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0만 보호법 골목상권 청구서 되나]⑥
노동 분야 전문가 4인 지상(紙上) 대담
사각지대 보호 취지 공감…“근로자 추정제 도입 신중해야”
소상공인은 비용 부담, 기업은 인사·노무 리스크 우려
[이코노미스트 이지완 기자] 이재명 정부의 핵심 노동 정책인 일법 패키지를 두고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그동안 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한 이들을 위함이라는 법 제정 취지에는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다만 근로자 추정제를 두고서는 전문가들의 찬반 의견이 충돌했다.
외면 받는 사람들의 보호 공감
정부가 올해 하반기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되는 일법 패키지는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일하는 사람 기본법)과 ‘근로자 추정제’로 구성된다. 취지는 인공지능(AI) 혁신과 플랫폼 경제 급성장 등 대전환의 시대에 새롭게 발생하는 모든 형태의 일하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를 진행한 노동 분야 전문가들(▲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장 ▲김유경 노무법인 돌꽃 대표 노무사 ▲이준희 광운대 법학부 교수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정부의 노동 정책과 관련법 취지에 공감하는 모습이었다.
김성희 소장은 “사실상 노동자이지만 형식상 자영업자로 포장된 이들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며 “지난 2000년대 중반 이후 산재보험 적용과 확대 그리고 고용보험 적용으로 이어진 약한 보호망에서 진전을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의 경우는 20세기 말부터 이미 유럽 등에서 시행된 법이다. 박지순 교수는 “제3지대 또는 중간지대 노동법이라는 이름으로 사각지대 노무제공자들에 대한 기본적인 계약조건을 정한 법”이라며 “합리적이고 적절한 범위에서 공정한 계약조건을 법제화해 중간지대에 적용할 수 있다면 노무제공자 및 사업주 양측의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해 분쟁을 어느 정도 예방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유경 노무사와 이준희 교수도 노동 사각지대를 축소하려는 문제의식과 취지 자체는 타당하다고 봤다. 김유경 노무사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과 근로자 추정제의 근본적인 입법 취지에는 동의한다”고 말했다.
이준희 교수는 “근로자성에 대한 분쟁에서 무기대등(원고·피고가 대등한 위치에서 주장 및 입증을 할 수 있도록 보호하는 원칙)을 어렵게 하는 원인은 입증자료를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보유한다는 것”이라며 “증명 책임의 전환은 남녀고용평등법 제30조 등 국내법에서 선례가 확인된 정당한 입법수단이다. 유럽연합(EU)과 스페인, 벨기에도 이미 추정을 채택하고 있어 국제적으로도 낯설지 않다”고 설명했다.
정당성과 실효성 구분 명확해야
다만 전문가들은 취지의 정당성과 제도의 실효성이 구별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촘촘한 설계가 없는 노동 정책은 시장에서 효과를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성희 소장은 “지금껏 논의된 일하는 사람 기본법에는 노동시간 및 휴일·휴가 등 노동 조건과 밀접한 사안들은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미국 캘리포니아 AB5법(운전·배달기사의 정규직 분류)과 독일 및 영국의 우버 노동자성 인정 판결 그리고 최근 한국의 배달기사 노동자성 인정 등을 반영해 이를 법제화하는 수준에 못 미친다면 실효성이 낮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결국 일하는 사람 기본법에 근로자 추정제를 함께 도입해야 외국의 사례처럼 다양한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다. 이를 도입한다고 해도 사안마다 소송을 통해 인정받아야 하기 때문에 이 부분까지 반영해 법제화를 이루는 것이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반대로 박지순 교수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만 정교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로자 추정제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과 함께 추진될 수 있는 제도가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박지순 교수는 “근로자 추정제는 보편성이 없는 매우 위험한 제도로, 이를 시행하는 국가들도 여러 문제점으로 사후 보완입법에 나서고 있다”며 “이는 노동 시장 악화와 소상공인 및 중소기업 부담 가중 등으로 이어져 고용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우리 노동 시장에 필요한 제도는 근로자 추정제가 아니라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라고 박지순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근로자 추정제를 도입하면 사실상 일하는 사람 기본법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며 “중간지대에 속하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나 자영업자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고 주장할 것이다. 일하는 사람 기본법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지순 교수는 근로자 추정제 도입 시 소상공인과 기업이 체감하는 파급 효과가 매우 클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엄청난 리스크가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소상공인의 경우는 비용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일반 기업도 인사노무상의 해고 등 리스크 부담이 크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근로자 추정제로 인해 평소 프리랜서로 자유롭게 일하던 사람이 사업소득세를 납부하다가 계약관계 종료 시점에 퇴직금 등 법정수당을 요구하고자 근로자라고 주장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는 게 박지순 교수의 예상이다.
