체 낙농가의 13.7% 수준인 834호가 문을 닫은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기간 호당 평균 부채는 5억원을 넘어섰고, 젖소 두당 차입자본액과 차입금 이자는 각각 45.6%, 68.6% 증가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유업계의 요구에 따라 생산량을 줄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낙농업은 시설 투자 등 고정비가 생산비의 약 30%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물량을 줄이면 ℓ당 고정비가 상승해 실질 생산비가 늘어나고, 농가의 수익성은 더 악화하게 된다.
韓 유통 마진율 35.1%…日·美의 2·4배 수준
우유 소비가 줄어드는 가운데 생산비도 가파르게 오르며 낙농가의 경영 부담은 커지고 있다. 낙농업계는 소비자 가격 상승 요인의 대부분이 제조·유통 마진인 상황에서 비싼 우윳값의 책임을 낙농가 탓으로 돌리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다.
협회가 지난 2004년부터 2024년까지 20년간 우유 가격 추이 등을 분석한 결과 우유 소비자 가격이 ℓ당 1706원 오르는 동안 원유 가격 상승분은 567원에 그쳤다. 소비자 가격 인상분의 약 70%가 농가가 아닌 제조·유통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분석이다.
한국의 우유 유통 마진율은 35.1%로 조사됐다. 일본(16.8%)의 두 배, 미국(8.8%)의 네 배 수준이다.
협회 관계자는 “소비자가 마시는 우유 가격이 높은 이유는 낙농가가 받는 원유 가격 때문이 아니라 유통 과정에서 과도한 거품이 끼어있기 때문”이라며 “기형적인 유통 마진 구조를 혁신하지 않고서는 소비자 부담 완화도, 도산 위기에 처한 낙농가 구제도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승호 한국낙농육우협회장은 “우유 수급 문제를 소비 감소나 농가 생산량 탓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수입산 의존 확대와 비정상적인 유통 구조부터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협회는 정부에 ▲가공용 원유 20만t 물량을 실질적으로 담보할 예산·대책 마련 ▲경영 위기 낙농가를 위한 정책 자금·상호금융 자금 상환 기한 3년 이상 일괄 연장(이자 감면)과 고령·소규모 농가 대상 현실적인 폐업 보상 대책 마련 ▲비정상적인 유통 마진 실태 조사 및 유업체의 임의적인 물량 감축 행위(갑질)에 대한 엄정 대응 등을 요구했다.
윤성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낙농가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지만 우유 소비량이 계속 감소하는 상황에서 생산자 위주의 정책만으로는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면서 “낙농가에서도 자구책을 마련하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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