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이슈
국민성장펀드, 첨단 전략산업의 마중물이 되려면 [스페셜리스트 뷰]
- 초기 위험 감수하는 '기업가적 국가'의 인내자본 공급 필요
5년 만기 단기성·밸류에이션 거품·'첨단산업 워싱' 극복이 과제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지금 전 세계 산업의 중심추는 인공지능(AI)·반도체·로봇 등 첨단 전략산업 위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이들 분야는 단순히 하나의 신산업 섹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향후 국가 경제와 산업 구조의 판도를 통째로 바꿀 ‘게임 체인저’ (Game Changer)역할을 하리라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주요국들은 저마다 사활을 걸고 모든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하는 모양새다. 미국‧중국‧일본 등은 직접 보조금 지급과 파격적인 재정 지원은 물론 고율의 관세 장벽까지 동원하며 가히 국가적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예컨대 미국은 반도체법(칩스법)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앞세워 총 70조원 규모의 보조금 지급안을 밀어붙이고 있으며 고율 관세 부과도 병행하는 중이다. 중국의 경우 ‘중국제조 2025’ 등을 기치로 반도체 분야에만 무려 562조원에 달하는 거대 펀드 투자를 감행하고 있다. 일본 역시400조원대 초대형 경제대책을 마련하며 맞불을 놓았다. 글로벌 패권국들이 벌이는 이러한 치열한 각축전을 두고 바야흐로 국가 간 ‘투자 전쟁’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첨단 전략산업 육성과 인내자본의 필요성
그럼 민간 기업이나 금융회사의 영역인 ‘투자’에 정부가 적극 개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첨단 전략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대규모 인내자본이 민간 부문을 통해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선 바이오 신약 개발이나 차세대 반도체 원천 기술, 핵심 녹색 기술처럼 인류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첨단 기술은 완성돼 상업화에 이르기까지 보통 10년 이상의 장기간이 소요된다. 단기 수익을 좇아 움직이는 데 익숙한 민간 자본의 속성상 이 기나긴 연구개발(R&D) 마라톤을 끝까지 버텨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첨단산업은 초기에 막대한 설비와 연구 비용이 들지만, 매출이 발생하기까지 유휴 기간이 매우 길다는 특성이 있다. 만약 이러한 장기 프로젝트를 단기 채무나 조급한 자본에 의존해 조달한다면 기술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돈을 갚아야 하는 만기 불일치 딜레마에 빠져 유망한 기업이 부도를 맞이할 수 있다. 반면 인내자본은 주주들의 단기 이익 극대화 압력을 완화해 줌으로써 기업이 외부 충격에 흔들리지 않고 미래 원천 기술 확보에만 전념할 수 있는 든든한 방패가 돼준다.
첨단 기술 투자는 본질적으로 실패 확률이 매우 높은 고위험 자산이자 자금이 오랜 기간 묶여 있어야 하는 저유동성 자산이다. 일반적인 민간 시장의 자본은 이러한 위험 부담과 불확실성 때문에 스스로 진입하기를 꺼리기 마련이다. 민간 부문에 만연한 단기 성과주의도 큰 걸림돌이다. 자본의 만기가 5년 미만 등으로 짧은 경우, 자금을 굴리는 운용사들은 진짜 세상을 바꿀 모험적인 혁신 기술보다는 3~4년 내에 빠르게 상장(IPO)시켜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안전하고 상업화가 임박한 IPO 직전 기업’에만 돈을 밀어 넣게 된다. 결과적으로 국가의 미래를 바꿀 대담한 도전(Moonshot)은 실종되고, 자산시장의 밸류에이션 거품만 키우는 역효과를 낳는다.
마리아나 마추카토(Mariana Mazzucato) 교수는 첨단 전략산업 육성과 이를 지원하기 위한 인내자본 공급에 있어 국가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한다. 전통적인 주류 경제학에서는 정부의 역할을 민간 시장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시장 실패’를 사후에 보완(Market Fixing)하는 소극적인 수준으로 제한한다. 반면 마추카토 교수는 이러한 관점을 넘어 국가가 혁신을 이끄는 대담한 선수가 되는 ‘기업가적 국가’(Entrepreneurial State)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창한다. 공공이 공급하는 인내자본은 단순히 시장의 틈새를 메우는 방어적 역할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기술 혁신의 방향성을 직접 설정하고 민간이 따라올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형성(Market Shaping)하는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일반적인 민간 자본이 리스크와 불확실성 때문에 첨단 전략산업에 대한 투자를 주저하는 상황이라면 정부를 비롯한 공공부문이 위험을 가장 먼저 짊어지는 ‘첫 번째 위험 감수자’(First-risk taker)로 전면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국가가 이처럼 선제적으로 위험을 감수하고 분산(Risk-sharing)해줄 때, 비로소 얼어붙어 있던 민간 자본이 안심하고 자산시장에 진입하여 ‘인내’를 시작할 수 있다는 논리다.