박지순 교수는 “근로자 추정제를 채택한 입법례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EU도 입법지침으로 도입하기는 했으나 회원국의 선택에 맡겼다”며 “그보다 더 우선시돼야 할 정책은 특수형태종사자나 플랫폼종사자에게 적용될 수 있는 일하는 사람 기본법과 같은 중간지대 노동법을 만들어 노동법의 완충지대를 만드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김유경 노무사는 근간을 갖추진 못한 법이 무리하게 추진되면 안 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기본법은 최상위 헌법의 이념을 개별법으로 구체화하는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며 “그런데 ‘노동관계법령 등 다른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 법을 적용한다’(제3조 제2항)고 규정해 개별법을 우선 적용하고 기본법을 보충 적용하도록 명시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또한 다수 조항에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한다’, ‘사업을 실시할 수 있다’는 식의 임의적 조항을 포함시켜 구체적인 후속 입법 로드맵이 전혀 제시되지 못한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가장 큰 문제로는 ‘노동법 적용범위’를 꼽았다. 김유경 노무사는 “일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기본법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적용범위를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해 자신이 직접 일하고 이를 통해 보수를 받는 사람, 즉 노무제공자’라고 제한했다”며 “이는 노조법상 근로자보다 협소한 개념이다.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법 바깥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한층 완화된 기준으로만 권리를 보호하겠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이미 노동 분야 전문가들은 이재명 정부의 ‘노동법 적용범위’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최근 사단법인 직장갑질119에서 활동 중인 노무사, 변호사 등 법률 관계자 105명이 참여한 ‘이재명 정부 1년 평가’ 설문 조사에 따르면 가장 미흡한 정책을 묻는 질문에 ‘5인 미만 사업장 노동법 적용 확대’가 67.6%로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45.7%의 표를 얻은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보호’였다.
이준희 교수도 노동법 적용범위에 대해 지적했다. 그는 “근로자성 추정의 요건·효과·반증구조·적용범위 등이 정교하게 입법적으로 설계되지 않으면 그 제도는 ‘추정의 선언’에 그치고 만다”며 “이는 후속되는 구체적 쟁점을 법원의 판단과 행정해석에 모두 떠넘기는 결과가 된다”고 말했다.
실패한 정책이 되지 않으려면
그동안 논의된 일법 패키지는 시장에 안착하기 힘들다는 게 노동 분야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들은 정부의 노동 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더욱 촘촘한 정책적 설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성희 소장은 “노란봉투법이 법원 판례를 제도화했던 것처럼 근로자 추정제도 마찬가지”라며 “근로자 추정제가 도입된다고 해도 바로 모든 사업장에서 인정되는 것이 아니라 판단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혼란을 최소화하는 장치를 명확하게 마련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본다. 노란봉투법 때처럼 가이드라인을 소극적으로 만들면 제도화 효과는 미미하고 소송전만 난무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유경 노무사는 기본법 제정에 앞서 기존 근로기준법의 정의를 보다 명확히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기본법은 기본법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며 “기존 노동관계법령의 양대 축인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의 취지에 부합하면서 기존 법보다 후퇴된 기준을 제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본법 제정이 필요하다면 대전제는 ‘기존 노동법 체계의 강화와 확장’이어야 한다. 기존 근로기준법 밖 노동자들이 법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 원칙이 돼야 한다. 근로기준법 제2조의 근로자 정의를 확대하는 작업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추정의 효력범위를 사전에 명확히 획정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이준희 교수는 형사처벌 영역으로의 파급을 제도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고 했다.
그는 “근로기준법의 특별형법적 성격은 근로자 추정제의 모든 쟁점을 관통한다”며 “근로자 신분이 추정되는 결과로 형벌 부과의 전제인 사용자 신분이 ‘추정’되는 구조는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 및 무죄추정 원칙과 병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따라서 근로자 추정으로 인해서 누가 어떤 의무를 어디까지 지는지를 사전에 명확히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법과 관련한 분쟁해결에서’라는 문구만으로는 형사 절차로의 파급을 차단하기 어렵다. 형벌권의 전제가 되는 신분과 효력범위의 명확성만큼은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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