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코리아 디스카운트 키운 중복상장…해법은 차등 규율 [대신경제연구소 ESG인사이트]
- 획일적 규제는 기업 구조조정까지 위축시킬 수 있어
주주가치 훼손 가능성에 따른 맞춤형 규율이 해법
[정영호 대신경제연구소 거버넌스컨설팅센터 팀장] 자회사 중복상장을 둘러싼 논의가 자본시장 제도개선의 화두로 떠올랐다. 모회사가 이미 상장된 상태에서 알짜 사업을 떼어 자회사로 따로 상장할 때마다 모회사 주가가 흔들리고 기존 일반주주가 손실을 본다는 문제의식이다. 동일한 사업가치가 모회사와 자회사에 중복 반영되고, 모회사·자회사·지배주주 사이에 이해상충이 구조적으로 내재된다는 점에서 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요인으로 지목돼 왔다.
수치도 이를 뒷받침한다. IBK투자증권의 분석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상장사가 보유한 다른 상장사 지분의 시가총액 비중은 한국이 약 18%로, ▲일본(4.38%) ▲대만(3.18%) ▲미국(0.35%)을 압도한다. 국내 실증연구를 보면 자회사 상장 계획이 공시되는 시점에는 ‘가치 현재화’ 기대로 모회사 주가가 일시적으로 약 1% 오르지만, 상장일 전후로는 음(-)의 누적초과수익률이 나타나고, 상장 후 6개월까지의 보유수익률은 약 -10.8%로 손실이 깊어진다. 모회사의 주가순자산비율(PBR)도 자회사 상장을 계기로 약 1.59에서 1.07로 떨어진다. ▲이익의 더블카운팅▲보유 지분의 유동성·수익환원 제약 ▲지배주주의 사적이익 추구가 겹쳐 모회사의 구조적 저평가를 낳는다.
분할 자체가 문제 아냐…유형별로 결과 달라져
여기서 흔히 빠지는 오해가 ‘모든 분할, 모든 자회사 상장은 나쁘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물적분할 자체는 사업부문별 전문화와 자금조달 효율화를 통해 중장기 기업가치를 끌어올린다. 한 분석에서는 분할 전후 기업가치 지표가 약 1.88에서 2.26으로 20% 넘게 상승했다. 해외의 자회사공개(equity carve-out)와 스핀오프 역시 주가에 긍정적이거나 중립적인 영향을 주고, 국내 인적분할도 마찬가지다. 분리되는 회사의 주식이 기존 주주에게 지분비율대로 배분돼, 주주가 자회사 가치를 누리기 때문이다.
시장이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대상은 ‘분할’이 아니라 ‘모회사 일반주주에게 가치 귀속을 보장하지 않는 자회사 별도 상장’이다. 문제는 구조조정이 모회사 주주에게 비용을 떠넘기는 방식으로 설계·실행된다는 데 있다.
2021년부터 2025년까지 국내에서 신규 상장된 기업 가운데 최대주주 역시 상장사인 경우를 모회사 주가 상대수익률 기준으로 분해해 보면, 전체 평균은 6개월 기준 +1.4%로 오히려 소폭 플러스였다. 그러나 유형별로 구분하면 결과가 달라진다. 물적분할로 자회사를 상장한 모회사는 -21.5%로 크게 하락한 반면, 물적분할이 아닌 방식(기존 법인 인수·현물출자 등)으로 상장한 법인은 +7.1%를 기록했다. 상장시장에서도 코스피 모회사는 -10.7%였지만 코스닥 모회사는 +18.4%로 뚜렷한 플러스였다.
즉, 음(-)의 충격은 ‘물적분할형’과 ‘코스피 모회사’에 집중된다. 핵심 사업이 주주 동의 없이 분리·상장되며 가치 이전 우려가 가장 첨예한 영역이다. 반대로 독립 법인을 인수해 상장하거나 코스닥에 올리는 경우엔 부정적 효과가 잘 관찰되지 않거나 오히려 반대의 결과를 보인다. 모든 자회사 상장을 한 묶음으로 규율하는 것은 데이터가 보여주는 현실과 맞지 않는다.
해외의 답은 ‘사전 금지’가 아니라 ‘사후 규율’
해외 사례도 유사하다. 미국은 모자회사 동시상장을 금지하지 않는 대신 지배주주가 있는 ‘지배기업’(controlled company)에 대해 사후 책임법리와 시장규율로 일반주주를 보호한다. 델라웨어 회사법은 이해상충 거래에 ‘완전한 공정성’(entire fairness) 심사를 적용하되, 독립적 특별위원회 승인과 소수주주 다수동의(MoM) 같은 보호장치를 갖추면 입증책임을 덜어주는 식으로 바람직한 절차를 유도한다. 증권거래소는 지배기업의 지배구조 위험을 공시하게 해 시장이 가격에 반영하도록 하고, 세제는 주주에게 가치가 직접 귀속되는 분리 방식을 우대한다. 진입을 막기보다 잘못된 설계에 사후적으로 무거운 책임을 지우는 모델이다.
정부가 2026년 3월 발표한 신규 중복상장 ‘원칙 금지·예외 허용’ 기조는 그동안 누적된 폐해를 고려하면 이해할 만한 출발점이다. 다만 사전적 진입규제가 지나치게 강하면 정상적인 자금조달과 사업 구조조정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
제도의 무게중심은 ‘일률적 금지’가 아니라 ‘유형별로 정교하게 설계된 거래소 정책과 가이드라인’에 둬야 한다. 첫째, 한국거래소의 상장심사 단계에서 물적분할형처럼 가치 이전 우려가 큰 유형과 독립 법인 인수형처럼 우려가 작은 유형을 차등화해 심사 강도와 보호장치 요건을 달리 적용해야 한다. 둘째, 모회사 주주총회 동의·신주인수권 부여·현물배당 등 일반주주 보호장치는 상장 규모와 이해상충의 크기에 비례해 요구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셋째, 사전 진입규제만으로는 이미 형성된 중복상장 구조나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사안의 이해상충을 통제하기 어려운 만큼 지배주주의 일반주주에 대한 충실의무와 실효적 사후 구제라는 규율을 병행해야 한다. 넷째, 주주에게 가치가 직접 돌아가는 인적분할·스핀오프형 분리에는 세제·절차적 유인을 부여해 시장이 스스로 바람직한 방식을 택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중복상장 문제의 해법은 ‘하느냐 마느냐’의 이분법이 아니다. 모든 자회사 상장을 죄악시하는 순간, 시장은 가치를 높이는 구조조정마저 잃는다. 해법은 유형을 정밀하게 구분하고 위험이 큰 유형에는 강하게, 작은 유형에는 약하게 차등화된 규율을 적용하는 데 있다. 일률적 금지는 단순하지만 부정확하고, 유형별 가이드라인은 복잡하지만 정밀하다. 필요한 것은 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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