국민성장펀드, 인내자본의 마중물 될 수 있을까
첨단 전략산업 육성에 인내자본이 필수불가결하고 이를 공급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면, 이제 관건은 우리 정부가 추진 중인 ‘국민성장펀드’가 과연 진정한 마중물 역할을 해낼 수 있느냐이다. 국민성장펀드는 AI·반도체·바이오·2차전지 등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할 첨단 전략산업에 5년간 총 150조원의 거대 자금을 공급하는 초대형 정책금융 프로젝트다. 부동산이나 단순 담보 대출에만 쏠려 있던 시중 자금을 혁신 산업으로 유도하겠다는 이른바 ‘생산적 금융’의 대전환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자본시장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민간 자본은 자발적으로 고위험·저유동성 자산에 투자하기를 꺼린다. 국민성장펀드는 이 장벽을 깨기 위해 정부 공공 기금이 위험을 먼저 부담하여 약 20% 수준의 손실을 후순위로 보강하는 장치를 설계했다. 민간과 개인 투자자의 심리적 부담을 낮추어 민간 자본을 시장으로 유인하는 것이다. 아울러 단순 지분 투자에 그치지 않고 인프라 투자·융자와 초저리 대출을 매칭한 종합 지원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전방의 첨단 기술기업부터 후방의 데이터센터·전력 인프라까지 생태계 전반을 동시에 발전시킬 수 있는 구조를 갖춘 점도 뚜렷한 장점이다.
또한 국민성장펀드가 국내 벤처 생태계의 고질적인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보완하고 스케일업을 위한 대규모 성장 자금을 공급할 수 있다는 기대도 크다. 한국은 창업 초기 투자나 상장 이후 투자는 상대적으로 활발한 편이지만, 정작 중간 단계의 스케일업을 위한 대규모 자금 공급은 턱없이 부족했다. 과거의 정책 펀드들도 초기 스타트업의 지분 투자에만 치중해 정작 스케일업 단계에서 자금줄이 마르는 한계를 보였다. 국민성장펀드는 다각화된 자금 공급 경로를 통해 AI 모델 기업이나 딥테크 스타트업,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의 대규모 자금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성장펀드 자금이 실제 시장에서 진짜 인내하는 자본으로 기능하는 것을 가로막는 구조적 한계점도 존재한다. 우선 중요한 약점으로 ‘5년 만기 시계의 단기성’을 들 수 있다. 바이오 신약 개발이나 차세대 반도체 원천 기술 등 미션 지향적 혁신이 완성되려면 보통 10년 이상의 기간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펀드 만기가 5년으로 묶여 있는 제한적인 구조 탓에, 하위 펀드 운용사(GP)들은 모험적인 장기 R&D 기업보다 3~4년 내에 빠르게 상장시켜 털고 나갈 수 있는 안전한 ‘IPO 직전 기업’ 위주로 자금을 집행하게 될 우려가 크다.
정부가 투자 가이드라인을 지정함에 따라 수많은 하위 펀드들이 일제히 특정 섹터로 몰려가는 동조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정작 기술력을 갖춘 유망 혁신기업의 수는 한정된 ‘딜(Deal) 부족’ 상황에서 과도한 정책 유동성이 밀려들면서, 비상장 기업들의 몸값만 비이성적으로 치솟는 밸류에이션 거품과 가격 왜곡이 유발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새로운 혁신 기업을 발굴하지 못한 채 기존 인맥 중심의 투자 관행을 답습하거나, 무늬만 첨단 기술로 둔갑한 기업을 걸러내지 못하는 리스크도 제기된다. 정부가 아무리 화려한 청사진을 제시하더라도 운용역들이 정보의 한계 탓에 익숙한 기업이나 겉포장만 그럴싸한 트렌드만 좇게 된다면, 결과적으로 진짜 기술 혁신은 이끌어내지 못하고 국가의 소중한 자본만 낭비하는 시장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
지방 기업에 자금의 40%를 지원하기로 한 방침이 ‘지역별 나눠먹기식’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는 공공 자본이 겪을 수 있는 전형적인 함정인 '관료주의와 거버넌스의 취약성'과 연결된다. 마추카토 교수나 이바시나 교수 등은 정책금융이나 공공기금이 금융·기술적 전문성 대신 정치적 이해관계나 관료적 판단에 좌우될 때 자본의 효율성이 저하된다고 경고한다. 지방의 우수한 기술기업 풀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계적인 배분 방식만 고집한다면, 결국 기술 논리가 아닌 정치적 타협에 의한 자금배분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민성장펀드와 민간 금융회사 간의 정보 비대칭 문제도 개선될 필요가 있다. 국민성장펀드는 민간과의 공동투자 및 공동대출을 지향하지만, 현장에서 양 주체 간의 정보 비대칭이 엄연히 존재한다. 민간 금융회사가 좋은 딜을 발굴해 공동투자를 요청하더라도 공공 부문에서 이를 검증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 반대로 국민성장펀드가 신디케이션론 참여를 민간 은행에 요구하더라도, 민간이 저금리 대출에 소극적일 가능성도 있다.
앞으로의 과제와 초장기 펀드의 도입
국민성장펀드가 당면한 과제를 극복하고 자생적인 인내자본 생태계를 안착시키는 마중물이 되려면 몇 가지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만기 10년 이상의 초장기 펀드를 도입해 만기 구조를 다변화하는 한편, 민간 운용사들이 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정교한 인센티브 구조를 재설계해야 한다.
먼저 ‘첨단산업 워싱’(Washing) 리스크를 차단해야 한다. 무늬만 첨단 기술기업을 걸러내려면, 민간 전문가 중심의 정교한 평가 체계와 '개방형 기술 검증 및 공동 발굴 플랫폼'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학계·국책 연구기관·기술 액셀러레이터 등과 다각적인 협업 네트워크를 가동하여 기존 사모시장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던 유망 딥테크 스타트업을 선제적으로 발굴하는 체계도 확립해야 한다.
지방 기업에 자금의 40%를 배정하기로 한 방침이 ‘지역별 나눠먹기식 정치적 타협’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거버넌스도 혁신해야 한다. 기계적인 할당제 대신 지방의 우수한 핵심 기술 생태계를 연계하고, 철저한 전문성 중심의 심사를 통과한 기업에 자금이 유입되도록 관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민간 금융기관과의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고 자발적 참여 유인을 높이는 유인 구조의 정교화도 빼놓을 수 없다. 민간이 발굴한 딜의 검증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간 지체 문제를 해결하려면 공공과 민간의 ‘패스트트랙 공동 심사 프로토콜’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아울러 하방 위험을 방어할 수 있는 메자닌 투자를 다양하게 허용해 운용사들이 리스크 관리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투자 구조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올 하반기 만기 10년 이상의 초장기 펀드가 출시된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는 기존 국민성장펀드의 중요한 약점인 ‘시계의 단기성’을 해소하는 바람직한 조치다. 다만 만기가 길어지는 만큼 거시경제 변동성이나 파괴적 기술 변화 등 외부 충격에 노출되는 기간도 늘어나므로, 포트폴리오의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확보하는 일이 새로운 과제로 부상한다. 과거처럼 자산을 사서 방치하는 수동적 방식 대신 파괴적 혁신 섹터에 자금을 유연하게 배분하는 능동적 모니터링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
저유동성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만기와 회수 시점을 촘촘히 분산하는 ‘유동성 사다리’(Liquidity Laddering)를 내부에 구축해야 한다. 10년이라는 초장기 시계가 정권의 임기나 관료들의 순환 보직 주기와 어긋남에 따라 단기 성과주의라는 역설에 빠지지 않도록 독립적인 거버넌스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제들을 달성할 때 비로소 국민성장펀드는 한국 미래 산업의 진짜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별명은 타조, 남편은 바게트?... ‘담다미담’, 치명적인 웃수저 [김지혜의 ★튜브]](https://isp.edailystatic.com/data/isp/image/2026/06/24/isp20260624000274.400.0.png)
![생닭 버무린 손으로 키보드를?... 조회수 1715만 터진 뇌절 요리사 [김지혜의 ★튜브]](https://isp.edailystatic.com/data/isp/image/2026/05/25/isp20260525000055.400.0.png)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美, 이란에 추가 공습 개시…"호르무즈 공격 능력 약화 목표"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팜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박지영 아나운서도 고개 숙였다..."질문 하나, 표현 하나에도 신중을 가할 것"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소비자 응원에만 기대지 않겠다" 돈쭐에 기사회생한 한성의 다짐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M&A 거래 쏠림 현상 가속…"AI딜만 뜨거웠다"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펩트론 충격에 옥석 가리기...지투지바이오 재평가 받는 이유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